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Sep 07. 2023

운수좋은 날

혼자만의 시간도 즐거워

오전 10시반쯤 다급하게 울리는 사무실 전화


"엠제이, 오늘 우리 점심 다음달로 좀 미룰까?"


왕보스의 전화였다. 보스들과의 점심을 잘 이용해서 본인 어필도 많이 하기도 하고 보스와 좋은 관계를 끌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게 걸려온 보스의 전화에 '휴, 편하게 혼자 점심먹어야지.' 라고 하는 K-직장인 


사무실 동료들이 삼삼오오 점심먹으러 출발하고, 이어폰을 챙겨 나도 길을 나섰다. 덥긴 했지만 맑은 하늘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인사동을 걸었다. 속이 썩 편하지는 않아서 죽집에 가서 유튜브 영상 몇 개를 보며 경건하고도 즐겁게 점심을 마쳤다. 혼자만의 점심이다 보니 시간도 많이 남았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영풍문고에 들렀다. 


서점에 가면 욕심쟁이가 되고 근면성실왕이 된다. 베스트셀러에 있는 책들을 욕심내어 사들이고 부지런히 읽기만 하면 나는 부자가 되고 똑똑한 사람이 될 거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보통 핸드폰 다이어리에는 읽고 싶은 책이나 서점에 가면 들춰보고 싶은 책들의 제목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게으름을 반영하듯 다이어리에 읽고 싶었던 책을 지난 주말에 마침 다 읽었고, 리스트는 비어 있었다. 


'흠. 목적없이 그냥 서점에 가면 2-30분 시간을 어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래도 뭐 고르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은 오만함이었다. 베스트셀러, 경영/경제, 에세이, 소설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미 책을 읽기 위한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한 곡이 지나갔다. 


'아! 혼자만의 조용한 점심 후 20여분의 독서까지 해야 완벽한 점심인데...'

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그러다 보니 책은 더 고르기 어려워졌다. 


5분여를 더 목적없이 배회하다 영풍문고 안의 한 서가에 그냥 섰다. 

그리고는 음악부터 바꾸었다.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남은 점심시간동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괴로워하기 보다, 

그냥 무슨 책을 읽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 

서가에 안 보였던 책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책 페이지가 이뻐서, 제목이 자극적이어서 들춰보았다. 신간 코너에 그렇게 발길을 돌리고 있을 때 

한무리의 사람들이 신간코너에서 열띠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포시 이어폰의 볼륨을 낮춰보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XX 신간, 정말 편집 잘 했던대요"

"아, 그러게. 편집자로서 그렇게 좋은 책을 만들면 정말 뿌듯할 거 같아."

"그러니까요. 서점에서 DP하기도 정말 좋더라니까요."


"아오 별말씀을... 저도 편집하고 나니 너무 성취감이 있더라고요."


점심시간에 서점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만 보니 ... 어느 출판사의 편집인들 또는 출판사 

직원들인 것 같았다. 생기넘치게 손짓을 하며 설명하는 사람이 아마도 저들이 얘기하는 멋진 책의 편집자인 듯 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그들의 대화는 다 못 들었지만, 서점에서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저렇게 책을 사랑하고 책 속에서 활력을 찾는 사람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운수좋은 날이었다. 여전히 나는 K-직장인이지만 그 날의 점심은 오후 일과에 활기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1줄 요약 :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려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