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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Sep 09. 2020

(경주여행-2) 시간의 나이테

유적과 도시가 뒤섞여 있는 경주

? 경주에 6일이나 있는다고?! 이틀이면 충분할 텐데...
혹시 역사 전공이었어?


경주에 3년간 살았던 지인이 하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도 경주에 무려(?) 6일을 있는다는 게  아깝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경주에 한번 꽂혀버렸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많이 보기 위해 이곳저곳에 옮겨 다니는 것보다  곳에 오래 머물면서 많은  관찰하는  최고다. 결국 6 7 동안 경주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뒷이야기’, ‘야화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국사는 학창 시절부터 시험 점수부터 꽝이었다. 외워야  년도, 도자기의 종류, 어느 나라가 몇 년도에 승리했는지... 지금도 국사는 시험 문제로만 다가온다. 하지만 경주에 처음 도착하고 왕릉을 봤을  뭔가 달라졌다.


조용한 밤하늘, 주변에 산도, 빌딩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가운데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가족들이 정자에 앉아 하하호호 웃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그곳에 왕의 무덤이 사람들을 인자하게 바라보는  같았다.


 분위기를 글로써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다. 피곤한 가운데 무거운 배낭을  채로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이때 경주에 매료된  같다. 매일 빌딩과 도로, 지하철에 쌓여 살아가는 나에게 경주의 유적지는 아주  과거를 지금  눈앞에 생생하게 만나게 해 주었다. 


소에 가방을 두고 나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밖은 선선했고 걷기  좋은 날씨였다. 방금 전의 피곤함은 사라지고  걷고 싶었다. 스마트폰의 지도도 보지 않은  그저 유적지를 따라 걸었다. 갑자기 어두운 지역이 나타났다. 사람도 전혀 없고 LED조명만이 은은하게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자 바다가 나타났다.


경주 쪽샘 유적지구

별빛 바다를 걷는 기분이었다.

주변이 무덤 투성이지만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홀로 한밤중에 낯선 곳을 걷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두려움보다 안정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선선한 바람과 고요함,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한 시간 가량 천천히 홀로 별빛 바다를 거닐었다.


이후 여행 내내 경주 시내 곳곳을 걸어 다녔다. 미처 보지 못한 유적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교과서  사진이 아닌 생생한 실물을 만끽했다. 때로는 조용히 바라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수천 년  유적이 주는 기운을 느꼈다.


유적을 즐기는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자리에 잠자코 잠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2000 혹은 3000, 4000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눈앞에 굴러다니는 것이 보인다.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으로 보이게  것이다. 유적과 만나는 , 그것은 시간을 천년 단위로 보게 하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중에서-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왕의 무덤, 왕릉이었다. 보통 유적지는 사람들과 분리시켜 놓는다. 입장료를 받거나 저녁 이후에는 출입을 금지한다. 하지만 경주는 신기하게도 대릉원을 제외하고 많은 유적들이 그대로 사람들의 일상에 놓여 있다. 유적이 워낙 많으니 일반 백성(?) 삶과 섞여버린  같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당장 종로만 가도 대부분의 유적지는 저녁 이후에는 출입금지다. 어디까지나 관광지로서 일정 시간 이외에는 사람들과 분리된다. 하지만 경주는 다르다. 많은 것들이 섞여 있다.


재미있는 건 이런 모습은 과거 사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있다. 향토 사료관을 구경하던  재미있는 지도를 발견했다.

경주부 읍성의 지도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보였다. 왕릉들의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의 왕릉은 매끄럽고 완만한 곡선에 푸른 잔디가 고르게 깔려 있다. 하지만 지도  왕릉은 그야말로 못난이 언덕이었다.

심지어  아래 민가로 추정되는 집들이 아무렇게나 지어진 채로 있었다.  당시 왕의 무덤 주위에 이렇게 일반 시민들이 살아도 되는 것일까? 바로 질문했다.


맞습니다.  지도가 만들어질 때는 조선 시대 초기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변의 언덕을 산으로 알고 있었어요. 설마 왕의 무덤인 줄은 몰랐던 거죠.  신라가 멸망하면서 폐허가 되고  그위 사람들이 집을 지으면서 살기 시작했죠. 자기  뒤에 잡초 투성이 언덕이 무덤인지 산인지  필요도 없었겠죠.


시간의 힘은  대단하다. 권위 넘치는 왕의 무덤을 뒷산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경주에는 지하철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조금만 파도 유물이 나오고 유적지로 지정되기 때문이란다. 학교에서 보물 찾기를 하다가 정말 보물을 찾아 버리는 곳이 경주다. 시간의 나이테를  고스란히 일상에서 느낄  있다는  부러웠다.


최근 휴가가 끝나고 우연히 잠실 쪽에  일이 생겼다. 그때  이름 중에 선릉이 무심코 들어왔다. 설마 하고 찾아보니 서울에도 선릉과 정릉이 있었다. 매번 지하철역 이름으로만 알았지 정말 왕릉이 있는  몰랐다. 잠깐 내려서 주변을 걸었다. 빌딩  사이에서 이렇게 오래된 유적지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만큼 역사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한편으론 왕릉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담장이 얄미웠다.(사진도 까치발 + 팔을 올려 촬영했다^^;) 담장이 곧 유적지와 도시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시간의 나이테를 중간에 싹둑 자른 것 같았다. 물론 유적지 보호 차원, 왕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한 조치인 건 잘 안다. 하지만 좀 더 부드러운 방법은 없었을까 싶기도 했다. 좀 더 도시와 함께 녹아들게 조성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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