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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Jan 09. 2020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향기가 맡고 싶은 분에게

제주도 제로 하나 컴퓨터 박물관 방문기

이번에 신년에 휴가 겸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딱히 목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쉬고 싶었습니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비행기 표 값도 착하고 게스트 하우스는 조식 포함해서 무려 1만 6000원이라는 충격적인 가격이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커뮤니티에서 제로 하나 컴퓨터 박물관 방문기를 보았습니다. 주인이 컴덕이라 엄청난 양의 레트로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릴 적 현대 컴보이부터 시작했던 세대라.. 급 당겨서 갔습니다. 조금 큰길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우연히 들리기에는 힘든 위치였습니다.

입소문이 아니라 웹 소문(?)을 듣고 가는 건 맛집 외에 처음이라 새로웠습니다.

출처 다음 거리뷰, 과거 어린이집이었던 사진입니다. 여기서 간판만 붙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 외관 사진은 못 찍었는데 조금 낡았습니다. 조금 지저분한 느낌이 들어 내가 제대로 찾아왔나’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하지만 1층 카페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집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컴퓨터를 좋아하는 분들, 자녀를  분이면 반드시 가봐야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장님 말로는 과거에 어린이집이었던 곳을 인수해서 아직은 정리가 덜 끝났다고 하는데 일단 낡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수많은 레트로 기기들이 반기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기들을 놓은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성 들여 놓여 있었습니다.


‘한 개인이 이렇게 모을 수가 있는가’


일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_-


이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분의 개인정보(?)를 잠깐 들어보면 대기업에서 십 년 이상 일하시면서 취미로 사 모으셨다는데... 단순히 취미라기에 믿기지 않는 엄청난 기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유리 안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하나 만져보고 작동시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말 새 제품 상태는 유리 안에 있지만 일부분입니다)

여기에 관장님의 90 간의 큐레이션이 엄청납니다.

컴퓨터를 거의 모르면 거기서부터 쉽게 알려주십니다. 8비트, 16비트 차이 등등... 큐레이션 치고는 좀 긴 편입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계속해서 질문해보고 이야기하다 보면 반나절 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입구 초입에 펀칭 머신부터 놀랬습니다. 과거에 말로만 듣던 기계가 마치 어제 사용하다가 가져온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버그가 탄생했다죠?



구멍에 뚫린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데 벌레가 낀다면?->버그(bug)의 탄생!


그 외에 어마어마한 수집품이 반겨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거의 모든 제품이 켜져 있고 특별히 게임을 설치해 놓아서 바로바로 시현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전시관 가면 유리 안에 켜져 있는 모습이 전부겠지만 여기서는 하나하나 조종해 보도록 오히려 부추깁니다.^^;

글라디우스가 생각보다 정말 오래된 게임이군요!

심지어 게임 전용관을 마련해서 패미컴부터 플스까지 모든 기술의 흐름을 게임을 하면서 경험할 수 있게 해 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수집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기계 하나하나 마다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다 설명해 주십니다. 단지 옛날 기기 구경하러 갔다가 스티브 잡스 책이 급 당기더라고요..;

 당시 부족했던 메모리,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하려고 했던 인간의 모든 노력을 새롭게   있었습니다.


패미컴이 원래 게임기가 아니라 컴퓨터 였다는걸 아시나요?
지금은 이런 디자인을 볼 수 없는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ㅜㅜ

게다가 모든 기기들이 오늘날 패드처럼 일정한 디자인이 아니라 하나하나 다양한 형태를 지닌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 워크맨, 엠디 시절에는 신제품 출시 때마다 디자인 보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면 외형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렌즈가 몇 개인지, 성능은 어떤지 이런 스펙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근래에는 보기 힘든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왼쪽 노트북(?)을 오른쪽 확장허브에 넣으면 성능과 사용가능 포트가 늘어납니다.


흔히 익스텐션 허브라고 하죠. 노트북을 더 큰 본체에 넣으면 성능이 좋아지거나, 확장을 용이하게 해주는 기기가 아주 초창기부터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씽크패드 시리즈를 보면서 아이패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이미 예전부터 사람들이 구현했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만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고 크고 무거웠습니다. 기본 베이스 생각은 이미 옛날에도 ‘한번 이렇게 만들어 볼까?’라고 하면 한 번쯤은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오늘같이 가볍고 빠르지 못해서 사장된 것이지요.


아이패드의 개념은 예전에 ibm에서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필기인식도 했었죠. 다만 가격이 790만원(그당시-_-)



넥플릭스에서 ‘세상을 설명하다 : 코딩 편’을 보면 외계인에게 코딩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이 나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은 수십 년 전 몇몇 사람들이 지구 외에 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고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뿐만 아니라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초창기 컴퓨터에서도 그러한 ‘가상의 세계’가 생각났습니다. 테이프 레코더를 몇 분간 로딩시켜 아주 단순한 볼링 게임을 로딩했습니다. 몇 번 레일에 던질지, 힘은 얼마나 줄지 숫자로 타이핑을 하면 아주 단순한 졸라맨이 볼링공을 던집니다. 지금은 코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그 당시 조그마한 초록색 모니터에 있는 볼링장이 얼마나 사실같이 보였을까요?

아주 조잡한 볼링장. 하지만 개발자에게는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한 순간이었을겁니다.


애니메이션도 단순하고 규칙도 단순한 게임이지만 이 안에 구현된 볼링장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가상의 세계였습니다. 현실의 세계는 통제 불가능이지만 가상의 세계는 개발자들이 모든 것을 정하고 하나하나 직접 창조했기 때문에 새로운 신이 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조금 우습지만.. 새로운 가상세계의 탄생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흑백에서 컬러로, 비프음에서 음악을 추가하면서 좀 더 현실 같게 만드는 작업에서 개발자들이 느꼈을 환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시간가량 전시를 관람하고 다시 천공기계 앞에 갔습니다. 아까는 보지 못한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제품 소개 문구가 눈에 띕니다.

‘what does a computer do?’


당신이 만약 백화점에서 셔츠 다섯 벌을 사면 컴퓨터는 자동으로 가격을 계산해 줍니다. 물론 셔츠뿐만 아니라 더 큰 금액도 계산이 가능합니다.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매뉴얼에는 어떻게든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구구절절 써 놓았습니다. 오늘날 ‘컴퓨터로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이미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마치 존재의 의미를 묻는 질문처럼 다가왔습니다.

박물관에 대략 3시간 정도 있었습니다. 만약 잠깐 들리는 정도로 왔다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여유 있게만 보면 반나절은 충분히 지날만한 유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기기가 전원이 들어와 있었고 얼마든지 만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어릴 적 컴퓨터를 만질 때 추억을 느끼고 싶거나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기초를 알고 싶은 분들은 한 번쯤은 꼭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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