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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Nov 16. 2023

아쿠아맨은 포기하지 않아?!!

작은 성공으로 삶을 적극적으로

기대와 걱정과 불안 등이 모두 공존할 수능일이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실감은 안되지만... ...

'나 수능볼 때 어떤 느낌있더라?' 잠깐 고민하다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친절하고 반가운 회사의 공지사항 : 수능시험 당일 교통상황 고려 전직원 10시 출근


'오호, 평소보다 수영을 좀 더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 등교시켜도 될 시간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5시부터 일어나서 아침 먹거리, 물통, 가방정리 등등을 했어야 했는데, 왠걸 5시반에 일어나도 여유롭다. 

수영다녀와서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전거도 안 타고 츄리닝에 패딩점퍼 입고 걸어간다. 느긋하다. 

한 시간여의 수영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씻고 집으로 와도 아직 아이들은 꿈나라이고, 9시까지 출근하는 

아내는 짐을 챙기고 있다. 


주섬주섬 아이들 아침과 간식, 과일 등을 챙기고, 8시쯤 아이들을 깨운다. 졸려하는 둘째녀석 아침을 먹이고, 가방도 챙기고, 옷도 입히는 사이에 첫째는 이미 입에 먹을 거 넣고 나간다고 한다.


"아빠, 저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놀다가 10시에 학교 갈 거예요." 라며... ...


아직은 초등학교 애송이 둘째는 아침부터 뭐가 신나는지 종달새 모드다. 옷도 원하는 대로 입고, 이거 저거 사브작 사브작 챙기더니 학교에 가자 보챈다. 시계를 보니 지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출근하면 여유있을 것 같다. 


"아빠, 우리 반 친구 XX는 엄마가 경찰관, 아빠는 소방관이래요. 우리 소방서 체험갔는데 그 아빠 봤어요."

"아빠, 요새 문구점에 새로 젤리가 나왔는데, 친구들이 그거 다 사먹어요. 나도 하나 사먹으면 안돼요?"


주제도 다양하고 표정과 표현도 다양한 녀석은 결국 내 지갑의 1천원을 자기 품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사이좋게 학교 문앞에서 헤어지려던 순간 


"아빠 ! 근데 저 문 앞에 베낭을 두고 안 메고 왔어요."


맙소사... ... 아이랑 걸어오면 회사에서 급한 메신저가 몇 개 와서 답하느라 제대로 못 챙긴 내 실수다. 



"우선 너는 학교에 들어가 있어! 아빠가 얼른 뛰어갔다 올께."


아... 하필이면 오늘 평소보다 자유형 스퍼트를 많이 해서 다리도 아픈데... 손목시계를 보니 걸어서 다녀오면 20분, 뛰어서 다녀오면 10분 정도일 것 같다. 걸어오느라 20분, 지하철역까지 5분....아 지각이다. 


'아, 오늘 수능날이고 어수선한데 그냥 하루 지각해버려.'

'칸트적인 엠제이가, 계획적인 엠제이가 지각이라니 말도 안되지. 게다가 난 아쿠아맨인데...'


아쿠아맨이 이겼다. 베낭끈을 행군할 때 군장처럼 동여메고 일단 뛴다. 오늘따라 구두도 전투화같은 걸 신었다. 탁탁탁탁 소리내어 곰같은 아저씨가 뛰어가자 횡단보도의 아이들은 길을 터주는 신비를 보여준다. 달리고 달려서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더니 그 앞에 아이의 베낭이 '에이 이 양반아, 이것도 못 챙기고 뭐하나?'라는 듯 마스코트가 유난히 환하게 웃고 있다. 얼른 아이의 가방을 들쳐메고 다시 달린다. 손목시계를 보니 쉬지 않고, 신호등도 안 걸리면 9분이면 주파할 거 같다. 


"헉헉. 아이가 먼저 등교했는데 가방을...헉헉 두고 가서요. 전해주고 올께요."


친절한 보안관 아저씨 앞 명부에 얼른 적고, 다시 뛴다. 교실 속 아이는 해맑게 책을 보고 있다 가방을 쏙 받고 들어간다. 시계를 본다. 지하철역까지 5분 안에 가야 탈 수 있다. 다시 뛴다. 쿵쿵 소리가 내 발소리인지 열심히 일하는 심장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여튼 뛴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보니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는데, 시간은 2분이나 남았다. 지하철을 못 탔으면 식은땀이 났을텐데 식은땀 대신 땀으로 등이 흥건하다. 지하철 편의점에서 파*에이드 하나 사서 마시며 걸어서 탄다. 


'해내고 말았구나 아쿠아맨 ! 난 니가 해낼 줄 알았어. 아쿠아맨은 네버 기브업 이거든.'


며칠 전 마라톤 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라톤을 왜 완주하냐면 뛰는 동안에는 힘이 드는데, 골인점 도착했을 때 '해냈다'라는 성취감과 무언가 인정의 욕구가 채워지거든. 솔직히 우리 나이에 어디 가서 인정받는 거 쉽지 않잖아. 근데 풀코스 완주, 그것도 3시간 초반에 했다는 거 자체로 여기저기서 인정받거든. 그 맛에  뛰는거야."


아쿠아맨은 그렇게 셀프만족과 '이런 나 칭찬해' 모드로 기분좋게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곧 전달된 아내의 메시지 '아이고, 가방 안 가지고 나와서 다시 갔다 왔다며... ... '


'그래. 아쿠아맨에 대한 인정은 아쿠아맨이 하면 되는거지..칫.'


그래도 간만에 땀을 흘리고 뛰어다녔다고 지하철 유리창 속 아쿠아맨의 얼굴은 평소보다 혈색이 좋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성취지만, 그래도 아이 잘 등교도 시키고, 지각도 안 했으니... 

그래도 성공한 하루다. 


#라라크루 #라이트 라이팅 #1-4 GOGO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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