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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Dec 18. 2019

아이들과 정치는 딱 붙어있다.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통해 보는 정치와 삶.

저희는 평균 수입, 실업률, 질병률이 전국에서 최악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는 탁아소입니다.

어느 날 저자는 영국 최악의 지역에 위치한 탁아소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홀연히 자원봉사를 신청한다. 이 책은 2년 6개월간 저변 탁아소가 어느 날 국가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긴축 탁아소로 변하고 결국 문을 닫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직업이 없다. 난민 가족도 있고 불법 체류자도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아이들이 가난하고 가정의 불화는 기본이다.


엄마가 생활보호 수당을 매달 저축하지 않아서 크리스마스에 쓸 돈이 없다고 아빠가 막 화를 내고 집에서 난리를 쳐서 엄마가 구급차에 실려 갔어.


믿기 어렵지만 5~6세 아이들의 일상적인 대화다. 그 외에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뱅글뱅글 도는 잭,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조금만 화가 나도 화분을 던지는 베키, 그야말로 일반인이라면 보기 힘든, 저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양한 나라에서 온 뒤죽박죽 아이들 육아’ 에피소드 모음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정치가 철저하게 어떻게 삶을 바꿔놓는지   있다. 기온이 내려가면 제일 먼저 시린 부분이 손끝, 발끝이다. 정책의 변화에 따라 가장 크게 변화를 느끼는 건 사회 밑바닥이다. 중상층이나 상위층은 느끼기 힘든 변화다. 그들에게는 외투가 있기 때문이다. 복지 예산이 삭감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다. 하지만 밑바닥의 사람들은 어떨까. 특히 그들이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한 예로 1파운드 식당이 있다. 우리 돈으로 1500원에 점심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하루에 딱 한번 점심에만 이용할 수 있다. 점심때가 되면 이곳은 수많은 아이들, 부모님들이 이용한다. 왜냐면 그들에게 아침, 저녁을 먹을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최대한 배불리 먹어두어서 내일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서 배부르다는 아이에게도 어떻게든 억지로 먹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영국 사회에 세계 경기 침체와 긴축정책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복지 예산의 삭감은 주 5일 운영되던 식당을 주 3일로, 2일로 줄여버린다. 나중에는 사라지고 푸드뱅크로 대체된다.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영국 극빈층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는 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은 3일이나 굶는다. 주인공은 보다 못해 그녀를 푸드뱅크로 데려간다. 여자는 거기서 야채 통조림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뜯어서 손으로 퍼먹는다. 정신을 차린 후 그녀는 흐느낀다. 저자는 이런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진다고 한다.

저변 탁아소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찾아온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병을 지닌 아이들이 온다. 그러다 보니 서로 배척하고 싸우고, 차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모들조차 종교, 피부색, 경제력을 통해 서로 구분하고 서로 어울리지 말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크게 상처 입고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아이들이다. 분노조절 장애, 공감대 결여, 심지어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는 아이들 천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을 품게 된다. 하지만 진흙탕에서도 꽃은 피는 법,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도 봉사를 자원한다. 저자는 이것이 영국의 저력이라 평가한다.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탁아소가 사라지고 1파운드 식당이 문을 닫아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웃고 있는 아이들 덕분이다.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놀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면 웃는다.

푸드 뱅크에 줄을 선 부모들이 존엄에 상처 입은 채 선반 위의 식료품을 움켜쥐고 비닐봉지에 집어넣는 동안 아이들은 즐겁게 웃는다. 웃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진 것이 아니다.


천사를 대량생산?

이렇게 되면 영국의 사정이 굉장히 최악으로 들린다. 특히 보육교사의 근무 환경은 누가 봐도 열악해 보인다. 문득 우리나라의 보육 현실을 궁금해졌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주변에 보육교사, 유치원 교사가 있어 선생님당 몇 명의 아이들이 배치되는지 물어봤다. 4~6세 아이들 15~20명당 한 명의 선생님이 배치된다고 한다. 보조 선생님도 있지만 여러 행정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혼자서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나조차도 학원에서 4명의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정신이 없을 때가 많다.(물론 남자아이들로만 구성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영국은 어떨까? 놀랍게도 3~4명당 1명의 보육교사가 배치된다고 한다.


일본의 어린이집에서는 0세 아동의 경우 보육사 1명당 아동 3명, 1~2세 아동은 1명당 6명, 3세 아동은 1명당 20명, 4~5세 아동은 1명당 30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이 배치 기준은 상당히 놀라운 숫자였다. 영국의 배치 기준으로는 0~1세는 1명당 3명, 2세는 4명, 3~4세는 8명이다.


법이 엄격해서 만약 지키지 못하는 보육원은 경고를 받거나 문을 닫기도 한다. 저자인 미카코는 (한국과 동일하게) 일본은 15~20명 아이를 한 명의 교사가 맡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도대체 얼마나 유능한 선생님이기에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영국과 일본의(더불어 우리나라도) 차이를 볼 수 있다.


(일본 공립 어린이집에는) 바깥에서 공작을 하는 탁자 자체가 없었고, 스쿠터와 세발자전거도 없었다. 소꿉놀이에 사용하는 작은 집도, 볼링 세트도, 정글짐도 없었다.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거의 없는 휑하니 빈 공간에서 아이들이 선 채로 잡담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영국의 보육원,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만들고, 파내고, 만질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 또한 외부에서 신나게 노는 시간도 많이 배정한다. 당연히 아이들이 외부 환경에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다가 다칠 위험도 올라간다. 갑자기 슈퍼맨 흉내를 내려고 점프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찢어진 아이, 자전거를 타면서 계속 넘어지는 아이, 자신의 구역에 침범했다고 싸우는 아이 등..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옛말처럼 ‘다치면서 자란다’. 넘어지면서 공간에 대한 인지능력을 높인다. 친구와의 갈등 속에서 사회성을 배운다.


저자는 일본의 현실을 보며 ‘천사들을 대량 생산하는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다칠 만한 것들을 없애고 그저 조용히 선생님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결단력, 창조성, 토론하는 힘. 일반적으로 일본인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미 현직 선생님들의 자문 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커리큘럼 준비를 위한 야근, 주말출근, 무엇보다 한 선생님당 너무 많은 아이들이 배치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한 놀이, 덜 자극적인 커리큘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안전사고의 경우 학부모님의 클레임에도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주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학원을 찾아오는 어머님들은 모두 유치원,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주의, 경고를 받는 아이들이 많다. 남자아이들은 세상이 하나의 모험이자 놀이터이지만 선생님은 계속해서 억누를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를 두고 아이를 관찰하고 싶어도 수십 명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역부족이다. 아예 뾰족한 건 못 만지게 하고 질문이 너무 많으면 주의를 준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뛰쳐나오기도 하고 그만 다니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큰 잘못이 있을까? 참을성 없는 선생님? 예민한 부모님? 에너지가 높은 아이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 정치를 보게 된다. 이전만 해도 개인이 넘어지면 ‘노력을 안 해서 그래’ , ‘그 사람이 능력이 없는 거지’라는 말을 했다. 모든 일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는 ‘제힘으로 주의’를 나도 믿고 있었다. 경기침체, 취업난, 그로 인한 N포 세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 부족, 흔히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어떨까. 오늘날에도 극도의 빈곤을 겪다 자살한 세 모녀는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 영화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제 때 돈을 받지 못해 굶어 죽은 작가는 어떨까. 과연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 책은 사회 밑바닥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돌보는 탁아소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 부모의 무능함이나 운이 나쁜 것인지 물어보진 않는다. 그저 긴축정책이 되기 전과 후의 변화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기록했을 뿐이다. 이를 통해 정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는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저변 탁아소와 긴축 탁아소는 땅바닥과 정치학을 이어주는 장소였다.
그런 장소가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천지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땅바닥에는 정치가 굴러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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