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와 전두엽

공포와 이성

by 교양이



편도체



앞서 인간의 도덕은 감정에 의해 지배되며 이성은 감정의 하수인이라는 점을 알아보았다. 우리 행동은 감정과 직관, 습관에 의해 대부분 좌우되는데, 이러한 사고체계를 시스템 1이라 한다. 시스템 1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너무 빨리 처리되기 때문에 자각하기가 힘들다. 우리는 자신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행동의 대부분은 시스템 1의 감정과 직관에 의해 미리 결정되고 나중에 의식이 결정을 합리화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시스템 1의 감정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걸까?


시스템 1의 대부분은 ‘포유류의 뇌’라 불리는 변연계라는 뇌 부위에서 일어난다. 포유류는 2~3만 년 전에 파충류에서 분화했는데, 공격성과 위계적 성향을 관장하는 R-복합체라는 부위 위에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새로운 뇌가 포유류에게 덧씌워졌다. 변역계 덕분에 포유류는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덕에 자식과 친족에게 더 많은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포유류가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자, 서로 도움을 주는 상호작용도 따라서 증가하며 결과적으로 포유류는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


변연계는 구체적으로 동기 부여, 감정, 정서적 학습과 기억에 관련된 부위로 대뇌피질과 뇌량 그리고 시상하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대뇌변연계는 다시 편도체, 선조체, 시상알핵, 변연엽, 후각 신경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편도체는 아몬드(almond)처럼 생겨서 'Amygdala'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편도체는 공포와 분노, 정서와 관련된 기억, 보상, 짝짓기 같은 사회적 기능을 하는 부위다. 우리가 눈여겨볼 건 공포, 불안, 혐오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처리하는 편도체라는 부위다.


편도체의 기능을 알려주는 몇 가지 실험들이 있다. 우선 편도체는 정서적 표현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뇌는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 사진을 보면 감정이 없는 얼굴 사진을 볼 때에 비해 편도체가 강하게 반응한다. 편도체는 정서적 기억과도 관련이 있다. 중립적인 이미지를 불쾌한 소음과 짝지어 놓고 실험하면, 중립적인 이미지가 원래부터 혐오적인 이미지였던 것처럼 편도체가 반응한다. 또 편도체는 공포라는 감정도 처리한다.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에는 편도체의 반응이 없었지만, 두려워하는 표정에만 편도체가 반응했다.


따라서 편도체는 공포 기억을 형성해 이전의 공포 대상으로부터 도망치게 하고, 불안한 감정을 만들어 잠재적인 위험 대상에 접근하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한다. 또 편도체는 공격성에도 관여한다. 공격성은 자기 방어, 짝짓기, 종족 보호, 먹이 포획 등에 중요하다. 편도체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공격성이 증가하고, 편도체가 손상되면 공격성이 줄어드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보수주의자의 특징은 바로 이 편도체가 진보주의자들보다 크다는 점이다. 런던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편도체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도박을 통해 위험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에서는 보수주의자는 편도체의 활동성이 커진 반면, 진보주의자에게선 뇌섬이라는 피질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도박을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접근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위험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실험에서는 범죄에 강경하고 군사적 대응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뚜렷한 놀람 반사와 혐오 반응을 보이는 것이 관찰되었다. 실험 결과를 두고, 정치학자 존 히빙은 보수주의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격으로부터 생명과 신체를 방어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흔히 우리는 슬픔, 불안, 공포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쁘게만 바라본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 역시 진화적 이점이 있기에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공포는 위협적인 대상을 만나면 도망치게 해 준다. 불안은 우리의 주변과 마음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잠재적인 위험을 찾아내게 해 준다. 혐오는 해롭거나 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하게 해 준다. 모욕감과 죄책감은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슬픔은 타인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화재경보기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포식 동물, 사회적 지위의 상실, 집단으로부터의 추방 등 생존에 심각한 위험이 되는 문제를 탐지할 목적으로 부정적 감정이 설계되어 있기에, 이를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경보기는 지나치게 센서가 민감해 오작동할 수도 있다. 부정적 감정은 고통스럽고 정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만, 그럼에도 이 슬픔과 불안이 자연선택된 것은 죽는 것보단 마음이 고통스러운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는 뇌의 위험 경보기가 고장 나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편도체가 항상 활성화되어 있다. 편도의 크기나 밀도 차이가 우울증과 신경증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경증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정체성이 불안하고, 자존감이 낮고, 부정적 감정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특징도 비슷하다. 보수주의자들 역시 더 큰 편도체를 갖고 태어난다. 보수주의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반면에, 불확실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사고의 통합성이 적고 종결 욕구가 크기 때문에, 학자들과 지식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보주의자가 많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는 90% 이상이 진보주의자들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보수주의자가 심리적으로 의존할 대상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가 크고, 자원, 즉 돈에 대한 욕망이 크다. 높은 지위와 권위, 사회적 명예도 추구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란, 변화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물질적 자원과 사회적 지위를 추구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보수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는 이념이라고 하지만, 그 이념도 사실 현상일 뿐, 보수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이면에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대상을 찾고 그것을 고수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결하고 싶은 근원적인 심리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심리는 Big Five, 5대 성격요인이라 부르는 성격 모델과도 관련이 있다. 보수주의와 가장 연관되는 성격 요인은 성실성이다. 성실성은 목표를 위해 충동적인 욕구를 자제하는 성향이다. 성실성 역시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안정적인 대상을 찾으려는 성향과 관련된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정해진 규범과 틀을 잘 따르며, 권위와 질서에 순응하는 경향이 크다. 보수주의자가 노력과 절제를 통해 성실하고 규칙적인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성실성은 개인의 노력과 품성을 함양하는 데 바람직한 성격 요인이다. 하지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좁은 시야에 갇히게 만들기도 한다. 성실성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경직되고 단조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다음으로 관련이 있는 성격 요인은 편도체와 관련이 큰 신경성이라는 특징이다. 다른 말로 정서적 안정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횟수가 잦을수록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다. 보수주의자들 역시 신경성 수치가 높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고, 변화와 불확실성을 거부하고, 내집단 선호와 외집단 배척 성향이 강하다. 또한 논리보단 감정에 우선한 판단을 하고, 방어적 공격성이 강한 성향을 보인다. 보수주의자가 안보 문제에 관해 국방비 증가와 군사적 대응을 선호하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도 신경성과 관련이 있다.




전두엽



보수주의자가 주로 감정과 직관에 의해 좌우되는 시스템 1에 기반해 사고한다면, 진보주의자는 대체로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는 시스템 2를 이용해 사고한다. 그 시스템 2를 주로 담당하는 게 뇌의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뇌 사이즈가 급격히 커질 때 진화한 부위다. 앞서 변연계가 오래된 뇌로서 파충류에서 진화한 포유동물의 감정의 뇌라면, 전두엽은 인간이 진화하며 복잡한 인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성적 뇌라 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이 전두엽이 더 발달했다. 진보주의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세상에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전두엽은 의식적, 언어적, 추상적 추론과 목표 지향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한다. 하지만 복잡한 사고를 하는 만큼 그 대가로 그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때의 에너지는 포도당, 주로 탄수화물에서 얻는 에너지다. 당이 떨어질 때 단 것을 먹으면 힘이 나는 이유는 단당류가 에너지를 빨리 공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적이고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할 때는 포도당을 빨리 소모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상은 시스템 1에 기반한 습관과 직관을 이용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새해에 세운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도, 의지력이 포도당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 보면 뇌의 포도당이 금방 고갈되고, 포도당이 고갈되면 의지력도 고갈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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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2의 단점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것만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고 논리적인 추론을 하는 사고방식은 속도가 느리고 다른 일과 동시에 처리할 수 없다. 시스템 2의 사고방식 자체가 불확실하고 낯선 문제에 관해 숙고하며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진보주의자가 자연선택된 이유도, 익숙한 사바나 환경에서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새로운 자원을 찾아 대륙 곳곳으로 이주하며 낯선 환경과 상황에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가 불확실한 상황을 잘 견디는 것은 실험에서도 드러난다. 한 실험에서 보수주의자는 편도체가 활성화된 반면에, 진보주의자는 전측 대상 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증가했다. 전측 대상피질은 불확실하고 갈등적인 상황에서 오류와 모순을 감지하고, 서둘러 판단을 내리려는 욕구를 자제하는 등 인지 통제 기능을 담당한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인지 유연성이 큰 이유다. 또한 도박 실험에서도 진보주의자는 뇌섬이라는 피질 부위가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도박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마음속에서 관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보주의자는 위험과 갈등 상황에서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을 하려 애쓰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진보주의자가 매사에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진보주의자 대부분은 헛똑똑이들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일상과 인간관계에서도 논리와 객관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관습과 직관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감정을 이용해 관계를 맺는다. 그 앞에서 객관과 논리를 들이대 봤자 의미 없는 짓이다. 기껏해야 사람들에게 노잼, 진지충으로 보일 뿐이다.


시스템 2의 연역적 추론을 이용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감정과 관습, 예절, 전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진보주의자들은 연역법과 삼단논법에 기반해 논리적 추론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맞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에 객관적으로 부합하거나 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논리학이 아니다.


연역법은 자명한 전제에서 출발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론을 전개해나가는 사고방식이다. 전제가 옳다면 언제나 옳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제가 틀리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지식을 확장하기가 어렵다. 논리적으로 참인 것이 현실에서 참인 것도 아니다. 삼단논법도 마찬가지다.


진보주의자, 혹은 좌파가 현실에서 연역적 추론을 잘못 적용한 사례를 보자. 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라면 마르크스를 뽑을 수 있다. 마르크스 역시 연역적 추론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실제로 그렇게 단순한 추론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다. 방식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 → ‘그런데 현실은 평등하지 않다.’ → ‘ 그 이유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 ‘ 따라서 자본가들을 몰아내야 한다.’ → ‘자본가들을 몰아내는 혁명이 일어나면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허락도 받지 않고 고깃집에 쳐들어가 손님들 앞에서 시위를 하는 일부 극단적인 비건 주의자들 역시 비슷한 사고 과정을 거친다. ‘인간은 채식과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살 수 있다.’ → ‘가축은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는다.’ →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 ‘따라서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 ‘ 그렇게 되면 동물들은 해방될 것이다.’


나 역시도 진보주의자로서 일부 동의하는 점이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 공산당 선언 』을 쓸 당시 맨체스터, 리버풀 등의 공업 도시에 살았던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15~19세였고, 심지어 어린이까지 고용되었다. 실제로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 환경과 처우가 심각했다. 당대를 살았던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를 악이자 없어져야 할 제도로 볼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다.


비건 주의자들의 사례도 비슷하다. 인간은 육식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돼지와 소는 지능이 높고, 감정이 풍부한 동물이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도축될 때까지 고통받는다. 비건 주의자들의 눈에는, 생존에 필수가 아님에도 먹는 즐거움을 위해 생명체를 기르고 도축한다는 개념이 비인간적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고기를 먹지 말자는 주장을 자연스럽게 도출해 낸다. 논리적으로만 따져보면 비건 주의자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진보의 주장은 지나치게 논리적이기에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다른 관점과 예외를 고려하지 않고 복잡한 사회적 현상을 하나의 관점에서만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증 가능성과 다른 증거를 고려하지 않은 추론은 사실 논리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가깝다. 우선, 우리가 아는 대로 자본주의는 내적인 모순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지자 영국의 정치인들은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 문제를 개선하는 법안을 내놓았고, 자본가들의 지나친 사익 추구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개선됨에 따라 국민의 생활 수준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중산층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의 산실인 TV, 에어컨, 세탁기 등 삶의 질을 올려주는 가전제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경쟁심이 추동하는 생산성을 간과한 공산주의 체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고(러시아에선 농민들에 의한 혁명이 일어났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지상 낙원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부정부패가 극심해지고, 독재자가 출현해 사회를 공포로 몰아놓고,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스탈린 시절에는 약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유토피아가 지옥이 돼버릴 줄 몰랐을 거다.


비건 주의도 자세히 살펴보면 허점이 많다. 일단 인간은 잡식을 하도록 진화했다. 식물성 단백질로 채울 수 없는 동물성 단백질의 이점이 많다. 비건 주의자에게서 오히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고, 많은 비건 주의자들이 불안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또 아동이 육류를 섭취하지 않으면 성장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육식 덕분에 가축들은 진화적으로 가장 성공할 수 있었다. 닭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가축으로, 연간 소비량만 520억 마리에 달한다. 바꿔 말하면 닭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퍼트린 셈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비건 주의자들은 비건 주의를 강요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대한 육가공 시장이 없어진다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경제적인 충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채식을 강요하는 비건 주의자들이 이 점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지 의문이다. 극단적 비건 주의자들은 채식도 결국 생명을 먹는 것이고, 인간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타인에게 강요할 자격이 없다는 것, 강요할 경우 일어나는 피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으려고 한다.


나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 이면에는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도덕적 우월감을 얻으려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동기의 밑바닥에는 타인을 끌어내림으로써 열등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적 투사의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권위주의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진보 이데올로기 역시 권위주의를 띨 수 있다. 사실, 진보는 당위에서 사실을 이끌어내는 도덕주의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유전적인 차이란 있을 수 없다.’란 식이다. 진보의 담론이 도덕과 관계돼서 강제성을 띠게 되면, 진보주의도 얼마든지 경직될 수 있다. 우리는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을 통해 끔찍한 사례들을 이미 충분히 보았다.


나 역시도 진보주의자로서 진보가 어떠한 사고 과정을 거쳐 그릇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연역적 사고로 세상과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때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없을 수가 있다. 이때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의심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 회의주의를 통해 자신의 생각부터 의심해야 진보주의자는 세상에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이념적 도구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진보주의자의 눈으로 봐도 한심해 보이는 어떤 진보주의자들이 외치는 구호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엇나간 진보주의자인지 진보주의자의 탈을 쓰고 진보를 소비하는 자인지 구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들은 진보주의자가 맞을지도 모른다.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진보가 선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일 테니까. 다만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저 스스로가 선이라고 믿고 있을 뿐.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이념이나 진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주의에 반감을 가지는 건 그들이 이기적이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라, 진보적 이념에 존재하는 나름의 한계와 단점이 유난히 부각되어 보여서다. 정말로 세상에 진보를 가져오고 싶은 진보주의자라면, 자기 신념의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 스스로의 정치관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보를 정의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진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무력한 한국의 진보가 발전할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이 책에서는 진보의 이념과 역사적인 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정치 철학과 이데올로기에 관해선 다음 책에서 다루려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보수와 진보의 생물학적 차이와 그 진화적 뿌리를 밝혀내어 현실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뇌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만들어내는 호르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본다. 바로 현재 지향적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미래지향적 호르몬인 도파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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