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탄생

인류는 어떻게 도덕성을 탄생시켰는가

by 교양이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



약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며 아프리카 동부의 기후가 건조해지고 온도가 낮아졌다. 사바나 지역의 열대 밀림은 초원이 되었다. 강수량과 기후의 변화로 사바나의 생태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키가 크고 우거진 나무들이 수풀로 대체되면서 공간이 트이자,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나무에서 내려온 어떤 원숭이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먹이를 찾아야 했다. 원숭이는 사냥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가 사바나 초원의 평야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이 득실거리는데, 나무에 오르는 법은 이미 잊어버렸다. 자기보다 더 작은 원숭이들에게 먹이 경쟁도 밀리고, 사냥을 하려 해도 너무 느려서 발 빠른 초식동물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원숭이는 직립보행 덕분에 남는 두 발로 사냥 도구를 만들고 동료와 힘을 합쳐 사냥을 시작했다.


협력의 첫걸음을 시작한 그 원숭이가 바로 인류의 선조다. 엄밀히 말해 원숭이는 아니다. 진화론을 오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인간의 조상을 원숭이로 착각하다 보니 진화론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 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이다. 인간 역시 대형 영장류 중 하나이며 호모 속에 속한다. 현생 인류의 공식적인 종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며, 그 어원은 라틴어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이한 점은 직립보행을 하고 손을 잘 사용하며, 구강 구조가 발달해 음성 언어를 사용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또 체격 대비 머리가 크고 유난히 지능이 발달했다. 호기심도 커서 자신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깐깐하게 따지는 까칠함도 지니고 있다.


여기, 동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호기심 많은 수컷 호모 사피엔스도 있다. 조금 특이하게 생긴 이 개체는 자신이 속한 종이 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 사피엔스는,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사피엔스들이 찾아낸 지식들의 연결점을 찾아 기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서로 옳다고 싸우는 궁극적인 이유가 서로 다른 뇌를 가지고 태어나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쓸데없는 지식만 머릿속에 가득 찬 이 수컷 사피엔스는 여름휴가도 무시하고 책상에 엎드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오만하게도 자신이 진실을 알아냈다고 기뻐하면서.




‘나, 너, 그리고 우리’



이번 장에선 인간의 도덕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펴본다. 호모 사피엔스의 기본적인 도덕성을 이해해야 보수의 진보의 도덕성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성은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침팬지와 인간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화되기 이전부터도 대형 유인원 역시 원시적인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영장류의 도덕성이 현대 인류의 도덕성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세 가지 단계를 이해해야 한다.


영장류 사회에도 도덕이란 게 있다. 친족과 친구에 대한 공감에 기반한 도덕성이다. 대형 유인원들 역시 자신의 친족 무리와 협력하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안다. 인간 역시 영장류의 한 계통에서 진화했기에, 인간의 도덕적 뿌리 역시 친족과 친밀한 동료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우리도 이왕이면 자기 가족과 친족을 우선 돕지, 낯선 이를 돕지는 않는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도덕은 감정에 얼룩지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모순적이고, 오류에 자주 빠진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속이 등장하면서, 원시 인류는 먹이가 부족해지자 새로운 선택지로서 사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동물을 사냥했지만, 인구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더 큰 먹이가 필요해졌다. 40만 년 전에야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처음으로 협동적이고 체계적으로 큰 사냥감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는 심리를 발전시켰다. 인간이 협동적인 사냥을 시작하면서 도덕을 발전시켰다는 이론을 '상호 의존 가설'이라 한다. 실제로 그들 중에 가장 성공을 거둔 이들은 서로가 상호 만족하도록 전리품을 나눈 집단이었다. 전리품을 노력과 기여도에 따라 공정하게 배분해야 문제는 공정성 감각의 원형이 되었다.


사냥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임승차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수렵채집 시대 조상들은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여럿이서 계속 쫓아가 잡는 식으로 사냥을 했다. 그래서 인간은 근력을 포기한 대신 근지구력만큼은 다른 동물들보다 앞선다. 그러나 꼭 농땡이를 피우거나, 숟가락만 얹거나, 사냥감을 독차지하려는 파트너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냥에 진심으로 협력할 파트너를 고르고,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는 무임승차자를 배제하는 것이 협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문제는 일단 믿을만한 사냥 파트너를 골라도 내 파트너가 언제든지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을만한 파트너인 줄 알고 사냥에 최선을 다했는 데 파트너가 농떙이를 피우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이용당하고도 화내지 않고 응징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손해만 보고 파트너만 이익만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파트너는 이기적인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당연히 이용만 당하는 개체는 살아남아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없다. 따라서 협력할 파트너를 선택하고 통제하기 위해 무임승차자를 응징하는 심리 기제가 진화하게 되었다.


또 한 중요한 문제는 모두가 협력 파트너를 신중하게 고르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나와 상대 모두가 파트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임승차자를 견제하고 있다는 인식, 즉 동등하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나와 상대방은 동등한 존재로서 협력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인류가 평등하다는 감각의 원형이 된다. 또한 협동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잔머리를 피우면 응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상호 존중 감각으로 발전해 원초적 도덕성의 기틀을 형성하게 되었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전략적 배제, 자신과 타인이 동등하다는 인식, 상호 존중 감각은 결합되어 노력과 기여도에 따라 전리품을 받을 자격에 대한 감각, 즉 정의와 공정성의 감각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공정의 문제에 그렇게 민감한 이유도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 대응하도록 심리 메커니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원의 분배 문제인 정치의 핵심인 이유인 것이다. 협동적인 사냥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침팬지에게는 공정성의 감각이란 게 없다. 침팬지는 가끔 특식으로만 원숭이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물론 700만 년 전에 인간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된 침팬지도 협력을 한다. 하지만 침팬지의 협력은 친족과 동료에 대한 공감에 한정되어 있다. 대형 유인원의 일반적인 협력과 다를 바 없다. 침팬지는 협동을 통한 사냥을 하지만 잡은 사냥감을 다른 침팬지와 나누려 하지 않는다. 침팬지의 협력은 경쟁을 전제로 한 잠정적 협력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리품을 나누는 기준에 관한 공정성의 감각 또한 발달하지 않았기에 인간만의 도덕이라 할 만한 것이 발달하지 않았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회적, 인지적으로 경쟁하도록 진화했다. 침팬지의 주 먹이는 과일과 열매고, 먹이가 풍부한 우기에만 사냥한다. 이때 집단으로 뭉쳐 사냥하는 순간에만 상호 의존적일 뿐이지, 침팬지의 협력은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라 볼 수 없다. 대형 영장류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응보적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며, 사냥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도 동료가 받는 보상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 자신이 받는 보상의 질에만 집중한다.


AKR20220731026300009_03_i_P2.jpg 원숭이를 사냥하는 침팬지


반면 아이들은 협력 기여자에게 더 큰 몫을 나눠주고 무임승차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려고 한다. 정의와 공정성의 감각이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웬만하면 동료를 도와주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 아이들은 중립적 상황보다 협력적 상황이 조성되면 타인을 더 쉽게 도와주며, 외적인 유인이 없어도 남을 도우려는 동기가 강하다. 또 연구자가 슬퍼 보이는 연기를 하면, 유아들은 정서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렇듯 타인을 존중하는 감각은 인간의 공감 성향이 친족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친족과 동료 이외의 낯선 이에게도 공감과 존중 성향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은, 타인 역시도 이상적인 협력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으며 협력을 지속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음을 뜻한다. 파트너가 언제든지 배신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적대감만을 가질 것이다. 타인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거라는 믿음은 확장되어서 나와 너, 즉 우리에 대한 헌신을 추구하는 인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발전한 공동 지향성은 ‘우리’가 단일한 목표를 향한 하나의 공동체로서 행동함을 의미한다. 개인은 협력 파트너와 함께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우리’의 일원임과 동시에 자기 나름의 역할과 관점이 있는 개별적 존재다. 이렇게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면, 그 속에서 걱정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인간만의 의사소통의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인간의 구강 구조가 정교한 음성 언어를 구사하도록 발달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무임승차의 유혹에 굴복하고 ‘우리’를 배신하려는 성향을 억제하는 심리 기제를 발전시켰다. 공동체에 대해 헌신하지 않을 경우 집단에게 제재와 응징을 받아 생존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적인 유혹과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활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자기 규제 장치로 작용했다. 그러나 자기 규제 심리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자신에게 적용되는 자기 규제 심리는 죄책감, 양심, 책임감 등으로 나타난다. 타인에게 강요되는 자기 규제는 양심, 도덕적 엄격성, 죄책감 등으로 나타나며, 사회적ㆍ규범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질 것을 강요하게 된다.


침팬지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알 수 있다. 침팬지는 협력에 대한 배신을 서열 우위에 근거하여 대응한다. 강자라면 찍소리도 못하고 약자라면 큰소리치는 식이다. 반면 아이들은 지위에 관계없이 분함을 드러내고 항의를 통해 배신에 대응한다. 욕심 많은 아이는 마음이 약해져 사과하고 다시 협력을 재개한다. 이렇게 공동체와 파트너에 대한 책임감은 사회적이고 규범적인 자기 규제의 원형이 되었다. 이는 양심이 내면화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혹에 못 이겨 배신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죄의식은 배신 행동을 그만두고 사과하고 보상하도록 함으로써 집단에서 배제되는 위험을 줄여주게 한다.


침팬지도 원시적인 공감과 경쟁의 맥락에서 일시적인 협력을 한다. 하지만 집단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인간의 마음은 우리가 사냥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출현한 것이다. 그게 바로 도덕적 마음의 원형이다. 물론 인간 도덕의 대부분 역시, 대형 영장류에게도 나타나는 친족 기반의 공감적 도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도덕적 공감이 제한적이고 호혜적인 이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인간은 파트너를 선택하고, 통제하고, 무임승차자를 응징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협력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과 타인을 도덕적으로 규제하는 과정을 거치며 도덕을 탄생시켰다.


이렇듯 도덕은 공동체에 대한 협력과 헌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인 보수와 진보의 유래와 그 차이를 알기 전에 인간의 도덕성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기본적 성향인 내집단 성향과 그 정도의 차이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는 집단적 추구 성향이 강하지만, 진보주의자는 그 정도가 약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도덕이 완전히 발달해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분기점에 도달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초기 인류의 도덕은 현생 인류의 도덕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현생 인류는 국가, 종교, 민족, 이해집단처럼 여러 층위로 구분될 수 있는 도덕적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초기 인류의 도덕은 혈연 집단과 소규모 부족 내에서만 통용되던 수준의 도덕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도 집단 중심적이고 문화적인 도덕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직 사냥을 위한 협력적 도덕 수준 그 이상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초기 인류의 도덕이 어떻게 현생 인류의 도덕적 수준에 이르는지, 어떻게 인간만의 종교, 도덕, 제도, 믿음을 만들어 내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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