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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Dec 20. 2019

그림(잘 그리고 싶지만) 못 그리는 아이, 성인에게.

어려운 것은 무조건 쪼개야 한다.


수업은 먹기 좋은 크기로 쪼개는 것의 연속이다.


나는 아동 미술 학원 선생이다. 정확히는 부원장이지만 수업이 90%를 차지한다. 수업이 주된 업무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6~13세의 남자아이들이다. 기본적으로 남자아이들은 차분함, 경청과는 거리가 있다. 좋게 말하면 주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에너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한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그림을 포기하는 이유는 눈은 높은데 손은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포켓몬의 메가 레쿠자를 그리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그려버린다. 수십 분 동안 연필과 지우개를 반복하다 종이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이는 확실히 그림을 포기한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이런 남자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꿈은 화가였지만 시간은 지나고 지금은 약도도 그리지 않는다.


여기서 쪼개기가 필요하다.

쪼갠다고 해서 머리 따로 몸 따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난이도를 쪼개야 한다. 예를 들어 포켓몬을 그리고 싶어 하면 아주 쉬운 캐릭터부터 그리는 것이다. 메가 레쿠쟈 대신 피카추 아니면 디그다, 그것도 안되면 메타몽을 그려야 한다.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질 못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에게 어려운 그림은 대신 ‘그려준다’. 어설프게 그려주기도 하고 아니면 과거 디자인 전공을 살려 멋지게 그려준다. 하지만 아이는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쪼개기를 하지 않으면 아이에겐 그림은 ‘잘 그리는 어른이 그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조금씩 발전해 그려나가는 일은 멀어진다.


메가 레쿠쟈 - 피카츄 - 디그다 - 메타몽 / 어려운 걸 못 그리면 본인이 최대한 잘 그릴 수 있도록 난이도를 쪼개야 한다.

실제로 ‘난이도 쪼개기’ 방법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에 두려움을 덜어 주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디그다부터 시작하는데 동의했다. 스스로 쉬운 것부터 그려서 완성하는 즐거움,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어느 정도 손을 댄 그림은 좋아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간단한 것부터 그리는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그릴지 정하면 그 뒤로는 스스로 그리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비례 정도만 체크해 주면 된다.


만약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처럼 실제 사람을 그리고 싶어 하면 어떨까? 여기서는 다른 쪼개기가 필요하다.


구글에 ‘그리고 싶은 인물’ + 캐릭터로 검색한다.

스파이더맨을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다. 알다시피 스파이더맨은 온몸에 거미줄 패턴이 있다.

캐릭터 특성상 포즈가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리기 난이도도 올라간다.

무엇보다 어딘가에 매달리고 줄타기(?) 많이 하는 캐릭터라 자세들이 하나같이 어렵다.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스파이더맨을 그리다가 좌절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 그리기도 벅찬 아이들에게  그림의 동작들까지 그리면 최악의 결과물이 나온다. 아마도 어른들에게도  자세들을 그리라고 한다면 상당히 비례가 깨진  그릴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옆에서 그리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이미지 검색은 구글로 검색할 것이다. 이때 검색어에 (캐릭터 이름) + 캐릭터라고 검색해 보자.

스파이더맨이라고만 검색했을 때와 캐릭터라고 검색했을 때의 차이.

어떤가? 전반적으로 그림의 난이도가 훨씬 내려간다. 캐릭터라는 키워드를 붙이는 순간 굿즈, 팬시상품에 어울릴만한 귀여운 캐릭터가 나온다. 이 정도면 어른도, 아이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


아이언맨도 해보자.


아이가 그려 달라고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인 이미지들이 많다. 이래서는 아이도, 부모도 상처를 입는다.



이번엔 캐릭터 키워드를 붙여보자.

확실히 귀여워졌다.  말은 그리기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키워드 하나만 붙였을 뿐인데 그림의 난이도는 대폭 낮아졌다. 누구나 쉽게 알아볼  있게 복잡한 , , 형태를 편집했기 때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정도만 되어도 그리기는 훨씬 재미있어진다. 처음부터 비례, 그리드, 도형으로 보는  등을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학생  배우던 소묘 기법은 아직은 아이들에게 적용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런 기법들이 우리가 미술을 어렵게 만들고 회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미술학원에서는 무조건  연습부터 시켰다. 정말 지루했다. 하품이 계속 나왔지만 계속해야 했다. 지금도 화실을 생각하면 지루한 과정이 먼저 생각난다.  외에도 일러스트, 영문으로 character, illust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된다.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쪼개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에게 마라탕을 먹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일단 모유나 이유식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다음 소화시키기 쉬운 죽이나 단순한 맛의 음식을 먹인다. 가르침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어릴  초등학생  원근법과 선 연습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미술의 중요한 개념은 맞다. 하지만 미술이 엄청나게 어렵고 선택된 자들만의 능력이라는 이상한 오해를 갖게 되었다. 미술도 수학, 영어와 마찬가지로 기술  하나일 뿐이다. 예체능은 마치 타고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게  것이 쪼개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쪼개 주지 않아도 참고 따라오는 아이들만이 누릴  있는 특권은 절대 아니다. 물론 재능의 영향도 있다. 특별히 한번 보고 사진처럼 그리는 친구가 있고 절대음감을 가진 친구도 있다. 하지만 수학, 과학, 언어도 마찬가지다.  친구는 미적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하루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쪼개기는 필요치 않다. 남들도 해당 분야에 엄청난 소화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능보다는 쪼개기를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들  있다. 당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쉬운 것부터 그리면 된다. 아니면 남들이 이미 쉽게 쪼개 놓은 (캐릭터 키워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제 무언가 그리고 싶거나 그려달라고 부탁받으면 시도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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