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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04. 2019

나를 달래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이를 달래는 법이 곧 나를 달래는 기술이다.

‘자, 용석아 수틀리면 바로 나오면 돼’
‘그냥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나오자’



요즘 헬스장에 가면서 하는 생각들이다. 헬스장에 등록한 지는 꽤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안 가게 된다. 야근한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사실 피곤하지 않기 위해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약속이 있어서 등 이유도 참 많다. 헬스만큼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삶이 편해지는 취미는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한 번 그만두자 걷잡을 수 없이 변명거리를 찾으며 가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생각해 보면 헬스장은 나 같은 고객들이 주 수익원일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낯선 환경에 굉장히 민감해하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부모님에게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서 절대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 교실 자체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아이를 만난다. 이때 부모님도 함께 들어와 교실에 있다가 몰래 나간다. 물론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바로 따라 나간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고집이 센 아이는 절대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아이와 거래를 시작한다.

“자,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있을게. 오늘 그것만 견디면 다른 건 안 해도 돼”


이 단계만 통과하면 아이와 엄마의 거리를 조금씩 넓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교실을 나간다. 한 번에 이렇게 적응하는 아이가 있고 몇 번의 수업을 걸쳐서 어머니와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 이후에는 학원에 오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헤어지고 바로 교실로 들어간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부담을 주면서 조금씩 견디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부모님을 떨어뜨려 놓는다고 한다. 오늘은 유치원 로비, 내일은 교실 문 앞, 그다음 날은 교실 안, 이렇게 조금씩 단계별로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아이 스스로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퇴근 후 헬스장에 가고 싶지만 몸은 피곤하고 집에서 쉬고 싶다. 마치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 같다. 억지로 헬스장에 들어가지만 몇 번 운동을 하다가 질려버린다. 막상 운동하면 좋지만 다음 날 또 들어가려면 괜히 부담된다. 완전히 수업하기 싫어하는 아이와 똑같은 모습이다. 이럴 때 아이를 달래는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이 아이라고 생각하고,

‘용석아 오늘은 러닝만 하고 나오자’
‘오늘은 그냥 샤워만 하고 나오자.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실제로 샤워만 하고 나온 적도 있다. 헬스장이라는 곳이 몸짱이 되어야 하고 더 건강하게 되는 곳이라는 부담을 버리기로 했다. 헬스장에 가서 10분 러닝만 하고 나온다. 어떨 때는 팔 굽혀 펴기 두 세트만 하고 나온다. 헬스 마니아인 친구는 “설마 벌써 가는 거야?”라고 놀려도 무시하고 바로 나온다. 대신 매일매일 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그냥 입장만 하자고 ‘어린 용석이’를 달랬다. 다행히 ‘어린 용석이’는 헬스장에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날그날 적게 운동하고 나와도 누구도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것밖에 못 했어?’라고 자책하는 ‘어른 용석이’는 이제 없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금만 하라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라고 하며 달래주는 용석이만 있을 뿐이다.

‘어린 용석이’는 조금씩 헬스장에 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냥 샤워만 한다는 마음으로 간다. 팔 굽혀 펴기만 하다가 어느 날은 조금 더 운동하고 싶어 졌다. 러닝도 시작했다. 또 어느 날은 이상하게 좀 더 오래 있어지고 싶어 졌다. 그래서 4~50분 이상 운동을 했다. 반대로 어떤 날은 너무 피곤했다. 러닝 10분에 샤워만 하고 나왔다. 놀라운 점은 토요일 하루만 제외하고 모두 헬스장에 출석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도 버거워하던 용석이가 이제는 6일을 출석한 것이다. 일요일도 러닝과 팔 굽혀 펴기를 하고 나온 것이다. 원래 같으면 당연히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겪고 있는 일이다. 아이들을 달래는 방법이 나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그만큼 쉽고 간단하기에 어른인 내가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이를 달래는 법이 곧 나를 달래는 법이다. 많은 힐링 책을 읽어도 이렇게 효과를 본 적은 처음이다. 앞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위로하고 달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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