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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07. 2019

피카소의 목표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일까?

열 명의 남자아이들과 스페인! 열세 번째

피카소 미술관을 가다!
 

바르셀로나 아트티켓. 덕분에 표가 매진임에도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은 피카소 미술관을 향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은 예약하거나 아트티켓(바르셀로나 전역 6개 미술관을 볼 수 있는 티켓)을 이용하지 않으면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날도 아트티켓을 활성화하려고 매표소에 갔는데 제 앞에서 오늘 현장 표는 끝났다고 하자 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탄식하며 돌아갔습니다.


피카소 하면 보통 큐비즘을 많이 생각합니다. 뭔가 기괴한 느낌을 주거나 아이가 아무렇게나 그린 듯합니다. 하지만 전시관에서 그의 생애를 보면 이미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재능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14살에 그린 그림들. 학교 선생님은 바로 실력을 알아보고 월반 시켰습니다.


‘그림 잘 그리네’가 아니라 ‘천재는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그의 어릴 적 미술 선생님마저 이 아이는 이미 나보다 잘 그리니 나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소위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해 ‘만렙’을 찍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30살이 지나서는 웬만한 그 시대 미술 사조, 유행하는 화풍은 모두 그려봤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는 온갖 특이한 시도들을 많이 합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다양하게 그려봅니다. 졸라맨으로 그리거나 정말 대충 그린 듯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들도 웃으면서 그림을 감상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피카소는 그림에 정점을 찍고 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자유롭게 그리느냐는 것입니다. 피카소는 이미 어릴 적부터 명암, 비례, 형태, 뭐 하나 빼놓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비례는 무너지고 색감도 보이는 것과 다르게 강렬해집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라는 작품입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에 반해 자신만의 작품으로 재탄생 시킵니다.


만약 피카소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다른 사람의 그림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피카소 그림을 보면서 점점 아이들 그림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남자아이의 그림과 비슷합니다.


뒤로 갈수록 남자아이들의 그림과 비슷해져 갑니다.

1. 뒤로 갈수록 졸라맨을 많이 그리고 얼굴에 대한 묘사는 간략해집니다. 흔히 큐비즘이라고 불리는 방식도 남자아이들이 그리기 귀찮을 때 한꺼번에 그리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세밀하게 그리기보다 ‘에이 모르겠다. 얼굴에는 무조건 눈코입귀를 그리면 됐지’라고 그린 것 같습니다.
2.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중해서 그립니다.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피카소가 원작을 모사해 그린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등장하는데 겸손의 의미로 조그맣게 캔버스에 몸을 반쯤 가린 채로 나옵니다. 피카소는 원작의 화가가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존경했기 때문에 그를 매우 크고 엄청난 존재인 것처럼 그립니다. 아우라가 나오고 다른 사람들보다 2~3배는 더 커 보입니다. 대신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나 동물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대충 그립니다. 딱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그리는 성향과 닮았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관람했습니다. 작품을 볼수록 점차 아이의 자유로움을 닮아가는 그가 보였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그림을 잘 그리려면 지금처럼 그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신만의 그림들을 빼앗깁니다. 전쟁 무기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차 스케치북 대신 공책의 귀퉁이로 캔버스는 점차 작아지고 후퇴합니다. 만화 캐릭터를 좋아하는 아이도 부모님께는 숨기고 친구들끼리만 킥킥대면서 몰래 그리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에게 미술은 ‘어렵고 평가받고 나는 재능이 없는’ 것으로 결론짓습니다. 중요한 표현 수단 하나를 잃는 것이죠. 잘 그리기 전에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피카소의 그림들을 보며 그는 자신을 옭아매던 양식, 형식, 문화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의 진정한 목적지는 다시 어린아이가 아닐까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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