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단단 Feb 21. 2021

정의와 자비,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정의와 자비'를 생각해보다

이 브런치 글은 오디오북처럼 들을 수도 있어요. (Running time : 6분)

*유튜브로 듣기

*파일로 듣기




A라는 국가가 있습니다. 법질서가 아주 잘 서있는 나라죠. 큰 범죄부터 작은 범죄까지 무엇하나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법뿐만 아니라 시민의식 자체도 철저한 나라죠. 그렇기에 주민 간 예의범절은 물론이고 마을의 작은 규칙들도 잘 지켜야 합니다. 만약 하나라도 어긴다면 금방 동네 사람들의 뭇매와 질타를 받습니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선 신고도 불사합니다. 잘못하면 곧바로 그만큼의 철퇴를 맞는 아주 정의로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B라는 국가가 있습니다. 온정이 넘치는 따뜻한 나라죠. 나의 의도치 않은 실수도 주민들이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A 나라였으면 바로 행실이 안 좋은 사람으로 소문나거나, 신고를 당했을 겁니다. 그런 일없이 저는 다시 옳게 행동하면 되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법도 국민감정에 따라 자비가 넘칩니다. 심각한 범죄자들에게도 낮은 형량으로 최대한 새로운 기회를 주는 편이고, 그들의 인권도 다른 어떤 권리보다 앞섭니다. 여기는 모든 일에 온정과 용서가 가득한 아주 자비로운 나라입니다.


자, A와 B 나라 중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까.




정의와 자비. 둘 다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가치입니다.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고, 개인의 자아나 관계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고려하기 쉽지 않은 가치이기도 합니다. 같은 뉴스를 보더라도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면서 침을 튀기며 분노를 하는 아주 정의로운 친구도 있고, 잘못은 하긴 했지만 사정이 얼마나 딱하냐며 선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자비로운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자비보다 정의에 무게를 두던 사람이었습니다.

- 어찌 되었든 잘못은 그에 맞는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만큼 명확히 그 잘못을 인지해야 한다

- 그래야 잘못을 저지른 본인에게도 장기적으로 보면 벌이 약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본보기가 되어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댓글이나 여론을 보면 참 무섭습니다. 이 정도의 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분노하는구나 놀랄 때가 많습니다. 최근 코로나 19가 잠잠해지지 않고 더 심해지고 있다는 기사에 나도 혹시 걸리지는 않을까 두려운 감정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운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니, 코로나 19에 감염돼서 아플게 걱정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상이 전부 공개되어 모두에게 알려지고,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이유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비난받을 행동이 되어버리고, 주위 사람에게 질타를 받고, 여론으로부터 욕먹을 것이 걱정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자비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당연시되던 그때, 민주주의가 이제 막 태동하던 그때보다 우리 사회의 정의는 좀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성장하면서 비교적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요. 정의가 성숙할 동안 자비는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소위 길빵(길을 걸으면서 담배 피우는 행위)하는 사람이 넘치던 풍경, 축구장 관객석이라는 공공시설에서도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때는 2015년, 벌써 한참 전이긴 하네요^^) 제가 신기했던 것은 그곳에 어우러져있던 사람들이 흡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잘 어울려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이런 풍경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흡연행위를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잘못된 거죠. 비흡연자인 일반 스페인 사람들도 당연히 냄새는 지독하고 눈은 아팠을 겁니다. 다만 이렇게 잘못된 일에 대한 두 사회의 상반된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한쪽은 21세기에 간접흡연 나쁜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참 무던하다 싶었고, 다른 한쪽은 간접흡연이나 층간소음으로 살인 사건도 벌어질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거지요. 모든 나라가 '자본주의 사회라 각박한 세상이다' 말을 하지만 한국 사회는 꽤 심한 예민 사회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치열한 경쟁사회로서 많은 진보를 이룬 반면,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진 게 아닐까요.


제가 A나라와 B나라 중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죠. 사실 정의나 자비, 둘 중 하나만 있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도 좋은 나라는 아닐 겁니다.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겠죠. 저의 답은 개별 사안에 대한 각자의 역지사지입니다. 나라면 이 일에 대해 정의의 철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라면 이 일에 대해 그래도 자비로운 선처로 기회를 다시 얻는 게 맞다고 보는가. 이상적인 말이겠지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해보는 사회라면 공동의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의와 자비 문제, 당신이 생각하는 황금률은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성공은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