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단단 Dec 02. 2020

조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과 고민이 길어질 때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2화.

잔뼈 굵은 유명 작가의 작품 제의를 면전에서 대차게 거절한 젊은 PD.

스타 작가로서 자존심 상한 그녀가 드라마 업계 선배로서 충고를 하려는 찰나,

충고 안들어~~ 충고 안들어~~


이건 일종의 카타르시스.

이래야 된다는 수많은 규칙과 시선에 짓눌린 내 가슴을 한 번에 뚫어주는 완벽한 대리만족!


근데 이건 드라마일 뿐이다. 아니, 비현실성이 어벤저스급 히어로물에 가깝달까.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고 어머니는 대학총장인 젊은 금수저 PD. 게다가 이미 드라마로 성공해서 자신의 이름 세 글자만으로 영향력 있는 스타PD라서 가능한 판타지다. 오늘도 일개 직원으로서 감사히 일하고 퇴근한 후, 방구석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으며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보통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안다. 나도 다 안다. 다 알지만... 무엇이 그리 통쾌하고 유쾌했는지,

이 장면 하나에 깔깔깔 웃으며 무장해제되어 결국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한 번에 정주행하고 말았다.




우린 사실 충고나 조언에 목매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아니, 날이 갈수록 현대인의 필수 자질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정보가 넘치고 넘쳐흐르는 요즘 같은 때에 기본적인 것도 알아보지 않으면 핑프라고 욕을 먹고, 잘 알아보고 구매하지 않으면 박사님이라도 호구가 된다.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오죽하겠는가. 이럴 땐 누구라도 인터넷 조사 정도가 아니라, 직접 누군가를 만나 족집게 과외 같은 조언을 받고 싶을 거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히 기본적인 것도 알아보지 않고 물어보는 핑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디 가서 호구 소리 듣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물건 하나를 구매할 때도 나는 참 피곤하게 살았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나의 이런 성향은 더욱 강력해진다. 아주 많은 인터넷 서치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직접 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보를 알면 알수록 나는 모르게 되었다.

곧 선택을 해야 하는데 내 마음은 50대 50, 그 선에 정확히 걸쳐 있었다.




그런데 7년남짓 사회생활을 해오며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자, 한번 이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는 지난주 회사에 휴직원을 냈다. 1년을 통째로 휴직을 하는 건 내 인생에 정말 큰 일이라 두려움이 앞섰다. 이게 현명한 결정일지 알고 싶어서 휴직을 해도 좋을지, 주위 회사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라고 해보자.


음,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조언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가 조언을 구하는 방식과 3군데나 어긋나 있다.


1. 진심이 없으면 새겨듣지 않는다.

우선 단지 주위 사람이라는 이유로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나에게 진심으로 말해줄 사람에게 물어본다. 단지 친하거나 친하지 않다는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친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진심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또 나와 친한 듯해도 사실 나를 정말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 아닐 땐, 다 느껴지기 마련이다.


2. 이해관계가 얽히면 조심한다.

나는 회사 사람, 부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내가 물어본 일은 '휴직'에 관한 일이다. 회사(부서)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에서 상사 혹은 동료라는 업무의 이해관계에 얽혀있다. 회사라는 곳에선 나의 휴직이 상사의 평가에, 동료의 업무량에 안 좋게 작용할 수 있다. 내가 고민해서 결정할 일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을 사람에게는 조언보다 양해를 구했던 것 같다.


3. 다른 사람의 조언은 3번까지 들어본다.

그 이상은 새로운 조언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에게 3번이나 직접 조언을 구했을 정도라면 이미 충분히 조사하고 알아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경험 상, 그 쯤되면 나에 대해서 나만큼 깊이 생각해 본 사람도 없고, 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탐닉했다면 나는 휴직 시작 못했다



그래서 휴직을 결정했던 나의 경우엔 먼저 무엇을 위해 휴직을 하는지 기본적인 케이스를 알아봤다. 그리고 조언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 둘과 선배에게 구했다. 찬성 2, 반대 1. 친구 한 명은 해보고 싶은 일을 휴직 없이 병행하는 게 어떤지 권했다. 매우 합리적인 의견이었지만, 나는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왔기에 더 전격적인 변화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최종 결정은 휴직.


과연 내가 내린 답과 프로세스는 정답일까. 난 이 방식이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각자 '조언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명쾌히 정해보았으면 좋겠다. 원래 자신의 일은 객관적으로 안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 너무 외부 의견에 치중하면 자신의 마음과 자아가 가려지게 된다.


나의 경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보고 생각해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약 5년 전 일기 속의 나는 아래와 같은 다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걱정이나 고민을 하는 양만큼 결과가 좋아지는 게 절대 아니다.

걱정이나 고민의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 적정선은 당신의 생각보다 아주 낮다.

작가의 이전글 멈춤을 시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