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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21. 2022

Treat yourself well

'머리숱 많은 아이'를 읽고

 우리 반 이름은 TYCO다. 게시판 꾸미기를 해마다 새롭게 하지 않으려면 반 이름이 같아야 할 거 같아 군 제대 후 한참을 고민해 만들었다. TYCO는 Treat your self well, Cherish others에서 앞글자만 따서 만든 단어다. 아이스크림 이름이기도 하고 자동차 이름이기도 해서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사람이길, 자동차처럼 유명해지길 바란다는 뜻도 담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영어 문장은 스티브 잡스의 유언장 마지막 문장이다.


 처음에는 나의 학창시절에 정말 필요했던 말이니 우리 반 학생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소중히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이고 교훈적이라고.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사춘기를 맞이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성장이 더딘 남학생의 경우 자신을 과하게 사랑하는 게 문제의 시발점이기도 하니 말이다. 분명 입대 전 6학년은 폭풍 같았던, 선생님이 틴트를 뺏었다는 이유로 욕을 했던 거 같은데 웬일인지 2년 만에 순해진 학생들은 앳된 티를 벗지 못했다.


 '머리숱 많은 아이'에서 주인공 잔디가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건 다 이상하다고. 사슴벌레의 뿔, 나비의 생김새 등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 자세히 보면 다 이상한 거라고. 그 한마디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거니와 학생들과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아 '칭찬'을 학습 목표로 삼고 수업을 준비했다. 중학생이었다면 'Treat yourself well'에 치중하며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수업을 계획했을 테지만 올해는 서로 칭찬해주는 롤링 페이퍼를 적게 해  '교우 관계 개선'에 조금 더 중점을 두었다.


 동기 유발로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친구였을 거 같은지, 어떤 성격의 친구를 좋아하는지 얘기를 해보고 동화책 표지를 보며 제목을 추측했다. 동화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잡담을 조금 나누다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아이들을 우리 반 아이들과 대조해 보았다. 이 동화책에서 '이상하다'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발표하고 이것을 '개성'과 연결한 후 각 친구들의 개성을 칭찬할 수 있게 했다. 학습지를 나눠주어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학습지에 이름이 적힌 친구에 대한 칭찬을 써주고, 자신의 학습지가 돌아오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칭찬을 골라 발표하게 했다. 친구들이 써준 칭찬을 바탕으로 자신의 롤링 페이퍼를 간단하게 꾸미고 남은 한 시간 동안 우리 반 명렬표를 보며 모든 친구들 롤링 페이퍼에 칭찬을 쓰게 했다.


 활동을 하며 지켜보니 굉장히 열심인 학생도 있었지만 어리둥절한 말들을 쓴 학생도 있었고 모두에게 똑같은 말을 쓴 학생도 있었다. '듣기 좋은 말'만 써라고 많이 강조했더니 '선생님 ㅇㅇ이가 이상한 거 썼어요' 하며 울상이 되는 학생이 없었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마무리했다고 자평한다.


 동화책 수업 2회 차에서 느꼈던 건 스캔 어플이 그림을 잘 인식하지 못해 그림이 깨끗하게 스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동화책은 펼쳐진 두 페이지의 그림이 이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PDF로 전송하게 되면 꼭 한 페이지만 인식돼 불편하다. 올해는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바쁘니 내년에는 꼭 다시 캡처해 책처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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