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잘 못했던 사람의 선물에 대한 생각
얼마 전 친구의 카톡이 왔다. 내가 선물해 준 아기옷을 요즘 너무 잘 입히고 있다며 고맙다고 했다. 분홍색 얇은 패딩을 입고 재밌게 놀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말이다. 아빠도 아닌 나의 얼굴에 아빠미소가 번졌다. 참 별스럽지 않은 선물을 주고 내가 이렇게 기뻐도 괜찮은 것인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선물을 준 것은 아니지만, 패딩을 입고 웃고 있는 친구 딸의 모습에 내 마음이 더 큰 선물을 받은 듯했다.
사람이 다정하지 못해 나는 선물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꼭 비싼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선물이다. 그런데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 수많은 것 중 무엇을 해줘야 하나 고민부터 들었다. 그럼 바로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그리고 곧 '선물까지 하는 건 오버 아니야?'라는 자제력 갖춘 핑계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선물을 사지 않고 축하의 말을 전한다. "축하해요!"
그렇게 컸던 나의 마음은 보통의 마음이 되고 만다.
물론 선물 없는 축하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받는 사람은 선물을 주나 안주나 축하에 항상 고마워한다. 하지만 경험 상 내가 저렇게 선물을 고민할 정도의 관계와 상황이었다면, 선물하는 게 후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때 선물을 하지 않으면 나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3명이 있다. 나 빼고 다 결혼에 골인하고 아이까지 한날한시에 낳았다. (물론 한날한시는 아니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소중한 친구들의 소중한 아이들이 태어났다는데 축하도 못해준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 친구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잠시 한국 방문 계획이 생겨 오랜만에 넷이 모였다. 잘됐다. 오늘 셋다 출산 축하 선물을 사줘야겠다. 그렇게 백화점에 갔다.
근데 또 선택 장애가 온다. 유아용품 브랜드는 뭐 그렇게 많고, 제품은 뭐 그렇게 다양한지. 점원분이 어떤 선물을, 어떤 가격대로 보시냐고 묻는데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점원 분과 상의를 거쳐 개월 수에 맞는 옷과 토끼 애착 인형을 하나씩 샀다. 하나하나 포장하고 교환권까지 잊지 않고 넣어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줬다.
막상 친구들도 뭐 이런 걸 다 준비했냐며 놀라고 기뻐하는 모습에 선물을 살 때 잠시 했던 고민도 참 별거가 아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웃음을 짓게 했다는 사실에 내가 오히려 고마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늘처럼 선물을 잘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인증샷까지 받는 날이면 선물을 누가 받은 건지 헷갈릴 만큼 마음이 흐뭇하다.
선물은 상대방이라는 인생에 나를 남기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친구들의 소중한 일에 내가 선물을 주고 축하를 건네는 일은, 그 사람의 소중한 기억의 일부로 나를 넣는 일이다. 누군가는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선물이나 축하를 건네는 것이 올바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미숙하여 선물을 주는 뿌듯함이 큰 동기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큰 기쁨을 얻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의 행복한 인생의 사건에 내가 함께 있는 것,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