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보다 디지털 자산을 선호하는 아이들
선생님 저 옷 샀어요!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말한다. 한창 기계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옷을 샀다고 자랑하는 게 이상했다. 그리고 항상 검정 옷만 입고 다녔던 아이다. 눈을 들어 아이를 보니 여전히 대충 입고 온 검은색 운동복에 반팔이다. 설마 이게 새로 산 옷이라고?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현실에서 꽤 괜찮게 살 만한 옷 가격으로 로블록스 아바타 옷을 산 것이다. 아이는 자랑하듯 내게 휴대폰에 있는 로블록스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그 장면이 눈에 보였다.
비단 이 아이만 그럴까. 20살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 중이다. 20대 교사로 봉사할 때 교회에서는 늘 간식을 준비했다. 떡볶이, 라볶이, 볶음밥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간식을 준비했었다. 전도를 하거나 기특한 일을 한 친구에게는 초콜릿을 상품으로 주었다. 아이들은 간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초콜릿도 소중히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갔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간식은 둘째치고 간단한 과자조차도 받지 않으려 한다.
특히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간식조차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의 선호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과자를 주면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예 받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눈이 번뜩이는 상품이 있다. 바로 문상(문화상품권)이다.
"문상으로 뭐할 거야?"
등등 디지털 자산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문제집을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게임 아이템을 사거나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는 데 사용한다. 어떤 아이는 아바타에만 거의 20만 원을 썼다고 한다. 그 아이의 옷장(인벤토리)을 가보니 화려한 옷,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현실에는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다니지만 아바타만큼은 런웨이에 올라온 모델만큼이나 화려했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교회나 여러 단체에서도 아이들 선물로 현물이 아니라 디지털 상품 궈이나 아이템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단 생활이 풍족해진 것이 주요하다. 먹을 것도 풍부하고 물건도 많아지니 현실에서의 물건을 더 이상 필요가 없다. 현실의 자신이 굶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아가니 이제 헐벗은(?) 자신의 아바타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나약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뭔가 부족해 보이는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가 어릴 적에도 있었다. 과거 리니지나 온라인 캐릭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돈을 투자해서 강력하게 만든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 싸이월드에서 수많은 도토리들로 가상의 방을 화려하게 꾸미고 내 미니미를 멋지게 만들었다.
지금의 흐름과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 과거에 우리는 디지털 캐릭터를 꾸미거나 공간을 꾸미는 것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누구나 그것이 어디까지나 디지털 데이터이고 허상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싸이월드가 망하면서 우리의 도토리로 결제한 수많은 가구, 옷들을 잃은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자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한 때 놀았던 흔적이라 생각한다. 미니 이에게 입힌 옷을 되찾아 달라고 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디지털 아바타에게 입힌 옷이 곧 진짜 자산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미 지금은 거품이 꺼져버린 NFT시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디지털 자산들이 생겨날 것이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내가 구입한 자산의 형태는 끝까지 내 소유로 남길 수 있다. 물론 망해버린 게임이나 서비스에서 사용되던 디지털 데이터를 내가 갖고 있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다.
현재도 E-BOOK시장을 보면 디지털 자산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한 업체에서 구입한 전자책은 회사가 망하면 다른 업체의 전자책으로 소유권을 이동시켜 준다. 사용자는 다른 업체의 이북에서 이전에 내가 구입한 책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은 모든 디지털 게임, 서비스들이 파편화되어 있어 서유권을 그대로 이동하는 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소유권만 있다면 내 가상의 캐릭터는 어디서든지 호환되고 지금 갖고 있는 장비, 옷 그대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주민번호가 어느 서비스에서든 통용되듯이 내 아바타는 어느 메타버스 서비스에서도 통용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의 나보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나의 모습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이미 지금도 수많은 공인들이 온라인상의 악플이나 비난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디지털 세계에서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단지 게임 속에 존재하는 아바타일지라도 미래에는 우리의 주민등록증처럼 아바타가 곧 내 신원이 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이 머지않을 거라 생각한다. 검정 운동복을 입고 온 아이가 화려한 로블록스 캐릭터를 자랑하는 모습이 그래서 사뭇 진지해 보인다. 단순히 현질을 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나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이 곧 미래에 다가올 먹거리라는 생각을 하니 아이의 옷자랑이 사뭇 부러워졌다.
나도 큰 마음먹고 로블록스에서 옷을 구입하기로 했다.
일단 돈을 충전해야 했다. 대략 5천 원을 충전하자 400 벅스가 들어왔다.
앞치마와 비니를 구입하자 300 벅스가 들었다. 1 벅스당 대략 15원 정도 하지 4500원을 들여 구입한 것이다. "오~ 선생님 옷 사셨네요. 얼마짜리예요?"
세상에나, 평소 옷에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내 아바타의 옷을 보고 품평을 시작한다. 비니가 얼마짜리라느니 디자인이 어떻다느니 등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제 옷도 봐주세요"
그야말로 나는 깨갱하고 말았다. 얼핏 봐도 1000 단위의 로벅스가 소모된 것이 뻔한 아이템들이었다. 내가 아무리 아이보다 돈이 많더라도 도저히 이렇게 꾸밀만한 용기가 나질 않는다. 역시나 온라인에서는 아이들이 더 우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선생님, 저 따라오세요. 오늘도 재미있는 게임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오늘도 나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