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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an 22. 2021

책 쓰기? 야 너두 할 수 있어!

<책 한번 써봅시다>  |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 팁

 휴직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자! 글도 안 써본 내가 무언가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글을 하나 둘 쓰기 시작하면서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우선 글을 쓰는 것이 먼저다. 글쓰기 새내기인 사람이 책 낼 생각부터 하다니. 오만한 생각일 뿐더러, 싹 틔우는 일부터 압도당할 수 있는 너무 거대한 목표다. 그렇게 책 생각은 접고 우선 잘 쓰든 못 쓰든 꾸준히 글쓰기만 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이것만 해도 감개무량이다. 다행이다.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잘 지내던 어느 날,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 아니, 책을 써보자니. 그것도 장강명 작가님이! 아하, 이 책은 나 같은 글쓰기 초보를 위한 책이 아니다. 글깨나 쓰는 사람, 예를 들면 중진 브런치 작가들을 위한 책일 거다. 아, 그런데 뭐지? 이 귀여운 표지 그림은? 표지 디자인을 보니 왠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표지 그림은 정확히 나 같은 글쓰기 햇병아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고, 저 같은 게 책은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쓰자고 하는 책이란다. 이렇게 헛바람 넣을 작가님이 아닌데 의아했다. 동시에 아기자기한 만화 같은 표지와 책 한번 써보자는 제목이 묘하게 기대가 됐다.


 딱 4장 정도만 읽어보니 알 수 있었다. 일부 작법서 책처럼 약 파는 책이 아니다. 이 사람 진심이구나. 인구의 10프로가 책을 내고, 의회 경제보고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아이슬란드처럼 우리도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단다. AI시대, 5G 시대에 책 중심 사회라니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본인은 한 걸음 딛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가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며, 이 세상 모든 햇병아리들에게 책 쓰기를 권하고 고민상담을 해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친절한 동네 형이 알려주는 편한 상담같은 책이다.

햇병아리들 모여! 책 한번 써보자!


몇 가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잊지 않기 위해 에세이 챕터 중 몇 가지를 여기 남겨 보려고 한다.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장을 쓰라 (p20)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이 되는 조언이다. 이것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 분량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작가의 기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데,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 삼자고 얘기한다. 책을 안 써본 사람이 한 주제로 이 분량의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사고의 깊이와 기획력이 필요하다. 다른 추상적인 말보다 오히려 본질적인 조언 같다. <책 한번 써봅시다>도 200자 원고지 710매 분량이라고 한다.



영감을 가라앉히는 나태한 마음의 목소리를 경계하자 (p92)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에 대한 팁보다 오히려 이 말이 더 와 닿았다. 나는 일상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도 글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그때 내 마음의 소리를 읽고 글에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아유, 모르겠다', '사는 게 본디 수수께끼지, 뭐', '세상에 원래 이상한 인간들은 다 있어', '밥이나 먹자' 이렇게 생각을 포기하려는 지점에서 그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낼 뿐인데 욕을 먹는다면 먹는 거다.
좋은 에세이를 쓰려면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 (p106)


 내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려 할수록 이 부분이 걱정이었다. 세상 모든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이 답 일리도 없고 여론 일리도 없으니 말이다. 내 글로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하면 어떡하지, 누가 댓글로 강하게 반대하면 어떡하지. 정말 비판이 걱정된다면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펼칠 궁리를 하는 게 낫다고 한다. 그럼에도 논쟁거리가 될 사안이라면 아주 좋은 글감이란다.



나의 삶을 애정 하며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격언, 금언을 만들어 보기도 하자. 요즘은 일반화, 범주화를 폭력적인 기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듯한데
그것은 사고의 본질이다. 두려워 말자.(p129)


 이것도 마찬가지 고민이었다. 내가 대가도 아니고 무언가를 단정하듯 말해도 되나. 그리고 내가 한 마디로 단순화시켜 얘기하면 그게 아닌 사람들도 있을 텐데 거칠게 일반화하는 건 아닐까. 책을 읽고 나니 사실 이런 생각이 글을 우유부단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개별 상황의 특수함을 놓치게 되는 건 모든 명언과 속담, 격언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관찰에서 형이상학적인 유추를 하게 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나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고 관찰을 하다 보면 나만의 관념이 생기고, 그게 곧 내 글의 통찰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정말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집필을 포기하지 말고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자.(p135)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지인이 글에 등장해야 할 때가 있다. 좋은 이야기면 상관없다. 하지만 안 좋은 이야기면? 이건 글로 뒷담화하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이 이 글을 보면 화날 텐데.. 그래서 아예 쓸 생각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독자를 기만하지 않고 '바꿔 쓰는' 요령이 있고, 용인되는 선이 있다고 한다. 필명을 쓰기. 시간과 장소, 이름 등은 바꾸어 써서 구체적인 사항은 흐리기. 내 얘기지만 지인의 얘기로 소개하기 등등. 또, 누군가의 말을 인용할 때 토씨 하나 안 틀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의도나 뉘앙스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문장을 수정하는 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튀는 게 개성이 아니라, 당신의 답이 당신의 개성이다.(p113)


 모두가 하는 말이 개성 있어야 하고 식상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그 말이 참 어려웠다. 언제 한번 에베레스트라도 다녀와야 좋은 글이 나오는 건가. 그게 아니라 나다움이 잘 드러나는 글이 개성 있는 글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러기 위해 자신의 마음의 모양을 알아야 하고, 그 방법은 자문자답하는 글을 써보는 것이라고 한다.

 하긴, 내 나이 삼십 대인데 아직도 나를 모르겠다. 세상 사는 법을 알다가도 모르겠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갑자기 루저의 마음이 된다. 나는 나니까 매일 내 생각을 하며 살지만, 정말 나를 여러 면에서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며 습작 노트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마음의 모양을 알게 되어 개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뿐더러, 심리 치유의 효과도 있다. 1석2조!!


나라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자. 비싼 심리 상담, 어려운 심리학 이론 필요 없다. 개성을 밝히는 유일한 빛은 자문자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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