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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25. 2022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태풍 힌남노가 포항과 울산에 미친 영향을 비추어 볼 때 떠들썩했던 경고가 무용지물은 아니었다. 부산은 태풍 대비에 만발을 다했었던 건지 수해를 입은 지역이 다행히 없었고, 볕 아래에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던 게 무안할 정도였다. 화요일은 체육 전담 수업이 있는 날인데 전담 선생님끼리 결정하시길 등교 수업 때 빠진만큼 보충하겠다고 했다. 그게 오늘이었다.


 3교시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체육 수업 어디서 하는지 물어보고 오라고 했더니 야유가 빗발쳤다. 나는 잔뜩 의아해 하며 이유를 물었더니 나와 체육 수업을 하고 싶었단다. 체육 선생님은 체육 시간에 교과서로 수업을 해서 자신들이 기대했던 체육 활동을 못한다며 잔뜩 화가 나 보였다. 사정을 듣고 보니 딱하기도 하고. 그냥 내가 수업할까 하다가 환절기라 비염이 심해진 탓에 두통도 심하고 코 주변이 하도 따가워서 전담실에 보냈더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체육 선생님은 남자 신규 선생님이신데 정식 발령 전에 기간제로 일하고 계신다. 그의 첫 등장은 난리법석이었다. 뽀얀 피부와 선한 눈망울, 시원시원한 코와 입 그리고 날렵한 턱선. 키도 훤칠하고 늘씬하신 게 영락없이 꽃미남이어서 뭇 여학생의 사랑을 독차지했었고 남자 선생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학생들의 관심도 한몸에 받으셨다. 그의 친절한 말투와 사근사근한 태도는 학생들이 그를 잘 따르게 만들었다.


 그런 선생님이 하는 수업이니 당연히 학생들도 체육 보충에 열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동회 준비로 많이 바쁘신 거 같으니 우리가 이해하자며 다독이기라도 할 걸. 당황스러운 반응에 영 꺼림칙하게 대응한 거 같아 체육 선생님에게도 마음이 안 좋다.


 내 탓도 전혀 없을 순 없는 게 2학기 시작과 동시에 현장체험학습과 다양한 행사들이 겹쳐 진도를 제대로 빼지 못했고 게임이나 체육은 처다도 볼 시간 없이 공부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름 방학 막바지에 코로나에 걸렸던 게 치명적이었다. 힐링은 고사하고 피로 회복 조차 제대로 못한 채 방학이 끝나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활력이 없어 수업에 재미가 없다.


 별로 잘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공부나 체육이 다 똑같은데 어찌나 체육에만 환장을 하는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애당초 수업에는 전혀 집중할 생각이 없는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나 해찰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걸 알까. 분수의 나눗셈은 고사하고 평범한 나눗셈이나 글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나만 애타고 나만 안타까운 건지. 아니다,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나도 그저 검은 글자와 숫자만 보면 잠이 쏟아지던 때가 엊그제인데. 여전히 진도는 세월아 네월아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뛰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니 날 좋은 때 운동장이라도 나가서 마음껏 뛰게하고 게임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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