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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08. 2022

그때와 지금

 10월에 행사가 몰려 정신이 없다. 오늘 한마음 체육대회를 필두로 수학여행에 찾아오는 수업까지 그야말로 혼돈이다. 이럴 때일수록 옆 반 선생님들과 상부상조하며 도와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계속 숟가락만 얹고 있어 마음이 영 불편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 아침에 확인한 목요일 날씨가 '소나기'였는데 오전 8시가 돼도 가는 빗줄기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는 맞으면서 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교감 교장 선생님의 결정으로 개회식 시간을 2시간 연기했다. 부랴부랴 1-3교시를 준비하며 구시렁되고 있으니 마치는 시간도 3시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학년이야 30분 정도 더 했다 치더라도 저학년은 어쩌나 싶었다.

 3교시 종소리에 맞춰 점심이 나왔는데 40분 안에 나가야 하는 입장이라 후루룩 마시듯 해치웠다. 3교시 중간쯤부터 울려 퍼지는 빠른 비트의 노래들을 조용히 흥얼거리며 양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반이 거의 1등이었다. 잠시 앉혀 두고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덩달아 근뎅거렸다. 신나서 엉덩이라도 흔들고 싶었지만 채신이 있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마음을 흥에 내맡긴 채 내적 춤사위를 즐기고 있으니 자연스레 5학년 때 체육대회가 떠올랐다.

 담임 선생님 성함은 '이기자'와 발음이 비슷했다. 체육대회 흔한 구호로 사용하는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외치며 장난스레 선생님 성함을 넣어 소리 질렀다. 싫어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왠지 모를 쾌감에 젖어 너나 할 거 없이 큰소리를 외쳐댔다. 담임 선생님의 이름에 영험한 힘이라도 있었던 걸까. 기마전 대장이었던 나는 연습할 때도 그랬고 당일에도 반전 없이 상대 대장의 머리띠를 낚아챘다. 그 역동스런 운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게임이다. 모든 공기관이 민원에 민감해진 탓에 학교도 안전, 청렴, 학교 폭력 관련 사안에서는 얄짤없이 FM이 됐다. 그래야 하는 게 마땅하나 대의를 위해 잃게 된 소소한 추억들이 아쉽기는 하다.

 요즘 체육대회는 지난날 우리가 즐겼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학교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아마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1. 운영 업체의 등장

 놀토가 등장하고 토요일이 휴일이 됐던 순간 학교도 많은 게 바뀌었다. 가르쳐야 하는 건 줄어들지 않고 쉬는 날만 증가하니 190일 남짓을 정말 꽉꽉 살아내야 한다. 체육대회까지 진행할 여력이 없어 탄생하게 된 게 체육대회 행사 대행업체다. 진행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외 모든 준비를 알아서 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이다. 우린 그저 줄만 몇 번 서보고 입퇴장만 연습하면 된다. 6학년이라 부수적으로 준비할 게 좀 있었으나 할 만했다.

 당일에도 학부모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진행자의 말솜씨에 박장대소하며 즐겼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정리 운동도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식으로 진행해 딱딱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주변 선생님들도 역시 업체에 맞기는 게 훨씬 낫다며 만족해 했다.


2. 점심은 급식입니다

 내 기억 속 운동회는 하루 종일 공부하지 않고 운동만 하는 날이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돗자리 위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보호자가 참석하지 못한 경우 다른 집 돗자리에 몇몇 친구들이 얹혀 먹기도 했다. 다른 친구네 집에는 어떤 걸 싸왔는지 괜히 기웃거리며 확인도 해보고 군침도 흘리고 얻어먹는 과정이 운동회의 또 다른 재미였다.

 요즘은 급식을 먹는다. 그리고 오래 하지 않는다. 본래 계획하기로는 12시 10분에 폐회식을 하고 5-6교시 수업이 있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2년 동안 체육대회를 해본 적도 없을 텐데 우리와 비교하면 약식이라 조금 아쉬웠다.


3. 줄다리기와 계주는 언제나 흥미진진

 체육대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줄다리기와 계주는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진행자가 점수판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점수 차가 많이 나지 않게 배점했던 터라 줄다리기에서 엎치락뒤치락했고 저학년 계주 고학년 계주가 마지막 승부처가 될 예정이었다.

 저학년에서는 바통을 놓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됐는데 유독 청팀만 연달아 실수를 해 백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긴장되는 고학년 계주. 5-6학년 남학생들은 성인 못지않게 재빨랐는데 우리 반 학생들 사진을 찍느라 경기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마지막 주자가 달리는 걸 보고 있으니 청팀이 월등한 격차로 승리할 게 뻔했지만.

 까불이 우리 반이 청/백 두 팀으로 나뉘기도 했거니와 부모님들이 오셔서 사뭇 경직된 건지 운동회 동안에 나 혼자 신나 손뼉 치고 춤추고 난리 부르스였던 것 같다. 그래도 청백으로 나뉘어 뜨겁게 경쟁하고 달아오르는 학생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으며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에너지를 얻은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10월의 시작을 알리는 체육대회가 끝났다. 남은 수학여행까지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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