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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Jan 30. 2021

물 5000리터가 단돈 5000원?

기부와 환경보호에 대한 생각

나는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받아도 텔레마케팅이면 죄송합니다 하고 금방 끊는다. 집에서 차를 마시는 중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유니세프였다. 유니세프 후원을 하고 있었기에 뭔가 안내할 내용이 있나 해서 통화를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은 아니고 추가 후원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사실 이 정도도 죄송하다는 인사로 끝냈을 텐데, 전화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타민 크기만한 알약이 5원인데 5리터의 물을 정화시킬 수 있어요. 오염된 물을 마셔서 설사병으로 생명을 잃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어요."


아, 그래요?? 원래 추가 후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솔깃했다. 단 돈 5원이 이렇게 값어치 있게 쓰일 수 있다니. 적은 돈이라도 충분히 삶과 직결된 좋은 일에 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미 후원을 하고 계시니, 단 돈 5천 원만 추가 후원을 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아, 딱 5천 원 정도만? 월 5천 원 정도는 큰돈이 아니다. 5원에 5리터의 물이 정화된다고 했으니, 나의 후원 증액만으로도 매달 5000리터의 오염된 물을 식수로 정화시킬 수 있다. 내 최근 몇 년 간 소비 중 이렇게 의미 있게 쓰인 소비가 있었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영화 쉰들러리스트가 떠올랐다.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인 쉰들러를 떠올리다니 김칫국도 이런 김칫국이 없다. 보잘것없는 나의 돈이 값어치 있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단순하게 연결된 반사적 과대망상이었다.


나는 쉰들러는커녕,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자원봉사자도 아니다. 원래 그런 쪽에 예민한 감각이 없다. 평소에 봉사나 환경보호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 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무언가를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쓰인다면 그건 지키고 싶은 마음은 있다. 딱 그 정도만 있다.


후원도 마찬가지다. 많이 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게 내가 공감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아닌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내 관심과 호기심이 닿는 정도까지만 후원을 한다.


"그러면 5천 원 증액 후원은 1년 정도 기간을 두고 하는 건 어떠세요?"


오, 지금 내 관심과 호기심의 정도에 딱 맞는 제안이다. 우선 1년을 후원하고, 그 이후에는 식수정화사업을 다시 생각해본 뒤 결정하면 좋을 것 같다.


"네네, 그럼 1년 동안 5천 원 증액 후원하는 걸로 해주세요. 식수정화사업에 대한 설명이나 자료 링크 있으면 꼭 보내주시고요!"


우연히 받은 전화였는데, 전화하신 분이 어떻게 내 마음을 딱딱 그렇게 잘 아는지 순식간에 후원 증액은 이루어졌다.




최근에 어떤 브런치 글에서 커피 캡슐이 환경과 인체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말하는 글을 봤다. 커피 캡슐은 재활용이 안 되는 7번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또 플라스틱, 종이, 알루미늄 등으로 겹겹이 구성되어있는 캡슐은 구조 상으로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고온 고압으로 추출되면서 캡슐에서 환경호르몬도 나온다. 커피 캡슐 제작자도 자신의 업적을 후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친환경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후... 내가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을 얼마나 자주 먹고 좋아했는데, 그 글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이제 나는 커피 캡슐을 쓰지 말아야지. 그 길로 마트에 들러 캡슐 커피 대신 드립백 커피를 샀다.


나는 기부나 환경보호에 대해 이렇게 사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때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환경보호를 위해 내가 이런 일도 더 해야 하는데'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다. 후원을 하면서도 많지 않은 내 후원금액을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자신에 대한 죄책감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모든 사람이 마더 테레사의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힘이 닿는 만큼, 관심이 닿는 만큼, 마음이 닿는 만큼 솔직하게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각자의 솔직한 마음과 상황만큼만 한다면, 모두가 그렇게만 한다면 의외로 큰 힘이 모일 수 있다고 믿는다. 지구 상의 모든 어려움이 해결될 만큼 큰 선한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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