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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27. 2022

포도밭 그 사나이

 추풍령에 처음 오게 된 건 할아버지 병간호 때문이었으나 6살 어린이의 기억 속에는 할아버지 대신에 2가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하나는 동네 형 누나들과 뒷산을 누비고 포대 썰매를 타는, 아직도 생생한 그림이고 하나는 포도 혐오다.


 어린 나이부터 포도밭에 투입돼 허드렛일을 했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무성한 풀이 문제였다. 포도밭을 가려면 숲길을 지나야 했는데 조금만 사람 손이 타지 않아도 오솔길을 따라 수풀이 우거졌다. 당시 어린아이의 허리까지 오는 잡초들 속에는 다양한 벌레가 살았고  나는 벌레가 내 몸을 허락도 없이 기어오르는 게 싫었다. 간질간질한 감촉이 느껴질 때면 이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지랄발광을 떨었다. 어린아이 고사리 손이라도 아쉬운 게 밭일이라 5-7월에는 종종 밭으로 호출당했는데 갈 때마다 KTX에 빙의해 질주했다.


 포도 수확 후에는 포도, 포도 액기스가  사방 천지에 깔려 있어서 맹세코 평생 먹을 포도는 그때  먹었던  같다. 그때부터 포도 혐오가 시작됐다. 짜장면집 아들이 짜장면  먹는 거와 유사한 맥락이다.


 우리가 경작하고 있는 작물은 샤인 머스켓, 거봉, 자두다. 애당초 아버지께서 귀향을 하실 때도 포도 품종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한 거라 자두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 며칠 전부터 자두를 수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는 오, 잘됐다 하고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는데 오늘 자두를 수확할 때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크고 딱딱한 씨도 별로지만 복불복이 너무 심해 즐겨먹는 과일이 아닌데도 빨갛게 영근 과실과 마주하고 있자니 뿌듯했다. 비료 주던 날, 알 솎던 날, 도장지 꺾던 날은 잊은 지 오래다. 눈에 보이는 건 빨간 그러나 부옇게 당분이 묻은 자두뿐.

 '열매를 딴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막 딴 자두 한 알을 통째 입에 넣었다. 아주 알맞게 익어 탱글탱글 뽀드득거렸고 과육에서 흐르는 달달한 과즙이 혀에 닿아 특유의 향을 입안 가득 채웠다.

 자두밭/포도밭 아들이 이제 와서 자두와 포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즐거운 참여가 핵심이다. 어릴 땐 고작 한다는 게 나무 그루 세고, 줍고, 앗아 드리는 정도였으니 뭘 했다고 하기에 염치가 없을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도살장 끌려오듯 온 날도 적지 않았지만 섬긴다는 마음으로 일한 순간부터 애정이 생겼다. 어차피 와야 한다면 '그래, 난 갚으러 가는 거야' 같은 마음가짐으로 노동에 참여해야 속 사람도 군말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첫 열매와 마주했다. 땅에서 나는 것은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없었고, 땀을 흘린다는 건 희생을 기쁨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축복이었다. 기쁨으로 참여하면 선악과가 동산에 있었다는 사실도 감사할 따름이다.


 보람차다는 것. 성과가 좋다는 것. 성취감에 젖는다는 건 아무나 느끼는 게 아니었다. 시간, 노력,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보람 찰 수는 있다. 상품성이 있는 자두는 아니지만 공들인 것에 비해 너무 잘 자라줘서 철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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