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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Dec 12. 2020

강인한 새싹은 한 줄기 햇살의 감사함을 안다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저 | 책 리뷰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 책은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라는 책 표지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에게 갇힌 소녀가 자유를 찾게 되는 저자의 실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책에 대한 서술들은 저자 소개만 봐도 다 나오는 내용이라 스포일러랄 게 없으니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


한 해의 마지막 이 맘 때쯤 TV에서 하는 수많은 연말 시상식. 족히 10개는 될 것 같은 그 수많은 시상식을 방송사는 앞다투어 방송을 하지만 나는 잘 보지 않는다. 똑같이 반복되는 수많은 수상소감이 너무 지루하다. 수상하는 사람에겐 단 한번일 수 있는 영예로운 순간이겠지만, 집에서 시청하는 나에겐 반응과 멘트까지 예상되는 뻔한 주말 드라마다. 가끔 한 번씩 감동적인 수상소감이 뉴스에 오를 만큼 회자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밀린 숙제 처리하듯 나열하는 지인 리스트를 듣느라 소중한 연말 저녁시간을 다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은 이유로 특별한 경우 아니면 책의 서두나 말미에 나오는 감사의 말도 대충 읽는 나다.


그런데 세상에.
내가 에필로그에 쓰인 감사의 말을 하나하나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완벽한 아이> - 모드 쥘리앵 저


이 말을 듣고 <완벽한 아이>라는 책의 뒷부분부터 펼쳐 읽어본다면 실망할 것이다. "뭐야, 다른 책들과 비슷한데?" 그러나 이미 책을 읽어본 분이라면 몇 페이지 안 되는 '감사의 말'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그 하나하나의 감사인사의 무게를 알려면 주인공인 모드의 삶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내가 책을 반 정도 읽었을 때 쓴 내 감정에 대한 메모다.


보통 그러듯 책을 읽기 전 재즈음악을 틀었다.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읽어나갈수록 음악과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 소리를 줄인다.
계속 책을 읽어나간다.
조그맣게 들리는 음악도 계속 들을 수가 없다.
아무 보호장치도 없는 모드의 이야기에
나를 감싸는 따뜻한 재즈음악이 야속하다.
좋아하는 음악이 싫어질까 음악을 끈다.

가슴 가운데는 막힌 듯하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눈 안쪽이 점점 더워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믿을 수밖에'
모드 스스로의 생명력이라는 힘이
그녀를 둘러싼 모든 걸 이겨내길 '믿을 수밖에'


모드의 삶을 보며 내 마음은 너무 간절했다.

태어나자마자 외부의 모든 것과 차단되어 수용소와 같은 집에 갇힌 아이.

비인간성의 끝을 보여주는 아버지 아래서 왜인지도 모르는 강압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는 아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상식인지조차 알 수 없는 폭력적인 세계에 묶여있던 아이.


그냥 내 마음은 계속 간절했다. 아무 도움의 손길이 있을 수 없는 곳이지만 모드 자체의 어떤 힘으로라도 무너지지 않길. 잠깐의 책, 잠깐의 음악, 그리고 동물들과의 잠깐의 교감을 통해서라도 생명력을 이어나가길. 그렇게 나는 무기력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무거울 모드의 마음일 텐데, 나까지 그 마음에 기대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의 햇살과 조금의 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새싹은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안다.


책 읽는 내내 모드 스스로의 생명력을 응원했고, 결국 자신의 삶을 일으키는 모습에 기뻐했다. 어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한 개인의 생명력은 강력하다'라는 희망을 모드가 보여줬다. 그런데 에필로그를 읽어보니 모드가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정말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모드의 입장에서 보니 자신을 도와준 작은 끈들이 없었으면 모드가 절망 속에서 일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모드에겐 하나하나 모두 작은 끈이 아니라 동아줄이었다.


감사의 말을 읽을 때 그래서 울컥했나 보다. 아무 희망과 인간적인 경험이 없었을 모드에게 지나가던 사람의 작은 배려, 작은 친절은 그녀의 삶을 일으킬 용기를 주었다.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을 알려준 친구, 미술관에 데려가 준 친구, 만화를 처음 접하게 해 준 친구, 상담으로 정신적 치유를 도와준 의사, 자유롭게 들락 나락 거리며 자신을 세우도록 배려해 준 서점 주인, 미국에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 동기들, 그리고 어릴 때 자신과 함께 했던 동물들, 책들, 음악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나열될 때마다 모드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일이었을지 느껴졌다. 내가 다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이 이름은 모드에게 이런 시기에 이런 도움을 주었구나' 애틋한 마음으로 읽었다.


모드가 하나하나 말하는 이 감사들은 내 마음속에서 그냥 나열되고 있지 않았다. 쌓이고 있었다. 그 사소한 도움과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모드를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바꾸었구나. 나열된 감사의 말을 읽으며 바닥이었던 모드의 정서와 감정이 어떻게 따뜻하게 차올랐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 주위의 평범한 듯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중 누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억눌린 생명력을 꿈틀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작은 배려와 사소한 친절이 꽤 뿌듯한 일을 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완벽한 아이>의 에필로그, 감사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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