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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May 15. 2021

25살, 나 자신을 받아들인 그 날의 일기

25살, 일병 시절. 군 생활관에서 취침 전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라이트펜으로 몰래 일기를 쓰다.




2011년 6월 19일.


자대 배치를 받고 지금까지 약 1년 동안 군부대 내에 있는 이 교회에 다닌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모태신앙인 나는 교회가 주는 편안하고 가족 같은 시간들을 통해 군 생활의 어려운 일도 심적으로 잘 이겨내고 있었다. 같이 군교회를 다니는 선임, 후임 또 일반인 가족분들 다 너무 좋았고 감사했다. 단 한 가지, 내가 가진 신앙이 진짜 내 것인지 오랫동안 의심해왔다는 점 빼고는.


어제 군교회 집사님과 좀 트러블이 있었다. 나는 군교회 찬양팀을 이끄는 리더였고 집사님은 찬양팀을 챙기시고 관리하는 담당자였다. 개인 정비 시간에 휴식하지 않고 나와 연습하는 찬양팀에게 집사님이 더 열심히 하라고 푸시하는 듯한 말을 하셨다. 말이 집사님이지 우리 부대 장교님의 와이프 분이다.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말을 내가 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집사님은 우리한테 교회의 집사님이 아니라 장교의 와이프로서 지시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교회를 나와버렸다.


집사님이 오늘 따로 얘기하자고 나를 불렀다. 찬양팀 모두가 눈치를 살핀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 모두에게 미안했다. 집사님은 '지시'라고 느끼는지 몰랐다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집사님이 잘못했다기보다 나 개인의 신앙적 고민이 점점 커지다 바늘 같은 작은 충격에 내가 그만 터지고 만 것이다. 집사님에게 어제 그렇게 말한 것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고민 때문에 찬양팀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기독교인인 주위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괴로웠던 것이 진짜 이유라고 솔직히 얘기했다.


나는 학교에서 성실한 아이였다. 공부나 시험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공부를 했더니 부모님과 선생님이 칭찬해 줬다. 그 칭찬이 좋아 조금 더 했더니 다시 칭찬을 들었다. 특별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분명히 선순환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칭찬과 인정은 너무 달콤했고 나를 성실한 아이로 만들었다.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회에서도 그랬다. 성실하게 교회생활을 하면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바르고 신실한 신앙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해서 대학에서 기독교 동아리도 가입해 열심히 활동해보기도 했다. 서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기도할 때의 어떠한 감정을 바탕으로 남들처럼 비슷하게 말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 솔직한 마음은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다'였다. 그렇게 고민을 안은 채 군대에 오게 됐다.


그 고민이 어제 터진 것이다. 교회 사람들에게 꺼내놓기 민망한 것들이었다. 용기 내어 꺼내놓았는데 관습적인 죄의식이 어김없이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나 지금 죄짓는 거 아니야?'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내 삶이 바뀔 것이다. 분명 '삶이 바뀌는 것'인데 '삶이 틀어진다'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렵다. 지금 교회에서 같이 우정을 쌓아나가고 있는 선후임들이 실망할까 두렵고, 나의 대학교 절친 친구들과 나를 좋아해 주는 많은 교회 사람들이 실망할까 두렵다. 나의 저 깊은 곳에 있는 가치관을 부인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난다. 난 무엇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진짜 마음을 받아들이니 내가 누구인지, 내 친구는 누구일지,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외롭다. 나를 인정하는 생각 하나만으로 갑자기 회색 섬에 홀로 서 있다.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나의 상황을 말한다고 했다. 조만간 이런 나의 생각을 두고 교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벌써 가슴이 답답하고 부담스럽다. 엄청난 사고를 친 것 같은 느낌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둘러싸온 환경, 가치관, 무의식, 습관 전부와 선전포고를 한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은 맞지만 사고라고 생각하긴 싫다. 난 단지,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기 싫어서 나의 방향으로 몸을 튼 것뿐이다. 난 집단이 아니니까. 어느 소속의 우수한 인원일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뭐도 아니고 그냥 나는 나일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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