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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Dec 11. 2019

그림이 변해 글자가 되었다.

졸라맨만 그리는 아들의 속내는?

아이들은 그림을 그린다. 아주 어릴 적부터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면 무언가를 휘갈긴다. 5살 남자아이 손에 색연필을 쥐어주면 신나게 도형들을 그린다. 내 눈에는 세모 네모지만 안킬로사우르스일 수도 있고 레이저 총일수도 있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린다. 안킬로 사우르스의 망치 꼬리를 제법 실감 나게 그린다.


공통점은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그렇다고 여자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걸 그린다는 게 아니다. 선생님이 가족을 그리라고 하거나 소풍을 그리라고 하면 싫어도 그린다. 하지만 내가 본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그리지 않거나 울거나 아무렇게나 휘갈겨 버린다. 모든 남자아이가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상담한 1200명의 남자아이들 90%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어머님들은 한숨을 쉰다. 맨날 공룡만 그리거나 총만 그린다고 한다. 마치 게임이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폭력적인 그림이 아들을 더 폭력적으로 만들까 봐 걱정한다. 모두 그림에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는 사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예전에 교회에서 태국에 간 적이 있다. 자원봉사로 교도소에 갔다. 거기서 사람들과 춤을 추거나 공연을 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화이트보드에 태국어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쓰기로 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 섰다. 화이트보드가 준비되고 보드마카를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손 끝에 집중되었다.

전날 밤 태국어 인사를 쓰는 법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해서 영어문자 기반의 단어들은 어느 정도 때려 맞추기 식(?)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태국어는 완벽하게 내 지식 밖의 언어였다. 태국어는 나에게 하나의 그림이었다. 연습장에 태국어를 그렸다. 무엇이 모음이고 자음 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꼬불꼬불한 선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글자를 익히기보다는 그림이라 생각하고 그리는 순서를 익혔다.

화이트보드에 인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틀릴까 봐 긴장하면서 글을 그렸지만 주변에서는 하나둘 웃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거의 모든 사람이 웃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친해지기 위한 이벤트였기에 예상외의 반응이었지만 안심했다. 나중에 선교사님께 물어보니 ‘태국어 쓰는 모습이 특이해서 그래요. 정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어요.’라고 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 를 글자별로 순서대로 쓴 것이 아니라 안->하->녕->요->세 이런 순서로 썼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글씨는 위에서부터 쓰고 어떤 글씨는 거꾸로 쓰면서 글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만약 외국인이 어설프게 우리나라 인사를 순서도 제멋대로, 획을 전혀 다른 순서로 썼다면 웃길 것이다.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웬 젊은애가 애써서 그 나라 말을 그렸으니 나름 이쁘게도 보였을 것 같다.

이 독특한 체험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원시시대 때 언어가 없을 때는 어떻게 대화를 기록했을까? 가장 쉬운 예가 동굴 벽화다. 고래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믿는 신이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그림을 그렸다.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면서 그린이의 강렬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에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못 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래나 사람을 사실적으로 그렸겠지만 어떤 이는 졸라맨처럼 그렸을 것이다. 만약 족장처럼 높은 사람이 그림을 못 그렸다면 어땠을까? 모두가 족장의 그림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급하게 어떤 정보를 교환하거나 기록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떨까? 졸라맨처럼 그리면 빨리 그릴 수 있고 그만큼 더 효율적인 정보 거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점차 간소화되면서 선만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이 오늘날의 자음과 모음처럼 굉장히 단순화되고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서 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단순한 상상이지만 실제로 학자들은 인간의 언어는 그림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집트 상형문자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한자다. 우리가 처음 한자를 배울 때 쓰는 사람인은 두 사람이 기댄 모양, 밭 전자는 논밭의 모양을 나타낸다. 한자보다 훨씬 전에 이집트 벽화를 보면 사람, 곤충, 나무, 강, 바람 등이 아이콘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림을 대화의 도구로 사용했다.

어린아이들도 그림으로 대화하고 싶어 한다. 말로도 많은 것을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언맨을 그리고 싶어 하고 아파트나 자동차를 그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어른이 자신의 심오한 뜻을 이해해 주길 원한다.

그림은 심미적인 역할도 크지만 그전에 정보 전달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남자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보 전달을 위한 그림을 많이 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졸라맨을 그리고 옆에 회오리를 그리거나 공룡 입을 크게 그린다. 자세히 보면 이야기가 있다. 졸라맨이 공룡을 회오리 무기로 공격한다. 알록달록 칠하거나 졸라맨 대신 옷 입은 사람을 그리는 건 나중 일이다.

그림 이전에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정보와 생각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에 비해 남자아이는 말이 느리다. 언어적 지능보다는 운동 지능이 먼저 발달한다. 어쩔 수 없는 뇌 발달의 순서 차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알록달록 칠하라고 하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가르치는 어른의 말도 중요하다. 추상적인 알록달록, 꼼꼼하게 같은 말은 피해야 한다.


여기   꼼꼼하게 그려볼까?(X) -> 여기 선은  그린 거야?(O)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보자(X) ->  부분을 색칠하면   강력하게 보여(O)

졸라맨 말고 사람을 그려보자(X) -> 졸라맨은 약해 보여. 근육을 넣어서 그리는  보여줄게.(O)


이렇게 구체적인 정보를 주어야 한다.


최근 캘리그래피가 유행이다. 카톡으로 보내도 되는 내용을 굳이 손으로, 그것도 굉장히 멋스럽게 ‘그리는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는, 글자 자체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 속마음을 전달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글씨체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결국 글씨에서 그림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 안에 있는 강렬한 표현 욕구가 글자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처럼 그림을 그리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서 글자를 꾸미는 것을 통해 만족하려는 욕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무리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의 그림은 미적 수단보다 정보 전달을 위해 그리는 경우가 많다. 내면 속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졸라맨, 세모, 네모 등을 어떻게든 그려낸다. 이런 그림은 원시적인 욕구와 맞닿아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처럼 강렬한 의도를 가진다. 여기에 미적인 요소를 따지는  입을 막는 것과도 같다. 어른들도 글씨를 그린다. 그만큼 글자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색과 두께로 변화를 준다. 그래서 감성적인 면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이들의 그림과 어른의 글씨가 적절히 합쳐져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면 굉장히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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