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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18. 2022

Control freak

 이번 학년도는 양극화가 심하다. 학력 수준에서부터 생활 습관까지, 순한 학생들은 순하고 말괄량이들은 에너지가 과다하다. 사춘기 직전인 학생도 있고 한참 어린 학생도 있다. 그중 눈에 띄는 학생 네 명이 있다. 모든 양극화 지표에서 '나를 매우 힘들게 함'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이름도 자주 불리고 눈초리도 자주 받는다.

 자기들도 그게 익숙할 테지만 조금만 뭐라 하려 치면 굉장히 억울해한다. 그렇다고 바뀌는 게 있는 건 아니다. 자리에 앉아라거나 써라거나 때리지 말라고 얘기하면 시늉만 하다 금세 반복하고 만다. 1학기 땐 불러다 따끔하게 얘기하면 울기도 곧잘 울더니 2학기에는 아예 듣지도 않고 오히려 큰 소리로 '아 알았다고요' 할 때가 있어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현장체험학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장난이 심하길래 좀 퉁명스럽게 얘기했더니 반항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으로 참아 주는 거라며 세 번째 손가락까지 접곤 돌아 앉았다. 잔뜩 벼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감정이 어디 한 구석에 쌓아 뒀던 터라 정말 한 번만 더 건드리면 터지기 직전이었는데 다음 날 일이 터졌다. 아무렇지 않은, 해맑은 얼굴로 곁에 와 나를 도와주는 넷. 그래, 이런 애들이었지.

 언제나 문제는 나였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잔소리 듣는 건 싫은 일이고 그 감정을 표정이나 말투로 드러냈다고 화가 나서는 안 되는 건데. 나에게 반항한 게 아니고 그냥 당연히 들었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표현했을 뿐인데 그게 너무 날것이라 당황스러웠나 보다.

 나의 가장 고질적이고 심각한 직업병이 이런 거다. Control Freak. 기껏 커봐야 나만한 아이들이라면 힘으로 제압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인내하고 이끌어 줘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 안달일까.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문제 행동을 중단시켜야 하는 건 맞지만 불친절함의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냥 그 반항이 꼴 보기 싫은 거다.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감정을 채에 거르지 않은 채 발산하는 생기발랄함이 하도 묵직해 거부감이 들었다. 웃어른에 대한 예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여러 규범 안에 아이들을 욱여넣고 통제하려고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옛날 미국에는 어른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Children are not to be heard but to be told. 이 말을 들었을 때 뜨악하며 미국 꼰대들을 한껏 비난했었는데 나도 다를 바 없었다. 명령 어조에서 청유 어조로 바꿔 주는 그 단순하고 작은 배려를 베풀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비판했던 게 꼴사납다.

 따뜻하지만 단호하자며 다짐하고 교사의 꿈을 키웠는데 정작 현장에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30년 남은 세월이 막막하기만 하다. 교단에 서면 설수록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져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지만 나 또한 변화는 없다. 오늘도 '이렇게 말할 걸', '공감 먼저 해줬어야 했는데', '들어줬어야 했는데' 하며 자책만 하지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안다.

 나도 사람인지라 매번 새롭게 다짐하며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 수없이 먼저 손 내미는 아이들이 있기에 영 희망이 없지는 않다. 하루 전날까지 꿍해 있다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기만 해도 이내 마음을 재정비한다.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내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아이들을 믿기에 30년, 거뜬하지는 않아도 흐뭇하리라는 것도 너무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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