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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02. 2022

아무렴 수업보다는 낫지

 국어 교과서  지문은 내가 봐도 지루할 때가 많다. 학습 목표 달성이 수업의 목적이라면 이런 제재글로 학생의 흥미를 어떻게 끌어라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관용 표현을 배우는 단원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서 낫다. 5-6학년이 되면  눈치 보느라 네, 아니오 외에는 제대로 말도 못 하니 말하기 차시도 매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6학년 사회 2학기 2단원은 정말 최악이다. 도덕 4-6단원과 내용이 겹칠 뿐만 아니라 평생토록 들어왔을 내용들을 끈질기게 다룬다. 수학은 일찌감치 포기했던 학생들이 있어 학습 능력 격차가 심해 난이도 조절이 어렵고 그나마 과학은 실험이 있어 양호하다. 수업은 재미없다. 그걸 재미없어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는 나도 괴롭다. 마냥 뛰어놀라고 얘기해주고 싶지만 해야 할 건 해야 한다.

 2학기가 되니 연휴도 연달아 끼어 있고 행사나 현장체험학습도 군데군데 있어 수업할 시간이 없었다. 진도가 한참 늦어지는 바람에 평소에 재밌게 할 수 있는 수업들도 책장 넘기기 바쁘게 흘러가 더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하루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국립과학관에 가는 날이 왔다. 버스가 학급 수보다 하나 작게 와 우리 반이 둘로 찢어지게 됐는데도 아무렴 수업보다는 낫지.

 당일, 운동장에 모여 떠들썩 대는 학생들의 상기된 얼굴과 들뜬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가도 버스에 타자마자 이어폰을 꽂고 조용해지는 걸 보면 우리와 상이한 문화를 공유할 새로운 세대를 마주하게 돼 낯설다. 그래도 덕분에 안전벨트로 실랑이할 일이 없어 좋다. 제법 가을 티가 나는 아침이라 버스에서 내리니 쌀쌀했다. 입구에 위치한 놀이터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는데 집라인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와본 적 있는 곳이라며 너도나도 추억 얘기에 빠져있었다. 나중에 놀이터에서 놀자는 얘기도 오고 갔다.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에도 학생들은 놀이터를 사용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풀어놓지 못하는  미안하지만 초등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어슬렁거리다 보니 걱정이 앞섰다. 사실 나도 슬쩍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채신이 있지 학생들은 떼어 놓고 혼자 타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못내 아쉬웠다.

 입이 대빨 나온 학생들의 성난 여론을 잠재우고 오후에 예정된 메이킹 수업을 들으러 학생들을 올려 보냈다. 선생님들은 잠시 시간이 나서 우리끼리 잠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왔더니 웬걸, 집라인이 비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들을 꼬드겨 당장 타러 가자고 보챘고 다행히 다들 긍정적이었다.

 크기가 보잘것없어 여러   만한 기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는 재미있었던  같다. 옆에서 같이 타던 이름 모를 학생보다  신난 우리 셋은 각자 한 번씩 타보곤 약간 민망해하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교실로 돌아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옅은 한숨이 나왔다. , 선생님도 놀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나는 수업하는  유독 부담스러워해  그렇다. 모두가 똑같지는 않지만 수업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베테랑이거나 수업에 중점을 두지 않는 교사인  같다. 나에게 있어 수업은 준비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고 손이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6학년을 오래  익숙하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운동회에 수학여행도 가고 10월까지는 정신없이 바쁘겠지만 수업을  하는 날이 많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10월에 행사가 몰려 있는 탓에 체력적인 한계를 맞닥뜨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아무렴 수업보다는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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