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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Nov 19. 2023

추운 겨울 날 땀나기..

옛말이 틀린 건 없더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 말을 매우 실감한 하루였다.


아이가 날이 건조하고 추워져서 그런지 비염이 심해졌다. 토요일 아침 동네에서 오픈런을 하는 이비인후과를 가기로 했다. 이번 한 주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몸이 물을 여러번 먹은 솜같다. 병원이 9시부터인데 8시 20분에야 겨우 몸을 일으키고, 졸려하는 녀석을 깨워 병원으로 달린다.


맙소사...대기 56번이었다.

"아빠, 저 너무 졸리고 힘든데 그냥 오늘 병원 안 가고 집에 가면 안돼요?'

라고 투정부리는 아이. 환자 대기명단이 병원 유튜브 채널에 생중계되니 차리라 어디 가서 아침먹고 커피 한 잔 하고 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략 환자 1명당 2분 정도로 생각해도 거의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우리 저기 밖에 나가서 머 먹고 좀 놀다가 오자."


이런 날은 아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녀석은 그래도 선뜻 걸음을 나선다.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데, 느낌적인 느낌상 핸드폰 화면이 매우 어두운 것 같다. 어? 핸드폰 배터리가 20%밖에 안 남았다.


핸드폰이 잠을 방해하는 것이 싫어 늘 거실의 충전기에 자기 전에 꽂아두고 아침에 100% 완충된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칸트적인 엠제이인데...어젯밤에도 분명 충전기에 꽂아두고 잤는데 ㅠ 며칠 전부터 충전기에 꽂을 때 미묘한 각도 차이에 따라 충전이 되고 안 되고 하더니 그 녀석이 말썽이었나 보다.


'앗, 일단 이 핸드폰으로 카페에 가서 충전을 부탁해 보자. 충전이 좀 되면 ㅇ튜브로 환자 순서도 확인하고, 아이 게임도 좀 시켜주고. 무엇보다 이 핸드폰으로 병원, 약국 결재를 해야 하지 않겠어. 그 때까진 살아남아보자.'


아이와 함께 토요일 이른 시간 카페에 들어갔다. 크고 넓은 매장에 널찍한 소파, 아이는 자리를 잡았고 주문 전 살포시 물어본다. "혹시 핸드폰 충전 가능할...?'

"죄송합니다. 저희 매장에 충전기가 없네요."


1차로 약간 멘붕. 그래도 일단 커피와 주전부리를 시켜 자리를 잡는다. '편의점 급속 충전기에 다녀와야겠다.'

주전부리를 먹는 아이를 뒤로 하고,편의점에 갔다.

대학시절 1,000원을 내고 2G폰 급속충전했던 기억을 안고... ... "이제 편의점에 그런 거 없어요." 라는 편의점 사장님의 차가운 말을 듣고서야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나는 그대로였구나 싶다.


편의점 계산대 옆 무선충전기가 29,900원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1초간 고민했지만 내려놓고 다시 아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빠, 저 게임하고 싶기도 한데, 배도 아파요."


아이는 카페 화장실로 가고, 배터리를 보니 어느새 15%다. '아, 우선 ㅇ튜브의 진료순서를 확인해보고 최악의 상황에 핸드폰이 꺼지면 계좌이체를 한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집에 어떻게 가지?"


날은 맑고 청명한데 왜 또 추운지 사람들은 모두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까지 하고 잰 걸음을 걷는다. 2층 카페 창가 자리에서 그렇게 내려다 보니 병원 바로 옆 지하에 커다란 다있소 매장이 있었다. 다있소는 원래부터 그 자리였고 아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난 왜 그것도 못 봤을까? 맘은 급하고 추워서 그냥 첨에 생각한 대로 카페에 가야겠다고,  편의점에 가야겠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해결해야 했기에 다이소로 뛰어가 급속충전케이블과 콘센트를 사서 카페에서 바로 충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배아팠던 녀석도 좀 나아졌는지 "아빠, 이제 게임해도 돼요?" 라고 반색한다.


배터리가 없던 1시간 남짓은 조급하고 초조했다면, 충전기에 핸드폰이 꽂히고 난 이후부터는 그리 마음이 평온해질 수 없었다. 애초에 차분하고 침착하게 생각하고 잘 대응했다면, 그래서 처음부터 다있소의 충전케이블을 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직도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싶다.


무사히 아이 비염치료를 하고 처방도 받아 집으로 오자 마자 말썽꾸러기 케이블 녀석을 제거하고, 새로 산 녀석으로 갈아 끼웠다. 그리고 기거이 100%로 핸드폰을 충전하고 남은 토요일을 보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현명해지고 발바닥에 땀나는 일이 적어져야 하는데 슬기롭고 현명해지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한줄요약] 당황스러운 순간에 서두르기 보다는 침착하자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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