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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Aug 10. 2022

안녕히 계신가요, 당신

 싸이월드 계정을 복구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어떤 사진을 포스팅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얼핏 떠오르는 건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트릭아트에서 찍었던 사진들 정도. 복구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1정 연수를 듣는 중 돌연 떠올라 싸이월드에 접속해 보았다.

 미니홈피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시절의 사진들이 있었다. 20살 때 갔던 교회 수련회 사진부터 찬찬히 보며 '미쳤다'만 반복했다. 학창 시절 폴더로 넘어가니 사진이 몇 장 없었던 걸로 보아 내가 20살 때 잠시 기록용으로 포스팅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몇 없는 사진들을 시간순으로 감상하고 있는데 고2 폴더에서 잊고 있었던 선생님을 보았다.

 김성삼 선생님은 은사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신다. 그러니까 잊고 있었다는 건 그분의 존재가 아니라 얼굴, 체형 같은 외형이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셨다. 어느 정도 익숙했던 내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신 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같은 분. 자신에 찬 모습. 당당함. 왜소하지만 커 보이는 분이셨다. 기억하기로는 경영을 전공하셨지만 영어 교과 담당이셨다. 경영하면 투자자가 떠오르고 투자자 하면 'high risk high return' 같은 구절이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선생님도 그런 대담한 사람이겠거니 했던 거 같기도 하다.

 선생님과 대면하게 될 수 있었던 건 반장의 도움이 컸다. 성적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반장이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 나도 오르지 않는 성적을 비관하며 냉소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반장이 상담을 제안했고 반장을 통해 선생님과 얘기하게 된 나는 선생님의 아지트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됐다. 건물 자체가 음산하고 칙칙했었기 때문에 그 아지트란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나 기계가 가득할 거 같은, 그런 기기들을 연결하는 선들이 정신 산만하게 꼬여 있을 거 같은 그런 색감과 느낌의 방이었다. 그 차갑고 칙칙한 곳에 앉아 내 얘기를 묵묵히 듣던 선생님이 전문적인 상담 기술을 익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던 거 같긴 하다. 마치 내 상태를 진단하는 의사 같은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내 상태가 '슬럼프'라는 단어로 정의된 게 처음이라 의학적이라고 느낀 게 아닐까.

 슬럼프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시더니 빳빳한 신문지 종이를 한 장 꺼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야자 조퇴증이었다. 당시에 야간 자율학습 조퇴라는 건 획기적인 일이었다. 관리자가 선생님의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였으며 담임 선생님들끼리 자존심 경쟁이 붙는 분야였다. 선생님은 내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셨다. 일주일 동안 공부 외에 다른 것들을 하며 쉬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단, 휴대폰이나 인터넷, 티브이 시청보다는 만화책을 읽거나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라고 하셨다. 아마 중독을 걱정하셨던 거 같다. 조퇴 사유는 성장통. 종이 끝자락에 '방황이 끝날 때까지'라는 말까지 적어 주셨다. 내 기억으로 나는 딱 일주일만 쉰 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제는 공부도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을 때 조퇴증을 편지함에 넣었다.

 그러나 방황의 끝자락에서 나는 일탈을 일삼았고 모범생 그 자체였던 내게 일탈이란, 야자 때 놀기, 야자 째기 정도였다. 야자 때 신나게 마피아를 했는데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발바닥을 맞은 기억. 반장 생일 때 야자를 짼 뒤에 걸려 엉덩이를 맞은 기억. 전부 나에겐 처음 있었던 일이다.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여전히 답답한 일상들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김성삼 선생님이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결코 만만하지도 수용적이지도 않은 분이셨다. 다만, 선생님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일관되게 대해주셨다. 난 거기서 안심할 수 있었다. 굳이 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며 날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후에 나는 다소 융통성이 생긴, 완벽함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고3 때는 야자를 째는 게 일상이 될 정도였으니까.

 왠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선생님의 조퇴증이 떠올라 꺼내보았다. 종이가 바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잉크가 묻은 주변도 노랗게 변색되면서 이제는 곧 찢어질 거 같은 상태였다. 그러나 기억 속의 선생님은 퇴색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밝고 고운 빛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진정 남는 건 사진 같은 게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그러니까 내가 써야 하는 것도 글 같은 게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선생님, 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릴 법한데 겸연쩍을 첫인사가 두려워 수소문도 못해보고 있습니다. 그럴 친구도 없지만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당신께서 주신 종이 한 장을 여태껏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당신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무턱대고 찾아갈 수 없었던 건 당신의 자리가 거기에 없을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꼭 정직한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나 봅니다. 아니, 그것보단 당신의 빈자리를 보면 당신을 지키지 못한 나의 무력함을 직시하게 될까 두려웠던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찾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당신을 추억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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