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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y 22. 2022

나를 팔아야 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

좋은 기사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대중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기사,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된 계층을 다루는 기사. 상업적으로 봤을 땐 클릭수가 잘 나오는 기사까지. 저마다 누군가에겐 좋은 기사다. 지금껏 수많은 기사를 썼지만 아직도 기획기사를 쓸 땐 세상에 내 아이 하나 낳는 기분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건 물론이고 기회 자체가 흔치 않아서일 거다. 갈수록 빨라지는 세상의 흐름, 그 안에서 장시간 고민하는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언론노동자들에겐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니까. 


이렇게 어렵게 쓰는 기획기사를 쓰고 나면 문득 이번 기획이 괜찮았나 궁금해지는데 그럴 땐 기사가 퍼져나가는 걸 관찰한다. 바쁘면 방송 나가고 시간이 꽤나 흐른 뒤에야 확인하기도 하는데 청년 디자이너를 다룬 기사가 그랬다. 다른 기사를 모니터 하다가 우연히 본 카페. 어느 브랜드 디자인 카페였는데 아마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모임인 것 같았다. 기사 스크랩 과제로 어떤 학생이 내 기사를 스크랩하고 후기를 적었던데 너무 감사해서 한참을 그 창에 머물러 있었다. 정말 닿았으면 했던 곳에 나의 글이 닿은 느낌. 


한창 취업준비를 하던 대학 시절, 나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마이크를 건네는 세상'을 꿈꿨다.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내가 지닌 고유의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목표가 있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는 그 꿈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게 됐지만.) 넓고도 많은 소외 계층,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쓰인 대상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내 또래의 청년들이다. 선거철이면 청년을 위한 공약이 쏟아지고, 정치권에선 청년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막상 20대 입장에서 보면 청년은 여전한 소외계층이다. '청년'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과연 이들의 이야기에 정말로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쓰고 싶었다. 청년들의 이야기, 있는 그대로.



재능 중개 플랫폼, 그 치열한 현장

프리랜서가 더는 특별한 직업이 아닌 세상에서 크*을 비롯한 각종 재능 중개 플랫폼은 청년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챙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좋은 원리다. 중개 회사는 선의로 이익을 얻고, 디자이너는 일거리를 받으며, 소비자는 플랫폼에 등록한 여러 디자이너 중에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골라 작업을 의뢰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가격 경쟁에서 시작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택받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작업 가격을 낮추고 또 낮춘다. 디자이너들의 치킨게임이랄까. 실제로 들어가 보니 사이트에서는 브랜드 로고가 2만 원, 3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지금은 단돈 만 원에 로고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작업해서 고작 치킨 한 마리 값을 벌면서, 이들은 사이트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 한 달에 몇십만 원에 달하는 광고료까지 지불한다. '광고? 비싸면 하지 마'라고 하기엔 소속 집단이 없는 이들에게 중개 플랫폼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선택받기 위해 자신의 작품 가격을 한없이 낮추고, 거기서 받은 돈의 일부는 수수료로, 또 일부는 광고료로 떼어내는 2030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나를 팔아야 하는 세상에 산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처음으로 생각했다. 물론 내가 하는 일도 나의 글과 방송 리포트를 뉴스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이지만 기자들은 프리랜서로 고용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동일 선상에 놓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나이는 나와 비슷해도 이들의 청춘은 나보다 절박할 거라고 감히 미루어 짐작했다. 


문제도 분명했고, 사회적인 의제로 키울만한 주제였고, 기획 기사로 쓰고 싶은 의지도 있었지만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섭외가 안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들 아는데 선뜻 인터뷰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초년생들이었기에 나중에 취업할 때 혹여나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 많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각종 카페를 뒤지고, 결국 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수십 통의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이 과정에서 내 계정은 신고까지 들어갔지만...) 겨우 인터뷰를 해주겠다는 한 명을 찾았다. 이 분 덕에 이 기사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기사가 나간 후에 더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는데 이제라도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누군지 모를 어느 학생의 스크랩을 발견했을 무렵. 나는 슬럼프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보고 듣는 것을 쓸 수 없는 시간은 내게 꽤나 큰 좌절로 돌아왔고, 어떻게 이 좌절에서 빠져나와야 하는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발제를 해야 하는지 좀처럼 답을 찾지 못했던 시간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스크랩을 보면서 생각했다. 다시 이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기획기사 한 번 써보고 싶다고. 


지금도 학생인지, 아니면 어엿한 디자이너가 되었을지 알 수 없지만

기사를 스크랩해준 그분께 이렇게라도 인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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