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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02. 2022

겨울이 오기 전에

 여러 명이 옹기종기  교실에 모여 있으면 여름에는 에어컨이 소용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환기가 중요해 창문을 열고 있으니   것보단 시원하지만 땀이 삐질삐질 난다. 겨울애써 모은 탁한 온기가 아쉬운  아니라 매시간 창문을  행위 자체가 고배다.  하교 후에 히터에만 의존하여 교실을 데운다는  여간 눈이 뻑뻑해지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무릎 아래는 따뜻하지도 않아 발가락이   같다.

 학교를 어떻게 지은 건지 해가 들지 않아 여름에는 괜찮은데 겨울에는 밖보다 더 춥다. 그러면 운동장에 나가자는 소리가 쏙 들어가는데 왠지 올해는 나가자고 보챌 것 같은 기분이다. 학교에 강당이 없으니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체육 활동하기가 열없다. 하긴, 강당이 있어도 학생이 많으면 실제 강당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될 때가 많다. 나는 어떤 날씨에도 어디서나 잘 놀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여름이나 겨울에 운동장을 나갔다 하면 그 좋은 체육도 마다하고 들어가자고 난리다. 혹시 감기에 걸려 민원 전화라도 들어오면 속 시끄러울까 마음 놓고 수업하기도 힘들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아직 오후에는 볕이 따가워 그늘에만 있으려고 하지만 질리도록 나가 둬야겠다. 마침 미술 작품을 만들고 야외에서 사진 찍는 수업이 있길래 이거다 싶어 저장해 뒀었는데 단풍이 생각보다 늦게 들어 기다림이 길다. 결국 미리 맞이하는 단풍이라며 억지를 부리수업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구름   없이 맑은 날이었고 양지는 여전히 뜨거워 구시렁대면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그 표정은 흡족스러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커지고 후덕해져 아이들을 정글짐으로 불렀다.

 "사진 찍자! 정글짐 주변에 서봐."

 난 꼭 정글짐에 올라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합의라도 본 양 모두 정글짐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나를 보고 있었다. 철이라 뜨거운지 연신 앗 뜨거 소리가 들리고 빨리 찍어달라는 불만이 폭주했다. 나는 그 모습도 웃기지만 말과는 다르게 표정은 어딘가 가볍고 웃음이 배어 있어 괜히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찍고 보니 4월에는 어물쩡거리며 단체 사진에 찍히기 싫어하던 아이가 아이들 틈에 섞여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느덧 2학기가 시작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방학 사이에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들끼리 자주 만나 놀기도 했던 모양이다. 전학 와서 적응이 힘들어 보이던 학생이었는데 오늘도 냉소적이긴 했지만 이제는 우리 반인 게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여학생들끼리의 불화도 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치부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땐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감정의 소용돌이, 사춘기였다. 문득 이 모든 풍경이 너무나 생기 넘쳐 보였다. 입체적인 인물이 흥미롭고 반전 있는 스토리가 재미있듯 올해가 그렇다. 정작 그 인물들을 견뎌내야 하고 스토리 속에 산다는 건 꽤 힘들지만 이상하게 평안하다.

 정말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날에는 나와서 걷기도 하고 떠들기도 해야겠다. 작은 일에 분개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박장대소하기도 했던 날들. 얘는 나랑만 친했으면 좋겠고, 뭐든 시키는  짜증 나고, 가족보단 친구가 우선이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늘이 높아지며 마음의 부피가 여유로워진  그만큼만의 기억이 떠올랐을 뿐인데도 간질간질한  오두방정을 떨고 싶다.  정상에 오른  '야호'하고 소리 지르고 싶기도.

 그러나 이내 종이 치더니 늘어지게 하품이 쩌억 나왔다.

 "올라가자!"

 남학생들은 달리지 못해 안달 난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우당탕탕 달려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고 여학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꺄르르거리며 올 생각이 영 없어 보였다.

 "빨리 와.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가게."

 "감사합니다~ 아싸~ 선생님 최고예요~ 너무 멋있어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총총 달려오는데 나는 이제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부도 아닌 것이 비아냥대는 건 더 아니고 기분을 좋게 만들기만 하는 과장된 감사 표현. 그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변명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거겠지. 아니면 내가 너무 무겁게 사는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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