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회사에 와서, 어둑어둑해진 저녁 버스 타고 퇴근하는 지금까지 하루의 시간이 이렇게 또 흘렀다. 잠실대교를 지나며 보이는 검은 한강이 오늘도 똑같이 흘러간다. 기분이 허하다. 물을 잔뜩 넣어 만든 고깃집 서비스 계란찜마냥, 회사에서 정신없이 꽉 채워 부산하게 보낸 하루가 왠지 밋밋하다.
"물 잔뜩 넣은 고깃집 서비스 계란찜 같아"
맞다. 내 삶은 '알차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산업공학 전공이라 무엇이든 최적화하고 효율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오늘 바쁘게 일했는데 이렇게 소득 없는 느낌이라니' 이러면서 삶에서도 가성비란 것을 따진 것일 수 있다. 긴 회사생활 속 지루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인데 그걸 못 참은 것일 수 있다.
삶은 원래 그래.
직장생활이란 게 원래 그래.
하고 싶은 일도 정말 일이 되면 다 재미없어지는 거야.
그래도 이만한 조건과 자리가 어디 있어. 그래서 다들 버티고 사는 거야.
다 맞는 말이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동기들과 퇴근 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답답한 마음을 한숨과 함께 보내곤 했었다. 사실 30대 초중반인 나와 친구들은 직장, 연애, 결혼, 집, 가족일... 뭐 하나 걱정 안 되는 부분이 없고 만만한 거리가 없다. 그중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일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근데 그렇게 걱정하며 보내온 세월이 어느새 7년이 넘어간다. 일과 인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그대로인 상황인데, 회사에서 연차는 쌓여간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문득문득 놀라, 이러다 시간이 계속 흘러 그대로 할아버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고민은 풀리지 않은 채, 현실을 버티는 삶이 그냥 이렇게 계속될 뿐이라면... 그렇게 또 아무 변화도 없이 시간만 매정히 흘러간다면...
안된다. 그럴 순 없다. 내 인생이 그런 상태와 감정 안에 계속 갇혀있게 둘 수는 없다. 나에겐 말 그대로 하나뿐인 나의 인생이다. 내가 나의 삶이 힘들다고 내 육체와 정신에서 빠져나와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의무다. 그리고 사랑한다면 힘든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더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뭐 뾰족한 수는 없다. 갑자기 지금 이 순간 직장을 박차고 나가 월급만큼 돈을 벌어올 재주는 없었다. 그래도 잠시만 멈춰보고 싶었다.
"잠시만요, 저 잠깐 멈춰볼게요."
다행히 회사에 휴직제도가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1년을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고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 7년간 직장인으로 달려온 내 삶과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기회와 자유를 더 주고 싶었다. 아예 퇴사는 사실 또 두렵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미생의 명대사도 있지 않은가. 직장인이라는 사회생활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무한정은 아닌 1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했고, 그 정도면 충분히 나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휴직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이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이루지 못한 30대 중반의 '어른이'로서 일과 휴직에 대한 생각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어른이'가 휴직하고 도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유튜브 제작과 앱 제작 등 경험 없는 초짜가 도전하는,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사회초년생 때 일기에 적었던, 내가 원하는 삶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강의나 강연 등으로 나의 무언가를 전함으로써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나의 삶이 주위 적은 사람에게라도 울림이 되는 것. 지금까지는 준비가 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비된 인생이란 없는 것 같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루지 않으려 한다. 내가 선택해서 지금 그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1년의 인생 실험을 하려는 거다. 그리고 그 실험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나의 이 실험으로 당신을 만나고 또 이야기하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걸. 우리 다 용기를 내어봐도 괜찮은 일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