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를 읽고
교사와 관련된 말 중 당황스러웠던 말, 인상 깊었던 말이 각각 하나씩 있다. '가장 훌륭한 교재는 교사'라며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실습 멘토가 말했는데 당시에는 가슴이 뜨거워졌으나 현장에 발을 들이고 나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동기유발에 동영상을 쓰기보다 교사 자신을 잘 활용하라는 멘토 선생님의 말씀. 아마 그해 공개수업 때 나는 클래식에 맞춰 부채춤을 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철판 깔고 잘하던 교사-교재화를 부끄러울 게 없는 나이인 지금에 와선 엄두도 못 내는 처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음가짐뿐. 수많은 페르소나 중 근엄이라는 가면을 끼고 학생들과 대면하다 보니 친구들에게나 보여줄 법한 행동들이 쉽사리 취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뚱한 표정으로 앉아서 수업만 듣게 하기는 싫어 재밌는 게임을 많이 준비한다.
어느 해 학생들은 어떤 게임을 가져와도 시큰둥했다. 즐거워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내적 즐거움을 표출하지 않는 성향이라 어색한 침묵만이 교실을 맴돌았다. 또 어느 해는 무슨 게임을 해도 즐거워했다. 덕분에 나도 함께 웃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유독 싸움이 잦다. 남 탓, 사기를 꺾는 말들, 무절제함 등은 협동심 부족이 주된 소이였다.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를 읽고 학생들과 무엇을 얘기해 볼까 고민하다 경쟁 중 발생하는 잦은 싸움과 관련해 '협동'이라는 가치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이 차오르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다 같이 하기'를 제시한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동기 유발로 팀 스포츠 사진을 몇 장 보여주고 공통점을 찾게 한 뒤 팀 스포츠 시 무엇이 중요한지 말해보게 하며 '협동'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했다. 동화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표지 다음에 나오는 검은 선과 갸우뚱하는 원숭이 그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마지막 장에서 잘 확인해 보자고 당부했다. 동화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건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말을 책에서 읽고 이번 동화책을 낭독할 땐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만 도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물었다. 완독 후 모둠끼리 의논하여 가치 사전에 들어갈 협동의 의미를 한 가지씩 정하게 했는데, 우리 반에선 협동이란 '우리 반 학생들이 선생님께 피구를 하게 해달라고 다 같이 한마음 한 뜻으로 조르는 것이다'로 정해졌다. 곧이어 협동하며 몸 쓰는 게임 몇 가지를 덧붙였다. 아무래도 시간제한을 두고 과업을 함께 해결하게 하는 활동들이 협동을 강조하기 무난해서 둥글게 손을 잡고 훌라후프 통과하기, 풍선 떨어뜨리지 않고 한 바퀴 돌렸다.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순 없는 노릇인지 여전히 큰소리가 오가기도 하고 열을 내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협동'을 외치니 학생들이 서로 조심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는 어른 하기 나름인 게 분명하다. 이 작은 수업 하나로 분위기가 한층 화목해져서 뿌듯했다.
활동을 시키고 사진을 찍는 여유도 있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바쁘고 정신없었는지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장면을 하나도 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부턴 재밌는 활동을 할 땐 반드시 사진을 찍겠다고 재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