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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08. 2022

Mr. 우 스시

 6학년 1학기 국어 7단원. 우리말을 가꾸어요 단원을 공부하다 보면 동네에 간판을 찍어와 우리말로 바꿔보는 활동이 있다. 숙제를 잘 안 내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온라인 학습을 하고 있었기에 과제 제시가 필수였다.

 '우리 동네에 있는 간판 중 외래어, 외국어를 사용한 간판을 찍어 댓글로 사진 올려주세요.'


 온라인 학습의 가장 큰 단점은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 교사가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연락을 취하면 대부분 게임 중이거나 티브이를 보고 있다고 얘기한다. 과제 별거 없으니까 지금 바로 하고 하던 거 마저 하라고 친절하고 예쁘게 말하면 아주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대꾸. 똑같은 전화만 대여섯 명에게 돌리는 게 일상이었고, 세네 번은 전화해서 애걸복걸해야 과제를 제출했다. 그것도 매번 안 내는 학생이 안 낸다. 집에서 뭘 하는지 정말.


 다음 날, 당시 우리 학교는 격일로 등교하는 시스템이었다. 온라인에 업로드한 숙제를 화면으로 함께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직접 가서 찍은 게 아니라 네이버 지도 앱 거리뷰로 사진을 캡처했는데 유독 한 학생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Mr. 우 스시'

 "이거 누가 찍은 거야?"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직접 가서 찍은 거 같다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고 간판의 이름을 바꾸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왜 M.r 우 스시라고 했을까? 그냥 우 씨 초밥집도 되잖아 그렇지?"

 그때, 학생들이 쿡쿡대며 웃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말 잘못한 거 있냐고 물으니 한 학생이 얘기했다.

 "그거 얘네 집(사진 찍어 온 학생) 아빠 가게예요."

 아뿔싸.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그 여학생도 재미있는지 웃고 있었다. 재빨리 말을 바꿨다.

 "얘들아,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간판은 선생님 본 적이 없다."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더니 수업 분위기가 금세 활기차 졌다. '탈룰라'의 좋은 예시를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다니. 아무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건 간판을 보며 맹렬히 비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고 지루하게 말하는 태도, 어떻게 보면 단점이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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