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는 왜 존재하는가

보수와 진보의 생물학적 기원

by 교양이



진화론에 대한 오해



이 책의 목적은 보수와 진보가 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이미 신경 정치학이라는 학문은 보수와 진보가 다른 뇌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오바마 대통령도 신경 정치학을 선거에 적극 활용해 당선되었다. 그 비결은 중도층의 뇌에 잠자던 진보주의자 스위치를 켜는 것이었다. 꼭 신경 정치학을 선거 캠프에 고용하지 않았더라도, 한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선거는 대중을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신경 정치학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다른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왜 다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적이 ‘왜’에 관해 답을 찾는 것이 목적임을 고려하면, 아직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는 베일에 쌓여있는 셈이다. 나는 진화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인지신경 과학, 도덕 심리학, 행동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통합해 나름대로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에 대한 근본적 원인과 그 양상을 설명하려 한다.


그전에 진화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자연선택된 프로그램과 메커니즘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다. 우리가 뱀을 보면 혐오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이 그 예다. DNA가 오복제되면 돌연변이 개체를 만들어내고, 유성생식은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체를 만들어낸다. 변이체의 특성이 우연히 생존에 더 유리하면 그 개체의 후손들은 번성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 사소한 유전적 특성이라도 시간이 누적되면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쇠퇴한다. 이게 자연선택의 핵심이고, 최소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다. 개체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유전자의 시간은 무한하다. 유전자는 개체를 옮겨 다니며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진화론의 논리는 이토록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방식이 동물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동물은 환경과 상황의 안정성에 따라 변화에 유연히 적응하는 개체군이 있고 그렇지 못한 개체군이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위험에 더 강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의 집단이 있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의 집단이 있다. 그 두 집단이 바로 보수와 진보다. 그렇다고 정치적 성향이 선천적으로 결정되거나 바뀔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 성향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정치 성향이 완전히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일반 대중들은 유전자 결정론 vs 환경론 혹은 본성 vs 양육의 두 이론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본성과 양육 논쟁을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 인지신경 과학, 동물 행동학, 유전학 등 과학과 심리학의 발전과 통합적 연구를 통해 대립하는 듯 보이는 두 이론이 사실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단지 양육과 본성 이론 중 어느 한쪽에 초점을 집중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질 뿐이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가 무의미해질까 봐 진화심리학을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중요성은 여전히 우리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많다. 우선,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 자체가 유전자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과정이다. 게다가 유전자는 개체가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옵션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았다. 상황에 따라 특정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는 방식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를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리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어 생물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인간을 예로 들어보면, 자원이 부족해 경쟁이 심한 사회가 되면 인간의 유전자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껴 경쟁에 최적화되도록 설계된 심리ㆍ행동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경쟁 스위치가 켜진 인간의 자식들 역시 같은 스위치가 켜진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경쟁에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고통스럽지만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사회는 경쟁이 심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 사회가 된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보수주의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우리의 선택이 여전히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의 지능에서 찾을 수 있다. 지능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지만, 인간의 지능이 지구상의 생명체 중 가장 발달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렇다면 지능이란 무엇일까? 지능은 개체가 낯선 환경에 마주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발달한 뇌의 기능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조상 대대로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대처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설계된 메커니즘으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의 인지능력과 지각 방식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바꿔 말하면, 익숙한 환경과 상황이 바뀌면 동물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매머드 등 옛 대형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하는 심리 메커니즘을 진화시키지 않았고, 그 탓에 도망가지 않아서 인간에게 모조리 멸종되었다. 매머드에게도 나름의 변명거리는 있을 것이다. 그 쪼그마한 것들이 나를 죽일지 알았겠냐고.

닝겐만 아니었다면 4,000년은 더 살았을 매머드

인간의 지능이 가장 발달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가장 무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완전한 직립보행을 한다. 그 탓에 인간은 거북목과 허리디스크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두 손이 자유로워진 덕분에 손재주와 지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인간의 유일한 강점은 두뇌, 즉 뛰어난 인지능력이다. 사자처럼 강한 힘과 이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젤처럼 빨리 도망도 가지 못하고, 원숭이처럼 나무도 잘 탈 타지 못한다. 체온을 보호하고 몸을 지켜줄 털도, 가죽도 없다. 원시 인류는 오직 도구만으로 맹수에 맞서고 초식동물을 사냥해야 했다. 당연히 도구를 잘 만들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고, 그러다 보니 복잡한 사물의 원리와 그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인지 능력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인간의 지능 발전을 추동했던 요인들은 많다. 사냥감을 추적하다 보면 익숙한 반경을 벗어나 낯선 지리적 환경과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건 공간 지각 능력이다. 게다가 인간은 잡식이다 보니 독이 있거나 상한 음식을 기억하고 분류하는 능력, 즉 기억력과 분류 능력도 발달하게 되었다. 인류의 선조들은 식량을 찾아 이동하며 매 순간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 딜레마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도 요구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일을 상상하는 능력,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사고력을 발전시켰다.


이렇듯 결정론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자연선택과 지능도 사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다. 어떤 환경을 만들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정치다. 그러니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면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가 달라지게 된 유래, 궁극적인 ‘왜’에 대한 답을 알려줄 수 있다. 진화론적 시각에서 보면, 위험과 변화를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 두 유형은 명확한 이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과 진화 생태학은 그 압력을 겪으며 보수와 진보로 분화된 조상들의 과거를 추측하도록 도와준다. 뇌 과학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를 스캔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에 대해서 알려줄 것이다. 그 실증적 증거는 뇌 구조와 신경시스템, 호르몬의 뚜렷한 차이로 나타난다. 그래서 세상을 지각하는 무의식적이고 근본적인 방식, 즉 세계관이 달라진다. 그 차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성격의 차이로 나타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정치 성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격과 정치 성향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볼 예정이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는 성격의 차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보통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성격 테스트가 다 맞는 이유다. 정치 성향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 둘 다 가지고 있다. 그게 중도다. 그래서 선거는 보수적 가치관과 진보적 가치관 중 어느 쪽에 중도가 더 공감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그래서 도덕적ㆍ정치적 판단은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판단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감정과 직관에 의해 좌우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거쳐 투표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거장이야말로 가장 비이성적인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물론 나도 그 차이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나는 진보주의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와 이념에 자연스레 이끌린다. 그래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진보주의자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한다. 그러니 진보주의자에 유리한 증거만 수집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무지와 아집을 숨기지 않겠다. 완전한 객관성과 중립이란 없다. 인간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 사고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애써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글을 쓰려하지 않았다. 공허한 사실로 된 객관적인 글보다는, 오류 투성이라도 진심이 담긴 글을 쓰려 노력했다. 그게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치에 관한 생각을 말하는데 중립이라는 건 없다. 그건 그냥 비겁한 거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편파적인 글을 썼다. 다만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저 나의 편견과 편애가 반박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경쟁에 찬성하는 보수 vs 경쟁에 반대하는 진보



앞서 말했듯이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선택된 심리적ㆍ행동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중에는 위험과 변화에 개체별로 다르게 대처하도록 설계된 심리적 메커니즘도 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유형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다. 정치 이전에 동물로서의 인간이 먼저다. 정치의 영역과 인간이라는 동물을 별개로 놓으면 인간이 객관적인 정치적 판단만을 한다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정의하면 오히려 좁은 시야에 갇히게 된다. 보수와 진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나뉘게 된 진화적 기원을 찾는 것이 먼저다.


또 하나의 심리 메커니즘은 경쟁에 관한 것이다. 개체는 종 내 다른 개체와 자원을 두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자원이 제한적이라 먹이ㆍ짝짓기 상대ㆍ보금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변화하는 환경ㆍ경쟁자의 수ㆍ포식자의 여부도 자원에 대한 최적화된 경쟁의 정도를 다르게 만든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경쟁을 추구하는 유형의 집단과 경쟁에 반대하는 유형의 집단으로 분화된다. 종의 대부분은 이렇게 두 유형으로 분화되는데,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정치적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로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강한 경쟁을 추구하는 개체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부과된다. 지나치게 경쟁하는 개체는 동성 개체와 싸우다가 한정된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 짝짓기 상대를 놓치거나 짝짓기 싸움에서 얻은 부상으로 죽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 경쟁에 집중할 것인지는 환경적 요인과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토끼를 예로 들어 보자.


우선,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요소 첫 번째는 기후와 환경의 변화다. 같은 지역이라도 기후는 매년마다 바뀔 수 있다. 기후가 바뀌면 환경이 바뀌어 먹이, 보금자리, 천적의 유무, 짝짓기 상대, 경쟁자의 수가 바뀐다. 그중에서도 먹이 자원이 바뀌는 것은 치명적이다. 동물은 식물과 달리 광합성만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없어서 다른 유기체를 잡아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만약 환경 변화로 먹이 자원의 수가 달라지면, 그에 걸맞게 최적화된 경쟁 전략도 달라진다. 어떤 해에 강수량이 늘어나 특정 풀이 번성한다면 그 풀을 먹는 토끼 역시 번성할 것이다. 이럴 땐 먹이 경쟁보다는 짝짓기에 몰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짝짓기 활동에 집중한 토끼는 많은 자식을 낳겠지만 먹이가 충분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짝짓기 경쟁에 몰입한 토끼는 진화적으로 성공하게 된다. 짝짓기 토끼 사례를 보면, 자원이 충분할 때는 경쟁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음 연도에 가뭄이 들어 토끼가 먹을 풀이 없어진 것이다. 전년도 활발한 짝짓기의 결과로 경쟁자 토끼는 많아졌지만 먹이는 더 부족해졌다. 그러면 다시 경쟁이 치열해진다. 행복한 과거를 떠올리며 짝짓기에만 몰두하는 토끼의 유전자는 도태될 확률이 높다. 자손을 낳아봤자 먹을 풀이 없어 굶어 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원이 부족할 때는 경쟁에 몰두하는 노력 토끼가 진화적으로 더 유리해진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다시 짝짓기에 미친 카사노바 토끼를 보자. 운 좋게도 카사노바 토끼의 후손 몇몇은 살아남아 부모를 본받아 난잡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 몇 년 후 강수량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대부분의 토끼가 굶어 죽은 탓에 먹이가 충분해서다. 이제는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하는 노력 토끼와 카사노바 토끼의 수는 균형 상태에 이르게 되고, 토끼 집단은 서로 다른 경쟁 전략을 추구하는 두 분류로 나뉘게 된다. 즉 다른 경쟁 전략을 추구하는 두 유전자 유형 모두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이를 진화적 안정 전략이라 하는데, 게임이론에서는 내쉬 균형이라고도 부른다.


진화적 안정 상태에 이르는 두 번째 요인은 포식자의 존재이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 있는 맹수를 제외한 대부분 동물들은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다. 당연히 포식자를 피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지만, 개체는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포식자를 어디까지 경계하는 것이 유리한가? 매 순간 포식자를 경계하면 당장에 살아남을 확률은 높일 수 있지만, 포식자 경계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거나, 먹이 찾기와 짝짓기, 성장엔 에너지를 투자할 수가 없다. 그 사이에 경쟁자는 위험을 무릅써서 충분한 먹이와 좋은 짝짓기 파트너를 얻었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은 이익과 비용을 어디까지 저울질하느냐에 달려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원 상황이 달라지는 것처럼, 포식자의 여부도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체는 특정 환경에 맞게 서로 다른 위험/회피 전략을 가지도록 자연선택된다. 인간이 뱀을 두려워하는 심리 기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박혀있지 않은 이유다. 이익보다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R-전략 vs k-전략



동물이 자원과 포식자의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번식을 위해서다.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도 예외일 순 없다. 개체가 아무리 성공적으로 먹이 활동을 하고 포식자로부터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영속하는 건 유전자뿐이다. 따라서 번식을 위한 짝짓기 활동, 다윈이 성 선택이라 불렀던 개념이 진화론에서 핵심적이다.


성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동성 간 경쟁과 이성 간 경쟁이다. 동성 간 경쟁은 보다 더 나은 짝짓기 상대를 차지하기 위한 동성 간의 경쟁이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암컷 공작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과정은 더 화려한 꼬리를 드러냄으로써 주변 수컷보다 암컷의 눈에 더 띄기 위한 수컷 간의 군비경쟁이다. 사실 화려한 꼬리를 가지는 것은 이익은 없고 단점만 있다. 일단 천적의 눈에 더 잘 띄고, 발톱과 부리처럼 중요한 신체 부위로 가야 할 에너지가 꼬리에 투자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화려한 꼬리를 가진 수컷이 암컷에게 선택을 받는 이유는 수컷 간의 꼬리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최고로 화려한 꼬리의 의미는 이렇다. “내 꼬리를 봐. 이렇게 쓸모없고 화려한 꼬리를 가질 만큼 나는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나와 짝짓기 하면 내 후손들도 화려한 꼬리를 가져서 우리의 유전자는 널리 퍼질 거야.”


공작의 화려한 꼬리가 강한 동성 간 경쟁의 산물이라면, 토끼의 많은 개체 수, 빠른 성장과 많은 자식은 약한 경쟁의 산물이다. 충분한 자원과 적은 경쟁자, 천적이 많은 환경에서는 최대한 빨리 번식하고 가급적 많은 짝짓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포식자로 인해 경쟁자 수가 줄어든 만큼 먹이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식의 수는 최대한 많이 낳아서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일부라도 살아남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난잡한 짝짓기와 빠른 성적 성숙, 자식에게 적은 투자를 하는 것이 토끼에겐 진화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다. 이를 r-전략(r-strategy)이라 한다.


반면 자원이 부족하거나 천적이 적으면 경쟁은 치열해진다. 이때는 짝짓기 상대를 신중하게 고르고, 자식을 조금 낳아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자식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개체는 느리게 성장하며 경쟁에 필요한 능력들을 부모로부터 착실히 배우며 경쟁에 대비한다. 늑대가 그렇다. 늑대는 k-전략(k-strategy)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토끼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한다면, 늑대는 양보단 질을 우선시한다. 늑대는 하나의 짝짓기 상대를 가지는 순정파이며, 집단 속에서 끊임없이 서열 싸움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k-전략가이지만, r-전략과 k-전략도 상황에 따라 균형 있게 추구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자원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와 정치 뉴스를 자주 본다. 인간에겐 다양한 정보를 생산하고 해석하는 언어 능력이 발달했기에 r-전략과 k-전략을 유동적으로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r-전략과 k-전략 중 한 가지만 추구하도록 태어난 유형도 있다. 따라서 r-집단, k-집단, r/k 집단 각각의 인간 유형들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전략을 추구하도록 인지적으로 세팅되어 있다. 그래서 각 유형별로 세상을 이해하는 틀인 세계관이 달라지고, 다른 신념 체계를 가지게 된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r-전략, k-전략, r/k 이 각각 진보, 보수, 중도에 대응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친 존재들이다. 20만 년 전에 인간의 진화가 멈춘 이래로, 우리의 조상들과 현대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존재들이다. 문화와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은 점을 제외하곤 완전히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가던 조상들의 생존 전략에 기반한 심리적, 행동적, 인지적 메커니즘이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과 뇌는 여전히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가던 조상들이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는 여전히 조상들의 구닥다리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어디서나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데다 정치의 수준이 발전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구닥다리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답답한 현실 정치를 개선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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