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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Apr 24. 2021

나는 겸손에 반대한다

'겸손'을 생각해보다

고등학교 때였다. 중간고사 반 1등을 한 친구에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건넸다.


"아니야, 천만에! 찍었는데 맞췄어. 운이 좋았어."


처음엔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들었다. 근데 그 친구는 항상 1등이었고 언제나 이런 대답을 했다. 계속 듣다 보니 왠지 얄미웠다. 나는 진심으로 칭찬을 한 건데, 친구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공부 잘하는 그 친구는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가끔씩 운이라고 했으면 믿었을 텐데, 매번 칭찬에 기계처럼 아니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정말 기계 같아 보였다. 요즘 같았으면 AI 같다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나도 그런 말과 행동을 했다. 기회가 그 친구처럼 흔치 않았을 뿐이지. 사람은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웠기에, 그 흔치 않은 기회가 오면 마음껏 겸손을 발휘했다.


상장을 받아도, "아 이건 그냥 반에서 한 명씩 다 주는 그런 상이야."

취업에 성공해도, "이 회사에서 시기와 운이 좋았어."

대리로 진급해도, "대리는 다들 다는 건데 뭐."

브런치가 조회수 폭발해도, "아 이건 브런치 하는 사람들 한 번씩 겪는 일이야."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인생에 부작용이 생겼다. 삶의 이런저런 일에 정말 자존감이 떨어진 나를 발견했다. 정말 부족한 사람 같고, 내가 하는 일은 보잘것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어 습관은 불확실한 어미로 점철됐다.


"이건 지난주에 보고 드린 내용 같아요"

"확실치 않지만 아마 지금 쯤 출발하면 되는 것 같아요"

"몰라. 아마 A문서를 확인하면 알 수 있을걸?"


이유가 뭐가 됐든지 간에,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태도가 반복되니 정말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낮추어 보는 무의식이 생겼던 것이다.




겸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라고 쓰여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겸손’이라는 미덕의 단어에 대해 상당히 겸손한 자세로 서술해 놓았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이라는 말은 적극적이지 못한 어휘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옳은 가치로 인정받는 '겸손'이라는 단어를 애써 좋게 서술하고 싶은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고려대 국어대사전처럼 부정 표현을 제거하면 의미가 명료해진다.

겸손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


남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다. 나는 남을 존중하는 태도에 찬성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태도에 반대하기에 겸손에 반대한다. 물론 때때로 겸손해야 할 상황은 있겠지만, 매사에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반대다. 지속적 겸손은 필연적으로 자기 비하의 감정을 낳는다. 겸손의 말이 습관이 되면 나의 무의식도 그렇게 바뀌어간다.


이런 지속적 겸손, 극단적 겸손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을 낮은 자존감이라는 늪에 빠뜨리며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낮춘다는 생각 자체가 위계라는 개념을 전제하는 행위다. 그 위계 속에 자신이 한껏 낮춰진다면 타인은 나보다 우월한 존재가 된다. 나의 겸손 때문에 나의 옆에 있지만 항상 나보다 우월한 그들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 질투는 곧이어 우리에게 불행을 안겨준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감을 갖는 태도가 좋은 듯하다. 버트런드 러셀도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공작새에 대한 언급을 하며, 겸손할 바에야 공작새가 되라고 말한다. 공작새는 자신의 꼬리가 최고로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공작새에 대한 질투가 없고 오히려 온순한다고 한다. 모두 자신의 멋진 꼬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서로가 세상에서 자신의 꼬리가 최고라고 여기고, 자신의 암컷이 그렇게 얻은 최고의 가치라 여긴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가 겸손 대신 공작새를 미덕으로 여기면 좋겠다. 사람들이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자신도 존중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칭찬을 했을 때, 남도 존중하고 나도 존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겸손과 겸양의 말을 생각해내는 일보다 간단하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면 된다.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상대의 말을 존중하는 표현이다.


만약 고등학교 때 반 1등 친구가 정말 운일 때는 운이라고 말하고, 나머지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대답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최소한 기계처럼 대답하고 기계처럼 정답을 맞히는 AI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에게 더 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친구의 자존감이 느껴졌을 테니까. 나의 칭찬에 대한 그 친구의 기쁨이 느껴졌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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