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 약 한 달만지나면 6년 차가 되는 오늘 드디어 그이에게 방귀를 당당하게 뀔 것을 선언했다. 당연한 생리현상이고 이미 서로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부부이지만 왜인지 나는 방귀가 쑥스러웠다. 그이 말에 의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뀌어도 소리는 들렸고 자면서도 몇 번 뀌었다고 하지만 내 마음가짐이 당당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방귀를 튼 것은 공식적으로 오늘부터인 걸로!
사실 그이는 진작부터 방귀를 텄다. 내가 방귀를 안 텄기 때문인지 구수한 냄새가 솔솔 올라올 때면멋쩍은 듯 웃었고 오히려 그럴 때마다 그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온 거라며 괜찮다고 잘 했다고 칭찬했던 나였다. 그래놓고 정작 나는 이제야 내 방귀를 틀 용기가 생겼다. 아직도 어색하고 민망하긴 하지만 편하고 좋다. 사실 진짜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이와 나 사이에 방귀를 튼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그이와 한 약속이 있다. 보통 신혼부부들은 통금시간이나 집안일 분담, 경제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던데, 우리는 방귀와 트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생리적인 행위들이 일어나고 나면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꾸준히 실천해 온 지 어느덧 5년째, 지금은 거의 반사작용으로 "사랑해"라는 말이 그이의 입에서 나온다. 주변에 친구들이 있어도, 어른들이 계셔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덕분에 나와 그이의 지인들은 이 약속을 모두 알고 있다. 한 명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 대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방귀가 나온 후의 사랑고백이라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냥 대답에서 끝날 때도 있고 둘 만 있을 때는 뽀뽀도 하고 포옹도 하고 꽁냥꽁냥하기도 한다.
"뽀옹~ 사랑해~"
"히히, 나도 사랑해~"
"뽀뽀!"
"쪽!"
방귀를 뀌면 사랑한다고 말해요 :)
아무리 애정표현이 많은 부부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뜬금없이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자주 한다고 해도 잠자기 전이나 출근인사를 할 때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약속을 만들어 놓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만큼 눈을 더 마주치고 애정표현을 더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이만 방귀를 텄었는데 이제 나도 텄으니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두 배까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엉뚱하지만 독특한 규칙 덕분인지 나와 그이는 아이까지 있음에도 불구하며 신혼부부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핑계 삼아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덕분에 설레는 감정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주변에 누군가의 결혼 소식이 들리고, 그 누군가가 나와 친한 사람일 경우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방귀와 트림 후 애정표현'의 약속을 꼭 권유한다. 정말 너무 좋은데, 너무 좋아서 아무한테나 알려주기는 싫은 숨겨진 단골 맛집 정보 같은행복한 결혼생활의 비법이다. 물론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방귀와 트림은 평생 하는 것이고 매일 하는 것이니 애정표현을 매일 할 수 있어서 좋은 방법이라는 반응, 남사스럽게 그런 걸 어떻게 하냐는 반응, 그렇게 듣는 애정표현은 진짜 애정표현이 아닌 장난 같아서 별로라는 반응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는 않지만 내심 궁금하긴 하다.
생리현상 후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고 엉뚱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그이가 이 약속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뽀옹~사랑해"라는 말이 얼마나 로맨틱한지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덕분이다.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 우연히 이 영화를 보았다. 애절한 스토리와 함께 두 주인공이 나누는 그 짧은 대사가 나와 그이에게 감명 깊었고, 실생활에 맞게 살짝 변형한 것이다.
실제 대사에는 욕설이 들어있다.
나는 이제 그이 앞에서 방귀를 당당하게 뀔 것이고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할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신혼부부나 예비부부, 방귀를 아직 트지 못 한 부부가 있다면 '방귀와 트름 후 애정표현'약속을 추천한다. 언제까지 숨길 순 없는 생리현상이니 기왕이면 달달하고 달콤하게 오픈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