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Nov 17. 2023

가을 야구의 추억

LG의 우승을 축하하며...

나에게는 별 일 없는 평일 저녁이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 날이지만 나의 응원팀은 아니어서 그런지

별 관심이 없다.


'위이이잉~' 탁자 위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온다.

"엠제이, 감격스럽다."


ex-Boss다. OB와 두산이 너무 본인과는 안 맞는 거 같은데 LG가 구단을 창단해서 응원을 시작했다는 그.

두산이 우승할 때 속이 쓰렸다는 그. 가을야구 전까지는 야구에 몰입하다가.. 가을야구철만 되면 늘 야구를 멀리했던 그였다.


"완전 축하드립니다. LG가 우승했으니 이제 가전제품 세일하면 교체 준비해야겠네요."

"그것도 우승을 해본 팀들이나 하지, LG는 무슨 생각일지 모르겠다 야"


12월 초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나니, 문득 어린 시절 나의 야구가 생각났다.




내 고향 따뜻한 남쪽바다, 해태의 고장이었다. 해태 종합과자 선물세트가 선물 중 으뜸이었으며, 게임기도 제믹스가 아니라 해태전자 슈퍼컴보이가 보이던 그 곳이었다. 이름도 용맹하고, 검/빨 유니폼은 더 살벌한 '해태 타이거즈', 온 마을은 모두 그들의 응원부대였다.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선물로 받은 검은 내야수 글러브와 검은 나무배트, 그리고 테니스공 하나면 나는 이미 해태 타이거즈 에이스투수이자 4번타자였다.


학교운동장, 빈 공터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줄을 긋고, 돌멩이를 놓거나 나무, 전봇대 등으로 베이스를 만든다. 지금처럼 응원팀의 유니폼을 입고 운동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글러브라도 하나 있으면 다행인 시절이었다. 투수는 해태 선동열을 흉내내고, 타자는 김성한을 흉내내었다. 동네 남자 아이들 10명 중 9명의 꿈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다. 나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 사는, LG 이전의 럭키금성에서 일하시던, 고모가 집으로 놀러왔다.


"엠제이, 오랜만에 보니 키가 많이 컸네. 자~ 이거 니 꺼야."


라며 커다란 종이가방을 건네준다. 가방 속에는 반짝반짝 광나는 점퍼와 야구모자, 그리고 티셔츠와 야구화가 들어 있었다. LG Twins 라고 씌여져 있는... ...

(고모는 LG야구단 창단으로 모집중인 어린이 야구단이 생겼고, 야구를 좋아했던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여긴 해태의 고장인데 라는 생각 반, 친구들 아무도 안 갖고 있는 야구점퍼, 야구화인데 LG면 어때라는 생각 반'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그 시절 야구점퍼를 입고 야구모자를 쓰고 심지어 야구화를 신고 동네 야구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나 웃기지만) LG 야구모자를 쓰고, 유광점퍼에 야구화를 신고 친구들과 야구하러 모였던 날은 지금도 생각난다. 나는 매우 진지했다. 유광점퍼를 벗고 Twins라고 써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야구화 신은 발을 높이 들어 와인드업 하는 나는 매우 진지했다. 그러나

그 날 내 실력은 나의 기대만큼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같이 야구하는 친구들도 유광점퍼를 입어보고, 야구화도 나눠 신으며 (우리는 해태 팬인데) "와, LG Twins 좋네." 라며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들 중에 리틀 야구단을 하고, 나중에 정말 타이거즈 선수가 된 친구도 있으니 세상 참 신기할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아쿠아맨이 될 운명이었는지 야구에는 별 소질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사회인 야구를 경험하면서 신었던 가죽 야구화와 달리, LG 어린이 야구단 야구화는 얇고 약해서 금방 뜯어졌고, 유광점퍼도 어딘가에 긁히고 찢어져 금방 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린이 야구단의 추억은 사라졌고 여전히 마음 속의 야구단은 '해태 타이거즈'다.  IMF 인해 모기업이 부도가 나서 'KIA 타이거즈'로 유니폼과 이름을 바꿨지만 여전히 포효하는 타이거즈는 속의 1등 야구구단이다.



리만브라더스의 공포가 2008년을 휩쓸고 주식시장과 취업시장도 모두 꽁꽁 얼어붙었었다. 그리고 난 그 해 대학원 1학년이었다. 그것도 리만 브라더스로 대변되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만든 파생금융상품을 이해하고 설계하고 하는 그런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니, 2008년 가을 선배들의 취업시장 성적표는 참담했다. 박살난 파생시장에 채용이 있을리 없었다. 그리고 난 2009년 가을, 졸업과 함께 다시금 취업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KIA 팬들이라면 뇌리에 매우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2009년 한국시리즈 6차전, 상대는 SK였다.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 한 방으로 2009 타이거즈는 우승을 차지했고, 참혹한 금융시장 탓인지 찌질이가 됐던 나는 연구실에서 노트북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주말이라 빈 연구실에서 새우깡을 먹으며... 이종범 시대 이후 근 10년여만의 우승을 그렇게 맞이했다. 6차전 잠실 타이거즈 응원석 표를 4장 구했다면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의 이야기에도 '지금 내가 무슨 한국시리즈를 잠실가서 봐.' 라고 할 정도로 위축되었다. 짜릿한 아드레날린 분비의 기회를 그렇게 놓치다니 말이다.




"야, 진짜 요즘 타이거즈 너무 못하지 않냐? 난 요새 게임도 안 본다니까... ...

 근데 김도영 잘 하지 않냐? 국대에서도 수비도 타격도 괜찮던데."


친구랑 전화 중 나온 이야기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타이거즈 팬이다. 못한다 못한다 욕을 하고, 감독이 왜 저러냐 하지만, 타이거즈 경기결과를 꿰고 있고,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늘 기다리는 타이거즈 팬 말이다. 29년만의 우승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팬들과 즐기는 LG 선수단을 보니, 사뭇 내가 타이거즈 팬이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타이거즈의 우승을 퍽 많이 즐겼기 때문이다.


LG가 이렇게 우승을 하니, 왜 자기는 어려서부터 한화를 응원해서 이런 시련과 고난을 걷는지 모르겠다며... LG까지 우승했으니 더욱 외로운 고난의 행군이구나를 읆조리는 다른 동료를 보니 새삼 사무실 책상 위의 타이거즈 마스코트가 정이 간다. 오랜만에 먼지쌓인 타이거즈 마스코트도 닦아주니 내년에는 다시 한 번 타이거즈가 포효하지 않을까 싶다. 매년 그런 거 같지만 말이다.                                                       (끝)


[한줄요약] 나는 타이거즈 팬인데, 아쿠아맨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1-5



매거진의 이전글 아쿠아맨은 포기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