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첫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한 모임에서 400여 일간 세계여행을 다닌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35개국을 다니며 있었던 일들,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면서 다들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사진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가 참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총경비는 얼마가 들었고,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등...
그때 발표하시는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외롭지는 않았나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제가 혼자 여행할 때 늘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외로움.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우울감과 후회, 허무감 등 삶의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함께 했었습니다. 처음엔 저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부정적인 타입이라 저만 이렇게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
발표자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네요. 저도 여행 내내 외로웠습니다. 꽤 많은 날들이 외로웠죠”
놀랐습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외로운 만큼이나 자유가 있죠”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자유와 외로움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짝꿍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 전 난생처음으로 홀로 뉴욕과 워싱턴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었습니다.
원래 충동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한 블로그에서 미국의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을 다녀온 후기를 보고 바로 비행기표를 결제했습니다. 그저 머릿속에 ‘비행기와 우주선을 실컷 보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주일을 그 넓은 미국, 그것도 뉴욕과 워싱턴을 본다는 건 굉장히 돈 아깝고 시간낭비에 가깝습니다. 출장이 아닌 이상 두 도시를 왕복하는데도 이틀이 걸리고 한국과의 왕복까지 포함하면 결국 실제 여행시간은 3~4일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를 타는 내내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13시간 비행 끝에 도착했을 무렵 피곤함과 ‘이제 뭐하지?’라는 생각, 그리고 홀로 있다는 외로움이 겹쳤습니다. 신나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뉴욕 센트럴 파크를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다니면서 좋았지만 어느 순간 우울함과 외로움이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뭐하러 이런데 혼자 왔어?’
‘생각보다 별 거 없지?’
‘겨우 이거였어?’
이런 생각과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들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행 중에서도 내면은 분노와 우울, 외로움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여행지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렇게 한두 시간을 걷기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분명 출발하기 전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비행기와 우주선을 실컷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막상 기대했던 박물관에서도 몇 시간을 보고 나서는 지치고 흥미도 사그라들었습니다.
대체 여길 왜 왔지?
라는 생각이 매일매일 들었습니다. 남들처럼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야겠다 라는 생각보다 ‘우주선, 비행기 박물관만 보자’라는 다소 극단적인 생각 때문일까요. 그러다 보니 막상 계획대로 보고 난 이후에는 그저 아무런 계획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마치 외국인이 서울에 와서 남산타워도 보고, 경복궁도 봐야 서울 좀 봤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저 망원동 카페거리를 보고 만족해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홀로 있는 시간 동안 더 외롭고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운 만큼이나 자유로웠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친구와 여행하거나 단체로 동선이 정해져 있는 여행이 전부였습니다. 당연히 혼자 있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많았고 홀로 사색하는 시간보다 다 함께 사진 찍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홀로 있게 되면서 속에 있던 감정들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것도 낯선 곳에서,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게 되자 그제야 모든 것들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더 외롭고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첫 여행은 목적을 이룬 즐거움과 동시에 외로움과 분노, 우울함의 감정과 함께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 만금은 신기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며칠 후에 갑자기 삶에 대한 기쁨과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에너지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내면의 찌꺼기들을 외로움이라는 통로를 통해 모두 토해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고 나서야 갑자기 새로운 의욕들이 넘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참 웃기지요?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여행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니 말이죠.
여행은 외로움이 80%, 자유로움 20%
그 뒤로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여전히 여행을 하면 외로움, 우울함, 분노도 함께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삶의 찌꺼기들은 내가 온전히 자유로워야만 뱉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홀로하는 여행은 80%는 외로움과 부정적인 감정들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20%의 설렘과 기쁨, 자유로운 감정은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결국 외로움과 자유로움은 짝지어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를 느끼려면 홀로 온전히 서 있어야 하고 그 대가로 외로움이 찾아오기 때문이지요. 만약 지금 외롭게 느껴진다면 반대로 그만큼 자유롭다는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