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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Dec 22. 2020

가성비 따지는 취향주의자

절약하는 보통인생의 취향찾기에 대한 분석 보고서

* 주의사항

취향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자기에 대한 탐구이며 자신에 대한 관심이자 자신을 애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취향(지향)주의자이고, 이 글은 취향찾기에 대한 보고서이므로 '내가 왜 취향을 찾아야 하나요?'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가진 분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눌러주셔도 괜찮다.

물론.... 그래도 한번 읽어봐주시면 더더욱 괜찮다.

아니... 읽다보면 안길어요.. 끝까지 읽어주세요~


part 1  아이폰을 산 삼엽충


나는 오래된 삼엽충이다. 아주 먼 옛날 아이폰을 쓰긴 했으나 갤럭시로 넘어온 후 어언 반십년이 지났다. 갤럭시가 내 마음에 딱 들어서는 아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봤을 대학생 때는 너무 신기했지만, 이젠 그런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현재 이 시점의 스마트폰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없는 오버스펙.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에 욕심이 없다. 그 돈으로 치킨을 더 사먹고 말지.


스마트폰은 20만원 언더로 사야하는 거라는 혼자만의 신념이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호구!" 스스로 그렇게 정의했다. 뭔가 스마트폰 시장은 지원금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지, 특히 스마트폰을 사는 일만큼은 손해보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20만원 언더로 사기 위해 최신폰은 사지 않고 한 시즌 지난 정도의 모델로 저렴한 가격에 바꿨다. 그래도 나는 만족했다. 생활필수품으로서 불편함없이 쓰기 딱 좋았다.


이렇게 5년 넘게 살아온 내가 갑자기 그제 최신 아이폰 12 PRO을 질렀다. 특히 아이폰은 할인도 없더라. 그냥 출고가 그대로 돈을 지불하며 주문을 넣었다.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가슴이 콩캉콩캉했다.

쫄보.


part 2 전공이 가성비
산업공학 : 산업공학은 모든 체계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공학.
주로 산업 및 사람과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인터페이스에 대하여 연구하며,
시스템과 인터페이스의 최적화와 효율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학부졸업생들이 고도의 전공 지식을 갖추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사정도는 해야 전공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것이지, 학부졸업생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은 대졸 공채를 뽑을때 왜 그리도 전공을 따지는 것일까. 내가 인사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전공의 지식은 남지 않아도 전공의 사고방식이 강하게 남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문제를 봐도 경영학과는 경영학적, 철학과는 철학적 접근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문제에 대해 심리학과는 사람의 동기를 생각하고, 통계학과는 통계적으로 합당한지 생각한다. 그러한 그 전공의 철학과 사고습관이 학부 4년동안 강하게 배어들기 때문에 서로 전공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전공지식이 있을거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아 물론, 전공지식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둘러대는 말은 아니다... 절대.


그렇다. 나는 산업공학과라 어떠한 문제를 바라볼 때, 효율적인지 최적인지를 생각한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전공이 가성비다. 나는 내 전공이 흥미로웠고 잘 맞았고 또 배운 것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취향'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동네였다고 생각한다.


part 3  가성비에 대한 고찰


그럼 가성비란 무엇인가. 내가 산 물건의 "지출 대비 성능"을 말하는 것이다. 표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성능에 대한 소비맵

우리의 모든 소비는 이 사각형에 포함된다. 나의 하나하나의 소비가 이 4개의 구역안에 점처럼 흩뿌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여기서 최소의 비용의 최대의 효과를 가져오는 가성비 좋은 영역은 어디일까. 바로 그림의 4사분면, 갓성비의 영역이다.


그리고 성능이 좋지만 그만큼 지출이 큰 1사분면은 내가 갖기는 어려운 '남의 떡'영역이다. 3사분면은 저렴한 비용이지만 그만큼 성능은 기대할 수 없는 '싼 게 비지떡'영역이다. 그리고 나머지 2사분면은 돈은 돈대로 썼는데 성능도 안 좋은 호구...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표를 가지고 취향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능'이란 것은 객관지표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만족을 느끼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객관지표를 주관지표로 바꿔야 한다. '성능'이 아닌 '심리', '만족', '행복'과 같은 것들로 말이다.


part 4. 가심비에 대한 고찰


이것이 요즘 많이들 얘기하는 가심비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지출 대비 만족도!

만족에 대한 소비맵

이제 이 표의 4사분면은 갓성비의 영역이 아닌 소확행의 영역이 된다. 여유있는 주말 아침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어떤 사람은 퇴근하고 자기 전 혼맥 한 잔이면 너무너무 행복하다. 요즘같은 시대에 감당가능하고 언제나 확실한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은 지출에 딱히 만족이랄게 없는 소비인 3사분면은 생활 필수품 등에 쓰는 소비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너무너무 만족스럽겠지만 그만큼 돈을 바쳐야 하는 1사분면은 요즘 말로 FLEX의 영역이다. 그리고 가성비맵과 마찬가지로 2사분면은 호... 그렇다.


part 5. 나의 취향 지도는?


이 가심비맵의 축은 만족이라는 주관지표다. 그래서 사실 사람마다 다른 비밀지도가 숨겨져있다.

소비맵 속 각자 다른 취향지도

당연히 1사분면, 4사분면에 존재할 각기 다른 비밀지도는 곧 각 사람의 취향을 나타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지도를 반 정도만 알고 있을 것이다. 4사분면의 소비는 우리가 많이 해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형태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1사분면. FLEX라... 살면서 몇 번 해 본 것 같지 않다. 손에 꼽힌다. 1사분면은 미지의 영역이다.


<마케터의 여행법>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는 소비와 취향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소비 : 소유보다 경험
취향 : 폭넓은 경험이 만들어주는 것


맞다. 우리는 소비를 할 때, 소유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경험한다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정한 소비다. 회사에서 명상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밥도 그냥 먹지 못했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이 입술에 닿으며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명상의 시작이었다.


입 안에서 혀와 함께 하나하나 분리되는 밥의 촉감,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밥의 윤기. 씹기 시작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하고 폭신하면서도 살짝 쫄깃한 식감. 이윽고 입 안에서 따뜻함은 달달함으로 바뀌고, 씹을수록 입 안 가득 채워지는 탄수화물의 충만함. 당시엔 밥 한끼 편히 못먹게 한다고 투덜댔지만, 사실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밥 한공기 밥 한알도 그냥 배에 밀어넣는 소유가 아니라, 충분히 밥이라는 존재와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취향이라는 것은 우선 이러한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한다.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내가 더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생기고 그렇게 당신의 취향은 발견된다.


part 6 [결론]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당신이 나와 같은 가성비 인생이었다면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기는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당신이 모르는 절반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마케터의 여행법>의 저자는 가끔씩은 돈은 생각말고 끌리는 것에 소비를 해볼 것을 권한다. 한번쯤은 1등급 비즈니스 칸에도 타보고, 취미활동 중에 좋은 장비도 써보는 것이다. 평소 하지 않았던, 하기 어려웠던 것을 한번쯤은 시도해보는 거다.


취향지도를 호수에 비유하자면, 지금 우리의 1사분면의 호수는 안개가 잔뜩 끼어있어 보이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4사분면에 많은 돌을 던져보며 나의 호수(취향)을 알게된 것처럼, 1사분면에도 골고루 돌을 던져보아야 한다. 중요한 건 골고루다. 명심하자, 1사분면은 비싸다. 미지의 호수가 어떻게 생겼을지 이곳저곳에 퐁당퐁당 돌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나의 호수가 드러나고 나라는 사람이 선명해진다.


part 7


그렇게 나는 '최신 아이폰 지름'이라는 돌을 1사분면에 던다.




ps.

그냥 최신 아이폰 갖고 싶어서 지른거면서 뭐가 그리 말이 많냐고?

충동적인 지름을 열심히 이성적인 척 자기합리화하고 있다고?

맞다... 정확하다...

이래야 내 마음 편할 것 같아서 써보았다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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