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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19. 2023

6화 - 이모(E-Mo) 네트워크가 특별한 이유

폐쇄된 곳에서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통로


안녕하세요.

30 대 후반, 9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퇴사한 후 작년 8월에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현장에서 숙식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서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 의미 있는 일들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들은 매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했고 많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재중이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시글 아래에 댓글이 있으며 브런치 댓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7863337



즐거운 명절입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금요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5일이나 휴일이 생겼습니다.

(23년 1월 20일~24일 설 연휴로 5일간 휴무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쉬어보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보통 회사라면 오랜 기간의 휴가가 굉장히 반가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습니다.


바로 ‘공수’ 때문입니다.


이곳은 철저히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곳입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 공수입니다.  

이후에 2시간 단위로 연장되면서 0.5 공수씩 추가됩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1.5 공수, 저녁 9시가 14시간 근무로 2 공수.


사실 돈은 이때부터 벌리기 시작합니다.

단가가 14만 원이라 가정할 때 2시간 연장부터는 7만 원, 시급 3만 5천 원이라는 시급으로 괜찮은 금액입니다. (물론 조공 기준이고 기공이나 단가가 높은 직공은 시급이 훨씬 높아집니다)


보통 한 달에 30 공수를 기본으로 생각합니다.

30 공수 정도 되어야 ‘멀리 고덕까지 와서 일한 보람이 있네’라고 생각할 정도의 금액이 됩니다.

그래서 모집 공고를 보면 ‘기본 30 공수 보장’ ‘풀 연장, 풀 야간 4~50 공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명절이 있는 달에는 30 공수가 위태위태합니다.

일반적으로 주 6일을 일한다 할 때 토요일 제외 1.5 공수가 있는 날이 3~4일은 되어야 30~32 공수 정도 나옵니다.

긴 명절이 있는 날은 팀장들은 일부러 야간(2 공수) 작업을 강행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그래야 명절을 쉬고도 30 공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같이 5일을 쉬어 버리면 말 그대로 30 공수 나오는 게 굉장히 힘듭니다. 게다가 독감도 유행하면서 1~2일을 아파서쉬어버리면 현장 말로 ‘이번달 공수 조졌다’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저같이 혼자 와서 돈 모으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가족이 있거나 빚을 갚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공수가 안 나오는 달은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쉬면서도 걱정되는, 서글픈 상황입니다.


현장 분위기도 밝지 않습니다.

금리 인상의 여파와 레고랜드 사태(제 추측입니다)의 여파, 삼성전자 이익 감소(-70%?)로 인해서 전 공정이 슬로 다운상태입니다. 삼성 자체적으로도 이익 감소로 모든 공정을 늦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래 협력사에 퍼지는 여파는 더 심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있는 곳은 팀 전체가 3~4팀이 아예 공중분해가 되었고 설 이후에 100여 명 정도 감축 예정이라 합니다. 과거에는 무언가 잘못하면 1~3일 출근금지를 당할 일이 이제는 바로 퇴출(1진 OUT)되는 일도 잦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최대한 불법작업이나 괜히 꼬투리 잡힐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런 소식은 어디서 들었을까요?


맞습니다. 바로 이모 네트워크를 통해서입니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이모님들은 전 팀, 전 공장에 존재합니다. 보통 반장님들은 팀 단위로 움직이고 팀원들과의 대화가 활발합니다. 그래서 다른 팀의 소식에는 둔감한 편입니다. 반대로 이모님들은 팀원에 속해 있지만 관리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팀 이모님들과의 교류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팀이 해체되고 또 상황이 어떤지 훨씬 구체적이고 빠르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왜 그리 입소문에 의지하는 것일까?’


그건 이곳 현장의 특성이 군대 못지않은 폐쇄성 때문입니다.


과거 군대에서도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어떠한 사건들도 실시간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휴가를 나와 신고하지 않는 이상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알 수 없었습니다.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보안 때문에 카메라 사용은 불가하고 누군가가 굳이 시간을 들여 글을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철저한 ‘을’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 회사원이 갖고 있는 권리도 못 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계약서 자체에도 불공정한 거래가 많고, 공수제로 하면서 연차도 없습니다. (물론 팀에 따라 만근시 추가 보상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또 월급이 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심한 곳은 두 번 나누어 지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월급 밀리면 바로 탈출신호라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 반응은,


’그래도 떼먹지 않아서 다행이지 ‘ 정도의 어쩔 수 없다로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출근을 안 할까 봐 미리 휴일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업체도 많습니다. 연장한다 하고서는 그 날 바로 취소되거나 반대로 갑자기 야간이라 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주 6일, 하루 12~14시간씩 일합니다. 사회로 치면 9 to 6가 아닌 9 to 8, 9 to 10입니다. 사회에서 이 정도 강도로 일해 보신 분을 알 겁니다. 퇴근하고 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대부분 오는 분들은 근로 환경이나 법과 같은 정보에 밝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초반에 사람들이 찾아보는 곳이 디씨인사이드의 마이너 노가다 갤러리인데... 이곳의 정보 90%는 욕설과 거짓 정보들입니다. (물론 1% 확률로 보석 같은 글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제 글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는 것도 공개되어 있는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퇴근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 자체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너무 피곤하거든요-_ㅜ


그렇기에 이곳에서 이모 네트워크는 어떤 정보 채널보다도 각별합니다.


이번 설 연휴도, 월급이 언제 밀리고 제 때 나오는지도 모두 이모 네트워크를 통해 먼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모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편입니다. 비용은 밝은 인사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용 가능합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어떤 정보를 알고 싶다면 소정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바로 작은 선물입니다. 지금은 다른 업체로 옮기제 선임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소위 이모님들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선임을 통해 이모 네트워크의 존재(?)를 깨달았고 사용법도 배웠습니다.



항상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할 말 없어도 몸으로 슬쩍 부딪히면서 장난치고 하다 보면서 이모님들과 쉽게 친해지고 더 많은 정보들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선임은 항상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단 것’입니다.

개별 포장된 과자들이나 커피믹스 등을 들고 다니면서 슬쩍 이모님들에게 건네는 것이죠.


군대와 굉장히 비슷한데 현장에서는 항상 단것이 부족합니다. 특히 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단 게 땡깁니다.

원래 커피믹스를 극혐 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중사분들의 커담(커피믹스+담배)의 냄새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었죠. 전역 이후로는 믹스커피에 눈길도 안 돌리던 저였지만 지금은 항상 챙기고 다닙니다.


(현장에 따라 커피 믹스가 금지된 곳도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원칙은 작은 과자류도 현장 내에서는 취식 금지지만 많은 경우 간단한 캔디나 작은 과자류는 눈치껏 한입에 넣고 일을 합니다)


그렇기에 작은 사탕 하나로 사람이 활짝 웃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입니다.


아래는 제가 정리해 본 이모 네트워크 비용입니다.


일단 기본단위는 1 커피믹스입니다.(맥심 화이트 골드 기준)


작은 정보들, 질문에 대한 답 = 1 커피믹스 또는 캔디


조금 더 귀한 정보(다른 팀 정보나 현재 분위기 등) = 담터 율무차, 카누 라테


내가 잊어버린 공구를 찾아주거나 곤란한 일을 도와주었을 때 = 스벅 커피캔, 작은 초코바


이런 식으로 작은 보답을 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사회생활 자체를 작은 학원에서 진행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일도 없었고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주는 것 자체가 어색했습니다. 쭈뼛거리면서 감사하다 하면서 괜히 줄 타이밍도 놓치고, 뜨거운 캔커피가이미 식어버린 뒤에 전해드리기 일쑤였습니다.


그 뒤로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슬쩍 건네보면서 나중에는 굉장히 능숙하게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지독한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들리기 위해 오전을 쉬었습니다. 무려 병원비 + 0.5 공수를 투자한 치료였습니다. 이때 아픈 팀원들을 위해 쌍화탕을 넉넉히 구입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모님이 계셨습니다. 그날 따라 기침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바로 쌍화탕 한 병을 슬쩍 옆에 두면서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감동+고마움으로 가득 찬 이모님의 눈을 봤습니다. 순간 제가 병이 다 낫는 기분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표하는 즐거움’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때마침 그분도 감기로 고생하고 있었으니 때와 장소,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감기 조심하세요 라고 카톡을 하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인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물론 사회에서도 커피 한잔 사거나 기프티콘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기프티콘은 번거로울 수있습니다. 서울에 비해 교통 인프라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퇴근하고 집에 가기 바빠 일부러 카페에 들르기도 애매하고 위치도 멀기 때문입니다. 즉 보답은 현물로 간단히 즉석에서 보답하면 상대방의 표정과 ‘감사를 전달하는 법’을 자연스레터득하게 됩니다.


특히 이곳은 사회와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습니다.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다들 일요일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시간을 이곳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일하고 부딪히는 곳입니다. 한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부는 현장에서 서로 덜덜 떨면서 자신이쓰던 손난로팩을 주기도 합니다. 온라인이 아닌 철저히 오프라인에서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과 부딪힘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카톡이나 메일이 아니라 서로 직접 인사하고 작업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장만큼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혀 볼 수 있는 곳은 드물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서 내가 가진 작은 자원을 나눠 주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많은 훈련이 됩니다. 계속해서 고마움을 눈에 보이는형태로 표현하고 또 적극적으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사람 대 사람으로 알아보는 일은 이렇게 제한된 환경이 아니면 경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이모네트워크는 현장 생활하면서 인터넷과는 전혀 다른 소통 채널입니다. 나중에 사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말하고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장에서는 커피조차 엄격하게 금지하는 곳이 있고 아예 제공하는 곳도 있고 우야무야 넘어가는 곳도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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