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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Aug 14. 2022

포트폴리오는 피드백이 필수인 이유

7년차 원 클럽맨의 포트폴리오 작성기

난 자소서에 자신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회사에 오래 다녀 자소서를 다시 써 본 일이 없음에도 나는 자소서에 이상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에게 자소서 피드백을 부탁하는 친구나 동생들이 있어 첨삭을 해줬는데 승률이 좋았다. 삼성전자 1명, 서울교대 1명. 결과가 확인된 사람은 둘 뿐이었지만 나 스스로는 "어쨌든 100프로네"하며 뿌듯해했다. 또 한 번은 커리어 멘토링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제작 요청이 와서 자소서 쓰는 방법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면 자소서로 나도 어디서 꿀리지 않아~"




나는 현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이력서(경력 기술서)와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한 기업에서 만 7년 반을 다니고, 그 후 스타트업에 스카웃 형태로 이직한 케이스라 이런 걸 전혀 준비해 본 적이 없다. 축구선수로 말하자면 원 클럽맨인 셈. 아까 말한 나의 그 이상한 근자감으로 이력서를 써보려고 책상에 앉았으나 아무것도 못하고 몇 시간을 그냥 보냈다. 아니, 몇 시간이 아니라 몇 일을 그냥 날렸던 것 같다.


그래도 회사 자료 준비나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은 난이도가 극상이었다. 글을 쓸 때도 주제와 소재가 잡혀있으면 그때부터는 보통 글이 잘 풀리기 마련인데, 포트폴리오는 그게 명확함에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보통 글이라면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말 쓰기 싫은  낯 뜨거운 자랑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작은 것도 샅샅이 찾아내서 구체적으로 자랑 해야 한다. 심지어 그 자랑을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레퍼런스를 찾아보니 보통 포트폴리오는 모두 PPT형태로 만들고 있었다. 한 번에 알아보기 쉬운 그림과 도표, Bullet point로 된 PPT 말이다. 좋아, 나도 PPT로 만들어보자. 며칠을 꼬박 작업해서 겨우 만들었다.


나의 최선.....


음... 상당히 구리다... 큰 일 났다. 내가 채용담당자여도 전혀 뽑고 싶지 않게 생겼다...


그런데 마침 이 타이밍에 포트폴리오 강의와 첨삭을 도와준다는 세미나 소식을 들었다. 이거다! 바로 신청했다. 지원하고 합격을 해야 세미나 참여할 수 있어서, '제꺼 되게 허접해서 고치는 보람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어필하면서 신청을 했다. 간절했다. 전문가의 터치가 꼭 필요한 상태였다.


결과는.. 당차게 떨어졌다. 아마 포트폴리오의 신도 이 포트폴리오는 소생이 불가하다 판단했겠지.. 나도 뭐 같은 생각이다. 이건 뭐.. 어떻게 더 못 고치겠다. 이때가 제일 고비였다. 방향도 못 잡고 고민만 더 많아져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다.


그렇다면.. 한 번 이렇게 해볼까? 실버라이닝!


포트폴리오는 들여다보기도 싫어 침대에서 유튜브만 뒤적뒤적하고 있을 때였다. 토스 멤버들이 포트폴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우연하게 봤다. 한 때 토스에서 디자이너 채용에 논-포트폴리오 전형이 있었다고 한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받지 않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묻는 6가지 질문에 지원자가 글을 쓰고 면접관은 그것만 보고 채용하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켜졌다. 엇! 이거다!


포트폴리오의 목적은 직무 역량에 맞는 경험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원하는 PO직군 포트폴리오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해결해갔는지 잘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딜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냥 포트폴리오를 줄글로 쓰자. 잘하지도 못하는 PPT 디자인 붙잡고 있지 말고,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글쓰기로 해봐야겠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별로 내가 어떻게 문제를 정의했고, 어떻게 고객을 바라보았고, 어떻게 문제 해결을 했고, 어떻게 수행을 했는지, 성과와 레슨런은 뭐였는지 썼다. 글을 써 내려가니 꽤 많은 분량의 초안이 나왔다. 글의 양을 일부러 줄이진 않았다. 대신 면접관이 읽기 좋도록 전체 요약과 단락별 요약을 추가하고, 내용을 다듬어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게 된 '글 포트폴리오'


우선 미리 말해두는 바는 내가 포트폴리오 전문가라서 Best practice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일반적인 포트폴리오 방식도 아닐 것 같다. 다만 포트폴리오의 ㅍ도 모르던 내가 한 달을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느낀 선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작성법 한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제일 중요한 건 바로, 피드백!


포트폴리오만큼 주관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분야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1. 자신만이 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2. 자신이라는 편향된 시각으로 보면서

3. '나 잘났어요~'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난이도 극상의 작업에는 자기객관화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자기객관화의 성공을 꿈꾸지 말고, 그냥 객관적으로 봐줄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받기보다, 이왕이면 해당 분야에서 실제 면접관을 할 만한 멘토에게 받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면서 세 번의 피드백을 받았다. 피드백도 많이 받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좋은 피드백을 세 번 정도만 받는 것이 좋다.


(사실 나는 조언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이 있다. 조언은 3번만 받는다는 것ㅋㅋㅋ 이전에 아래 글에 써놓았는데 아직도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실제 현업에서 PO/PM으로 경험이 많으시고, 내가 해당 커리어 멘토로 생각되는 세 분에게 포트폴리오를 차례로 보여드리고 코멘트를 받았다. 코멘트를 받고, 그걸 반영하며 고치는 작업도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마지막 세 번째 멘토님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는 너무 좋은 포트폴리오인 것 같다고 포트폴리오 멘토링에 샘플로 써도 되겠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감동ㅠ눙물ㅠ)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직 구직 중이고 이 포트폴리오로 좋은 결과가 생길지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시점에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피드백을 받으며 포트폴리오에 공을 들여 작성하면 서류 불합격이 오더라도 내가 이력서와 포폴을 잘 못써서 떨어진 건 아니라는 확신이 생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포트폴리오를 통해 회사에 잘 전달이 되었으나 그 회사와 단지 fit이 맞지 않아 그럴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겠으나, 이건 구직자에게 굉장한 장점이다. 거절의 경험이 많을 구직자의 멘탈 건강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ㅋㅋㅋ 포트폴리오에 안심이 생기면 서류 불합으로 떨어져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아~ fit이 안 맞는 회사에 가지 않게 되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

이런 불합격 메일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이 생기게 된다...




자신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은 정말 머리채를 쥐어잡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이직을 떠나서도 나 스스로에게 정말 유익하다. 삶은 어차피 주관이다. '나 짱이야!'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말을 남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결과물로 만들어본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존감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는 구직 과정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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