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마다 드는 기분이 있다. 집을 나설 때 내 방 문고리에 긴 끈을 연결해서 허리에 칭칭 두르고 나온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계속 방 안에 머문다. 금촌역을 지나 일산, 홍대입구역까지 거리가 멀어질수록 팽팽하게 당겨진 끈을 느끼며 혼자 되뇐다. “끈이 곧 끊기겠지. 끊길 거야.” 그 끈은 결국 회사까지 이어져 위태롭게 나를 당긴다. 회사에 도착해 알콜 스왑으로 책상을 깨끗하게 닦고, 가습기에 물을 가득 채워 전원을 연결한다. 적당한 세기로 뿜어 나오는 가습기를 보고나서야 당기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짐을 느낀다. 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실로 연결된 늘어진 종이 인형처럼 집ㆍ 나ㆍ 회사 사이 이음새를 잇는 끈을 어떻게 균형있게 당겨야 할지 늘 고민이다. 업무일지를 켜서 지난 날 마무리하지 못한 일과 새로 시작해야 할 일을 확인하다보면 갑자기 뱃속에 공허가 찾아온다. 배고픔은 아니다. 빈 공간에서 울리는 공명이 아닌 공허한 소용돌이 같은, 욕조의 물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허의 소리가 부지불식간 찾아온다. 적막 그 자체의 사무실에서 맞이하는 공허의 소리는 늘 당혹감과 수치를 동반한다. 여러 번 겪고 나니 이젠 그 기미와 징조가 보여 적당한 때에 하루 견과 그린맛 한 봉지를 소리 안 나게 가위로 적당히 뜯는다. 그리고 적막을 깨는 소리(“오독오독”)를 내며 야무진 솜씨로 섭취한다. 아몬드가 어금니와 만나 “쩍” 소리를 낼 때 내 방과 연결된 끈이 그제야 “똑” 끊어진다. 끊어질 때 반동은 충격이 커서 순식간에 내 무게 중심이 와르르 회사로 쏠린다. 그렇게 잠깐 활자와의 싸움에 집중하다 보면 얼굴이 그렇게 만지고 싶어진다. 유분 가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뭔가 건드려 줘야 할 것 같은 장난기가 솟아난다. 뭐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나는 피부가 굉장히 유독 안 좋다. 24살 겨울 이후로 갑자기 봄날의 죽순처럼 마구 생겨난 트러블이 아직도, 여전히, 꾸준히 자라고 있다. 병원에 다니며 나는 대로 뽑아도 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여하튼 그런 피부를 그렇게 만지고 싶어질 때는 기름종이를 꺼내 잠시 피부를 만져 본다. 유분도 닦아낼 겸 오돌토돌하게 솟아난 트러블들과 불규칙하고 미세하게 꺼져있는 피부결을 손끝으로 잠시 간질이기도 하고 시원하게 토닥여 보기도 한다. 진정되는 건 피부일까 내 마음일까. 무얼 진정시키는 걸까. 이번 달부터 업무집중기간에 돌입했다. 주 2회 야근이 슬슬 나를 좀먹는다. 한 주의 일정을 정리하고 내 상태를 점검하는 게 가장 중요해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소 꺼려지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도 언제쯤 집에 돌아가야 내일 지장이 없을까 가늠한다. 즐거운 시간임에도 손가락은 자꾸 핸드폰 화면을 터치해 시간을 확인한다. 찾아오는 초조한 마음은 스트레칭으로 간신히 달랜다.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에 고단함이 쌓인다. 정신을 놓지 말자고 되뇌어도 내 정신은 금간 유리잔처럼 새는 곳은 보이지 않고 답답하게 자꾸 어디서 하나씩 줄줄 샌다. 와중에 졸렬한 사건들은 자꾸 내게 삽입되어 날 저 밑바닥으로 침잠시킨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 내 머리채를 단단히 붙잡아 주어 곧바로 건져진다. 어제는 갑자기 민우에게 전화가 왔다 대전에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민우. 일상을 나누다 갑자기 날 위해 요즘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새벽마다 날 위해 기도해 준다고 했다. 민우는 역동의 시기를 겪던 18살 내게 엄청난 힘이 되어 준 은인인데, 여전히 은인이다. 월말에 올라온다는 민우를 위해 돈을 아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여하튼 더하기와 빼기의 연속인 일상에 경탄한다. 오늘 야근이 끝나고 집에 가면 새로 온 책장이 나를 맞아주겠지. 대략 500여 권이 넘는 내 책을 드디어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먼지와의 대전투가 예상된다. 늘 그렇듯 지고 또 지겠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게 내 머리채 꽉 불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오늘도 당당히 맞서 싸워 져야겠다. 지는 건 두렵지 않아. 내 머리채 단단히 붙잡아 주는 너희들이 나 때문에 지칠까 두려워. 나도 너희 꼭 잡아 줄게. 그래서 이게 내 2020년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