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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20. 2022

그저 웃지요

 SNS에 선생님들 닉네임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초등교사의 블라인드 겸 자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플랫폼 내 닉네임이라는 걸 왼편에 보이는 익숙한 아이콘을 보고 알아챘다. 눈에 익은 닉네임도 보이고 더 재밌는 것들도 많다고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수업을 끝내고 다음 주 수업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플랫폼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다 어제 봤던 게시글이 떠올라 게시판에 들러 재미있는 닉네임을 찾아봤다. 실소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역시나 공감이었다. 내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문장이나 단어들이 인상적이었다.


1. 선생님딱한번만말할거야 / 선생님이몇번이야기했니 / 선생님세번말했다

 중요한 걸 얘기하기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집중시켜야 한다. 집중 신호로 여러 번 시선을 모아도 방심해선 안 된다. 눈이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며 공상에 빠진 학생들은 이름을 불러야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집중시킨 뒤 활동 내용을 설명하거나 준비물, 현장체험학습 날짜 등 중요한 걸 안내해줘도 못 듣는 불상사가 꼭 발생한다. 예외는 없다. 더 답답한 건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듣지 못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개관 순시를 시작한 뒤에야 발견당한다. 주변 친구들에게라도 좀 물어보면 좋겠는데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앉아서 손 놓고 있다. 그럼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옆에 앉아 설명해주거나 그냥 간단히 짝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도 제발 한 번만 말하고 싶다.

 아, 또 한 가지. 교과서 페이지는 절대 한 번만 말할 수 없다. 국어 35쪽을 펴라고 하면 80% 정도가 편다. 남은 10%는 수업 중에 대뜸 질문해버린다. 한창 수업 중인데 학생 한 명이 불쑥 선생님 몇 쪽이에요 하고 묻는다. 친구 봐 하고 만다. 그렇게 수업이 진행 중인데 한 두 명이 똑같은 질문을 더 한다. 그러다 개관 순시를 하고 있으면 책을 펼쳐 놓지도 않은 학생들이 간간이 보인다. 이를 악물고,

 "35쪽이라고."


2. 다했어요안해도돼

 고학년보단 저학년 교실에서 매시간 반복되는 말이다. 남들보다 일찍 끝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거나 선생님의 칭찬이나 관심이 듣고 싶은 학생 혹은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학생들의 뻔한 레퍼토리다. 비슷한 맥락으로 시험 점수를 자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건 양반이다. 자랑에서 그치지 않고 친구를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난 그런 경우에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외의 경우에는 다른 일을 주고 만다. 괜히 얄미워 보이긴 해도 내 감정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다.


3. 시간더필요한사람손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반에 있으면 가장 곤란한 게 학업 능력 차이다. 특히 수학은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 곤란할 때가 많다. 몇 명은 나누기나 곱하기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누구는 중학생 수학을 푸는 경우도 있으니 어떤 집단이든 수학 시간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미술도 작업 시간이 제각각이라 두부 자르듯 수업의 맥을 끊기가 힘들다. 남학생은 대게 한 시간 반 만에 휘리릭 휘갈기곤 쉰다. 소수의 여학생은 두 시간 반이 필요하다. 충분히 시간을 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숙제로 돌리고 만다. 신기하게도 남은 건 내일 아침에 하라거나 점심시간에 하라고 하면 5분 만에 대충 해버리고 제출한다는 사실. 게시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4. 왜싫다는데계속하니

 성격상 어렸을 때부터 도를 넘는 장난을 치지 못했다. 이상하게 장난 치는 친구들도 나를 참 어려워했다. 비법은 무반응이었던 거 같다. 차가운 표정이었거나. 흔히들 하는 놀리고 도망치기도 서로 기분 좋을 정도로 하고 말았지 그걸로 싸움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 기억이 불완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교실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고자질에서부터 큰 싸움까지, 멈추지 못하는 학생과 재밌게 반응하는 학생들 간 생기는 갈등이 대부분이다. 몇몇 남학생이 이 조절을 잘 못한다. 아무리 말하고 가르쳐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자신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고 숙고하게 하는 눈치는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의지의 차이 같기도 하고.


5. 지금입이필요하니 / 누가입으로청소하니 -> 목아프니까조용히하자

 시끄러운 게 아이들이겠거니와 용납해주고 넘어가려고 해도 수업이 연달아 있는 날에는 목이 터질 거 같아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초등학교 수업은 교사가 말을 적게하는 게 맞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은 다양한 활동이 많은 수업이고 그런 수업은 교사가 몇 가지 안내만 하고 개별적으로 지도해야 하니 말 수가 확 준다. 그래서 온라인 학습이 싫은 게 수업 시간 내내 교사가 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음과 관련해 고학년의 경우 편리한 게 있다면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서 있어도 알아서 조용해진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누군아빠없나 / 엄마학교가기싫어 / 저요라고하는사람안시켜줌 / 선생님혼자쉬고싶어 / 수업과관련있는말만하세요 / 누가복도에서뛰냐 가 있다. 분명 SNS에서 보고 플랫폼에서 살펴볼 땐 재밌었는데 쓰는 과정도 그랬고 결과물도 재미가 없다. 그게 내 재능인 거 같다. 타고나길 진지해서 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써 놓은 듯 불편하다. 닉네임은 닉네임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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