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석 Oct 19. 2023

5화 - 이모(E-Mo) 네트워크 이야기

고덕의 특별한 존재, 이모님들과 친해지기

안녕하세요.

30 대 후반, 9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퇴사한 후 작년 8월에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현장에서 숙식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서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 의미 있는 일들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들은 매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했고 많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재중이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시글 아래에 댓글이 있으며 브런치 댓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7849953



의외로 많은 분들이 쪽지로 물어보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부부가 해도 될까요? 또 부인(여자친구)이 하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가능합니다. 부부나 연인들도 꽤 보입니다. 남자는 조공(기초 조수), 여자는 유도원으로 일하는 케이스도 많습니다. 이런 부류가 어찌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둘이서 방 하나 잡고 월세와 생활비 다 써도 최소 500만 원씩은 저축 가능한 구조니 까요. 그래서 몇 년 힘들게(?) 일하고 나면 간단한 전세는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잠깐 기사를 찾아보니 둘이 500만 원 저축은 정말 보수적으로 잡은 금액이군요. 둘이 월천도 가능하다 하는데 이건 굉장히 드물고.. 개인적으로는 초보 기준으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도 500입니다)


가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커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특히 아직 막일에 대한 인식이 강한 편인 우리나라에서 말이죠. 어찌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 없이 몸 튼튼하고 에너지 넘칠 때 가장 효과적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커플들을 보며 ‘와... 둘이서 한 달에 얼마를 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적지 않은 풍족함을 누리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여성의 경우 타 현장에 비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가 오늘 이야기할 이모님들의 높은 비율입니다. 물론 남자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불편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성추행이나 관련된 문제들은 저는 아직 주변에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대부분 일적으로 대우하고 친하다 해도 선을 지키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5만 명이 일하는 곳인 만큼 이 정도 인구면 일반 사회에서도 비정상적이고 선을 넘는 사람들은 꼭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성이 하는 일은 주로 무엇인가요?


고덕의 특이한 점은 높은 여성 비율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덕에는 의외로 젊은 연령층과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주로 안전 관련 업무를 맡습니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조공들보다는 5천 원~1만 원 정도 낮습니다. 대신 그만큼 노동 강도는 낮은 편입니다.


안전감시, 화재감시(안감, 화감) : 말 그대로 현장에서 작업을 안전하게 하는가 감시하는 역할입니다. 밀폐된 구간에서는 작업자가 산소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지, 다른 작업자가 들어가 있는데 입구가 안 닫히도록 지키는 등 안전과 관련된 일들을 합니다.


신호수 : 교통정리 역할입니다. 평균 5만 명이 활보하는 현장이기에 수많은 사람들과 트럭, 크레인이 짐을 옮기고 움직입니다. 이때 길에서 신호역할을 합니다.


유도원 : 삼성에서는 모든 T/L(테이블 리프트)에는 유도원이 있어야 운행 가능합니다. 절대로 혼자서 T/L을 작동시켜서도 안됩니다. 유도원이 먼저 동선을 확보하고 사람들에게 뒤에 T/L이 지나가니 좌우로 비키도록 합니다.


이런 안전과 관련된 곳에서 여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남성 유도원, 신호수도 있지만 드문 편입니다. 노동 강도는 약하지만 오래 일한다 해서 단가가 올라가진 않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 있습니다.


남자는 반장님, 여자는 이모님이라 부릅니다. 원래 반장은 나름 높은 직책으로 알고 있으나 다들 서로 존중해 주는 의미로 반장님이라 부르고, 이모님은 대부분 여성분들이 기혼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친해지면 누나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모님이라 부릅니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모님들에 관한 것입니다.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현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모님들의 비율도 3~40%에 이릅니다. 무엇보다 안전과 관련된 업무에는 항상 이모님들이 계셔서 항상 이야기하고 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지면 부모님처럼 친절하게 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곳에서 이모님들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일단 남성인 반장님들에 비해 사교성이 높다 보니 일을 처리하는 데에 서로 간의 대화로 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비를 누군가 먼저 가져다 쓰면 반장님들은 서로 “왜 아무 말도 없이 가져가시나요”라고 서로 얼굴을 붉혀도 이모님들이 나서면 ”잠깐 저기서 5분만 쓰고 준다고 하네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라고 하면서 불화를 중화시켜(?) 줍니다.


특히 공용 물품 같은 경우 서로 공유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모님들이 중간에서 적절하게 분배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 예로 안전펜스가 있습니다. 보통 작업장 내에 사람들이 자기 팀 표시를 해 놔도 어느 순간 사라져 있거나 다른 팀에서 가져다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유도 이모님은 다른 팀에 가서 잠깐 빌려오거나 빌려주는 등 서로 적절하게 공유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남의 걸 가져가지 않는 게 우선이지만요...)


사실 처음에 이모님들이 서로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공지사항에도 과도한 잡담이나 스마트폰 사용은 자제하라는 경고도 내려올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수다에서 어느 순간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반장님, 아무래도 이번 연휴 보너스는 줄어들 거 같아요 “


”예? 저번에 팀장님이 분명 추석 때 보너스로 *공수 준다 말했고 실제로 회사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요?”


“내가 다른 이모님들에게 들어봤는데 그렇게 못준데요”


“에이 설마요 ㅋㅋㅋ 괜히 음모론 퍼뜨리지 마세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휴가나 근무 시간 변동들이 미처 공지사항으로 퍼지기도 전에 이모님을 통해서 아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후에 이모님들의 입소문이 괜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모 네트워크(E-Mo Network : Empathic Message  from Obsever, 관찰자로부터의 공감적 메시지 네트워크)라 이름 붙였습니다. (물론 조크입니다)


이제 이모네트워크를 위키형식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모 네트워크란?


이모 네트워크는 비공식적이면서도 상당히 높은 신뢰도를 지닌 네트워크입니다. 안감, 화감, 유도 등 이모님들로 구성된 네트워크 채널로서 그분들은 시간이 될 때마다 서로의 정보를 교환합니다.


이모님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분들이 하는 일이 곧 작업장 곳곳에 위치해서 안전과 관련된 사항들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현장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E-Mo Network는 입소문, 카톡등을 통해 빠르게 정보가 공유됩니다.


특히 공수와 관련되거나 연휴 휴무 계획에 관한 소문은 굉장히 빠르게 퍼집니다. 월급이 제 때 나오거나 밀리는 경우도 팀장님이 아닌 이모님들로부터 더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느 회사에서는 월급이 또 일주일 밀린다더라, 어디는 반만 나온다더라, 어디 회사는 휘청거린다 등 각종 정보들이 즉시 공유됩니다.


이모 네트워크 이용하기(Basic 과정)


만약 당신이 살갑거나 호감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상당히 쉽게 네트워크 접근 권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마스크를 쓰고 있고 작업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외모보다 살가운 성격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모님들에게 웃으며 한번 인사해 주고 작은 친절에도 반드시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드리길 바랍니다. 이러한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모님의 비공식 고신뢰 정보가 당신에게 들어옵니다.


물론 모든 정보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곡된 정보도 많은 편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높은 신뢰도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이모네트워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중요한 핫라인을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론 당신이 듣기 싫은 소식-회사 사정이 안 좋다더라, 월급이 밀린다더라 등-일 수도 있습니다. 잠자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골라 들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모네트워크는 주로 밀폐된 장소나 조용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도 스마트폰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목소리(Voice) 형태로 전달됩니다. 당신이 스마트폰에만 집중해서 정보를 찾는다면 반쪽짜리 정보만 얻을 뿐입니다.


가령 엘리베이터에서도 이모님들은 서로 만나면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때 당신은 스마트폰 대신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말을 들으십시오. 만일 용기가 어느 정도 있다면 최대한 큰 제스처와 다소 호들갑적인 목소리, 눈을 크게 뜨고,


“헐?! 정말요? 대박대박, 그럼 이번 연휴 때는 3일 쉬는 거예요?!”


“(이마를 짚으면서)와.. 어쩐지 저번에 이모님이 말했던 대로 되었네요”


라고 그들의 정보에 대한 엄청난 반응(reaction)을 보여주십시오. 박수까지 치면서 반응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더 깊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되어도 당신은 이모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생활에서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먼저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모 네트워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밝은 인사성, 높은 리액션, 감사인사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이모님들은 당신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줄 것입니다. 엄청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저 출근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해 보십시오.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리액션을 취하고 꼭 감사인사를 드리십시오. 이것만 매일 반복해도 당신은 비공식 고신뢰 정보에 충분히 접근할 권한을 얻게 됩니다.


처음엔 단순한 수다일 뿐이라 생각했던 이모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끔 현장의 사고 상황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모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는 이유는 관리체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모님들은 각 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따로 관리됩니다. 안전, 유도 등의 통합 단톡방이 따로 있으며 업무일지도 따로 제출합니다. 게다가 유도 이모님들은 T/L이 필요한 곳이라면 다른 팀이라도 지원을 가기 때문에 활동 반경이 더 넓습니다.


이러한 유동성과 다양한 현장 배치로 인해 이모 네트워크는 광범위하게 작동합니다. 무엇보다 이모님들 특유의 살가운 대화와 친밀감도 한 몫합니다. 대부분 이모님들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들같이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나이 많은 반장님들에게도 살갑게 대해주기 때문에 관계가 원만합니다.


이렇게 이모 네트워크의 위력을 파악한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식을 넘어 어드밴스드단계인데, 이 때는 약간의 비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드밴스드 과정은 다음 글에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