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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an 02. 2021

나라는 사람 받아들이기

<모든 것이 되는 법> 책을 읽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덕후가 부러웠다


나는 뭐든 아주 못하진 않지만, 어느 것 하나도 탁월하게 잘하지는 않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축구도, 음악도, 미술도 어느 정도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특별히 뛰어난 과목은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과목을 말해보라는 어른들의 질문에도 나는 하나를 고르지 못해 난감해하던 아이였다. 그냥 다 나름의 매력이 있어 재밌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이런 내가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어느 쉬는 시간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던 친구로 기억하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말해줬다. 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의 이름과 특징, 스토리 등 모든 것을 꿰고 나한테 줄줄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어린 나였는데 그때 들으면서 상당히 충격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디테일하게 잘 알아서. 그리고 뭔가를 그렇게 너무 재밌어하는 모습이 부러워서.


애니메이션만큼은 모두가 그 친구를 떠올리고 물어보는 게 멋있어 보였고, 나는 내가 뭐든 어설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알게 됐다. 매니아라는 말을. 덕후라는 말을.


지금은 바야흐로 덕후의 시대다


한때는 덕후라는 말이 안 좋은 느낌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이 인정받고 자기만의 취향과 개성이 중요한 이 시대에 덕후는 더 인정받는다. IT업계도 그렇다. IT업계 7년 차인 내가 본 결과, IT는 덕후가 해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 기술과 언어의 세계는 깊다. 그렇기에 똑똑함이라는 자질보다는 꾸준함이라는 자질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언어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기술 알기를 좋아하고, 퇴근하고서도 IT생각에 코딩을 놓지 못하는 그런 덕후여야 진정한 꾸준함이 가능하다.


조금 관점은 다르지만, 하나를 매우  아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유리하다. 자본주의는 효율적인 분업화 사회이기에 우리에게  분야의 전문가가 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의 패널, 채사장은 세상엔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우물을 파는 사람과 여행을 하는 사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 우대받고, 대부분이 하나의 우물에서 전문가가 되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냐. 나는 우물을  깊게 파기 시작할 때쯤 다른 우물을 다시 파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난 매니아나 전문가 기질이 없다. 무엇하나 오랫동안 빠져서 좋아해 본 것이 없다. 무언가를 좋아해도 계속 관심사는 옮겨갔고, 무언가 진득이 하나 해보려 하면 다른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박사나 교수로, 또 유능한 전문직으로 성장해갈 때 나는 왜 분명한  하나의 진로를 빨리 선택하지 못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이 커졌을 때는 우울감에 젖어 살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 받아들이기


얼마 전 '모든 것이 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이 꽤나 자극적이지만, 실제는 다양한 관심사를 놓지 못하는 사람 유형에 대해 격려하는 책이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으며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말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모든 것이 되는 법> - 에밀리 와프닉


글의 세부적인 내용에 감명받았다기보다, 그냥 비슷한 사람과 공감하며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나는 항상 길을 선택할 때 보기 중 나의 삶을 덜 좁힐 수 있는 보기를 선택했다. 수많은 공과대 중 산업공학을 선택한 것도 그렇고,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 삶을 돌아보니 참 취미도 많았고 활동도 많이 했다. 나는 이런 내가 잘못 사는 줄 알았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관심사와 활동분야가 많은 사람을 '다능인'이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수백 명의 다능인을 연구한 결과, 다능인은 세 가지 공통 요소를 제공하는 삶을 설계해왔다고 한다. 돈과 의미, 다양성이다. 공감이 갔다. 돈이야 생계를 위해 당연한 것이고, 나는 일의 의미와 다양성이 중요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 딱 맞는 사람은 아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긴 것을. 누가 당신의 취미는 무엇이냐며 하나만 적어보라고 하면 여전히 나는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이제의 나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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