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MENT

온실 속 화초

분노에서 시작한 다짐

by 박규규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혀 차는 소리와 함께). 듣는 순간에야 당연한 손사래와 함께 경악을 곁들여 내가 어딜 봐서 화초냐며 그대에게 화를 내었으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사실 화초임에 틀림없구나, 생각했다. 나는 교사인 부모님의 외동아들로서 곧은 유교사상 아래 곱고 귀하게 자랐다. 사실이다. 큰 욕심도 없고, 간이 작아 비싼 건 괜히 떨려 사치를 부리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것은 부모님께 지원받으며 큰 어려움 없이 2x 년 살았다.


왜 화초 소리를 들었을 때 손사래 치며 그 사실을 거부했을까? 나를 화초라 이야기하는 그대의 어투 속에 담긴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까. 문장을 뱉을 때 그대의 눈빛이 ‘너는 고생도 안 해보고 누릴 것을 다 누리며 세상모르고 순진하게 단 것만 섭취하며 살아왔구나’ 하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의 삶이 그래 왔다 한들 나의 모든 것을 파악한 듯 한심한 족속이라 치부해버리는 그대의 눈빛에 나는 경악을 했던 것일까.


그대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냈는지에 대한 보상으로 나를 내리려 했을 수도 있다(이것은 조금 내가 과한 추론이겠다). 나는 그대를 어느 정도 알기에 그대가 어떻게 그대의 삶을 살아냈는지 안다. 그대는 열심이었고, 그에 따른 합당한 결과로 자신을 이루어냈다. 인정한다. 나는 그대와 같은 삶을 살았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그대처럼 치열하지 못해서 온기와 손길이 없으면 바로 사경을 헤매는 화초로 표현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대의 결핍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지도, 그대의 언행에 대해 흠을 잡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왜 나를 화초로 불러야 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


나는 그대의 말속에서 우리 부모를 탓하는 듯한 가시를 느껴 분노했다. 아이를 화초로 키워버린 과한 사랑을 주어버린 부모. 모든 위험에서 부모가 팔로 감싸 안아 스스로의 면역이 없는 자녀가 되어버린 나. 나의 부모가 나를 화초로 키워버렸다고 이야기하는 듯해 참을 수 없는 경멸과 분노가 그대에게 머문다.


나는 화초다. 그렇다면 선인장은 누구일까, 모진 상황에서도 꿋꿋이 스스로 혼자 서서 꽃을 피우는 사람은 누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화초처럼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대의 부모는 분명 화초처럼 따뜻한 마음과 조심스러운 마음 아래 그대를 키웠을 것이다. 내가 눈물이 많고, 유약하여도 많은 것을 받고 자랐다는 이유로 내가 화초로 정의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과 눈물을 받은 경험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대도 나도 모두 누군가에겐 화초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받은 사랑과 마음을 주위 모두와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 황량하게 메말라버린 사막과 같은 이 세상을 우리가 서로를 품고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받은 사랑을 타인에게 나누고 살 거라 말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쓴다. 그대의 말처럼 화초처럼 살고자 한다. 나는 유약해 홀로 살 수가 없다. 사람을 조심스레 마음의 온실에 넣어주고, 살 맞대고 비비며 따뜻하게 쓰다듬고 살겠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을 헤아리고 보살피며 살아가겠다.


그대를 내 온기로 품고 싶다는 말을 이리 돌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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