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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19. 2023

4화 - 어쩌다 이곳에? 당연히 돈 때문에 왔지!

다들 스토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30 대 후반, 9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퇴사한 후 작년 8월에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현장에서 숙식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서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 의미 있는 일들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들은 매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했고 많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재중이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시글 아래에 댓글이 있으며 브런치 댓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7838875



여러분이 제일 먼저 하는 일


만약 여러분이 이제 밴드나 지인을 통해 고덕으로 오게 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당연히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입니다. 대부분 사무실이 평택 지제역 근처에 몰려있습니다. 그곳에서 컨테이너박스에 모여 옹기종기 앉아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상용 일용직 계약서 한 장짜리를 작성하는데 원래는 복사본을 줘야 하지만 주지 않습니다.(업체마다 다릅니다) 뭐 그런 거 따지는 사람도 없고요.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것은 고혈압 유무입니다. 고혈압인 경우 삼성 엔지니어링에 소속될 수 없습니다. 대신 삼성물산의 산하 업체에 들어가야 합니다. 둘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물산이 좀 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온다는 것이죠.


이후에는 교육이 있는데 보통 다음날에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때부터 1 공수로 계산해 줍니다. 교육은 오전 중에 끝나고 오후에는 업체에서 기본적인 장구류를 지급합니다. 하이바, 안전화, 절연화, 고글, 생명 벨트 등 기본적인 업무가 가능한 상태의 아이템을 지급합니다. 이렇게 5시가 되면 1 공수로 계산합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습니다. Lv.1의 캐릭터, 기본적인 무장만 한 채로 게임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하다 보면 고레벨들은 온갖 아이템으로 무장한 걸 보면서 점점 장비 욕심도 생기곤 합니다^^


일에 점차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어요?”


“이전에 무슨 일 했어요(어쩌다 여기에)?”


입니다. 가로 안의 ’어쩌다‘는 실제로 말하지 않지만 뉘앙스는 동일합니다. 그만큼 이곳은 사람들이 원해서 오는 곳은 아닙니다. 물론 처음부터 건설에 뜻을 품고 팀장을 꿈꾸거나 기술자가 되려고 온 사람들도 있자만 99%는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초반에 남는 시간에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나’ 토크쇼가 벌어집니다. 몇 가지 소개를 하자면,


센과 치히로 유형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온 케이스입니다. 생각보다 은근히 많습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거나 잘못된 투자를 해서 집안에 막대한 빚이 쌓인 경우입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운 케이스입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대부분을 집에 송금하고 본인은 물건 살 때도 하나하나 신중히 사고 최저가로만 구입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정말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빚만 아니면 얼마나 신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사업실패로 인해 복구자금 만들기


이 부분도 많습니다. 제 주변뿐만 아니라 ‘시사기획 다큐’를 보니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폐업하거나 다시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한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투자 실패


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코로나 시절 ‘벼락 거지’라는 말이 유행했던 만큼 너도 나도 주식, 코인, 공모주, 부동산 투자를 안 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였습니다. 이미 주식 게시판이나 코인판에 ’ 고덕‘으로 검색해도 한강 가기 전 마지막 보루로 고덕이 나오는 실정입니다-_-


재미있는 건 여기 일하는 분들도 무엇하나 들어갔다 물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90%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아무 말 안 하다가 친해지고 돈 얘기가 나오면 결국...

아이러니한 건 삼전에 투자했다 물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_ㅜ ㅋㅋㅋ

(물린 돈을 여기서 되찾는다?!)


학비 충당, 학자금 갚기


고덕에 와서 놀란 점이 일반 공사현장과는 다르게 20대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군대 다녀와서 학비를 벌려고 오는 케이스도 많고 졸업 이후에 학자금을 갚을 목적도 많습니다. 실제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일반 직장에 들어가서 생활비 충당하며 학자금을 갚으려면 꽤 오래 걸리지만 이곳에 와서는 몇 달 걸리지 않으니까요. 우리 팀원 중 한 명도 불과 세 달 만에 학자금을 다 갚고 더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 실패 또는 취업자금(?) 준비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몇 달 일하고 그 돈으로 신림동으로 간 친구도 있습니다. 제 룸메 중 한 명도 계속 부모님 용돈 까먹으면서 취업준비 하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까지 이곳에서 일하겠다 결심하고 왔다고 합니다. 예전에 장교 전역 후 퇴직금 까먹으면서 전전긍긍 취업준비를 했던 저와는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대견하고 부러웠습니다.


결국 다들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왔습니다. 최근 들리는 얘기로는 금리인상과 경기 침체로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식게나 코인판에서도 ‘안 되겠다 고덕 가야겠다’ 류의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목적이 분명해서 오히려 불편함이 없습니다.

왠지 돈이 목적이라면 서로 내 돈! 내 돈! 거리면서 발버둥 칠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깔끔합니다. ㅈ소기업의 어설픈 비전보다는 얼마동안 일해서 얼마를 벌어야지라는 비전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돈 때문에 온 곳이고 돈 때문에 일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어설프게 직업의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단가를 올려주고 나중에 팀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너도 나도 돈 때문에 여기 왔다 ‘라는 게 기본 생각입니다.


이게 왜 좋냐면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여기가 평생직장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날 그만두어도 이해하고 다시 들어와도 이해해 줍니다. 다들 ’ 그럴만한 사연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또 돈에 따라 팀을 옮기거나 팀이 업체를 옮기는 일도 흔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악몽 같을 수 있지만 철저하게 스스로 몸값을 올리거나 일이 많은(공수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옮겨가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ㅈ소기업에서 강요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요받지 않습니다.


몸과 몸이 부딪혀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팀원의 퇴사와 입사에 대해 다들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럼 서로 관계가 굉장히 차가우냐? 그건 또 아닙니다. 매일 12시간, 14시간씩 서로 ’ 몸으로‘ 일하다 보니 안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일반 사무직과 다르게 이곳은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법니다. 배관공은 컷쏘(Cut Saw)로 한 명은 자기 몸만 한 배관을 잡고 한 명은 자릅니다. 컷쏘의 진동이 고스란히 잡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8 미터 천장까지 닿는 T/L(Table Lift)에 탑승한 사람들은 흔들리는 바구니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천장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앵커를 박습니다. 서로 의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잘 맞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있으면 당연히 싫겠죠. 일반 사회와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몸과 몸이 서로 닿고 의지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인간적인 유대감이 훨씬 쉽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소의 동기를 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까닭과도 같습니다. 함께 몸을 구르고 고생하면서 친해지니 말이죠.


제가 이곳에 온 지도 이제 4개월이 되어갑니다. 이제 슬슬 제 아래 후임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같이 어린 친구들입니다. 당연히 돈 때문에 왔을 겁니다. 삶의 밑바닥이든 어디든 간에 용기 내서 이곳에 온 친구들이 대견합니다. 어설픈 비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시한 친구들이 멋집니다. 전전 긍긍하며 돈 때문에 작아지고 급하게 아무 곳에나 가려는 제 과거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돈, 어떻게 보면 안타깝지만 현실을 직시한 사람에게는 고덕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의 사람들이 좋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12시간, 14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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