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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27. 2022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

'나는 교사다' 서포터즈 1기, 위즈덤하우스

어떤 동물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작은 동물들은 달랐어요. 차오르는 물에 맞서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어요.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마리아 몰리나-

 "선생님, 6학년들이 카톡방을 만들어서 5학년을 모았다고 하네요. 대화를 보니까 가관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카톡 내용을 살펴봤더니 '나 무서운 언니야', '뭐래, 나대지 마' 등 살벌한 내용이다. 한 살 차이가 무슨 대수냐 했지만 학생 신분을 벗기 전까지 선배를 오르지 못할 산처럼 여긴 날 퍼뜩 기억한다. 5학년들이 얼마나 벌벌 떨었을까. 동학년 회의를 거쳐 사이버 예절과 SNS 교육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건 교육뿐이다. 그들도 인권이 있으니 휴대폰을 일일이 검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너희들 입장 바꿔 생각해봐. 선생님들 있는 카톡방에 너희들 초대해서 뭐라고 하면 좋겠니? 위협적이지 않은 말을 했다고 그게 위협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SNS는 만 14세 이상부터 가입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희가 중2가 되고 생일이 지나야 하는 거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다 삭제해."

 나는 그들을 가르쳤으니 어떤 일이 일어나든 면책받을 수 있다. 선택은 학생 몫이다.


 SNS는 불같다. 방심했을 때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잘 사용하면 그 활용이 무궁무진하다. 코로나19로 사이버 공간이 더 확장되니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하는 플랫폼들이 늘어났다.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면 편리함과 말썽거리가 동행한다.


 도시에 물이 찼다. 처음에는 찰박거리는 게 기분 좋은 일상의 변화쯤으로 여겼다. 위험한 신호라 경고하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구냐며 눈총을 줬다. 사회적 안전망 밖에 있는, 키가 작은 동물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동물들은 천하태평하다. 서서히 물이 무릎을 덮고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다. 평균치 신장을 가진 동물들 다수가 호흡 곤란을 호소하니 시장이 먼저 반응한다. 이런 상황에도 기린처럼 목이 긴, 키가 큰 동물들은 여유만만이다. 결국 도시는 노아 시절 대홍수에 버금가게 잠겨버렸다. 부랴부랴 '우리의 문제가 뭐였을까'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에서는 '협력함'으로 도시를 물속에서 구해낸다. 동화 속 얘기에 국한된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물이 차오른다길래 환경 관련 도서라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스멀스멀 자취 없이 다가오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이 '물'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SNS를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물'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SNS를 닮아간다. 수많은 전문가들이나 명언들이 날뛰고 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은 도덕만이, 다수가 인정하는 게시물만 도덕이 된다. 학생들도 이게 나쁘다는 걸 안다. 비판적 사고 없이,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다 보니 생각이 행동이 되는 게 무서울 뿐이다. 어른들, 특히 20-30대 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학생들에게 전념되고 있다. 관계에 무기력하고 과하게 자기중심적이다. SNS가 학생들에게 보여준 도덕의 결과다. 스스로 생각해 보는 과정 없이 받아들인 도덕은 학생 개인의 시행착오 과정을 줄이고 학생들을 획일화시켰다.


 나는 '존중'을 바탕으로 한 협력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정치 이슈를 보면 양극화가 심하니 하나가 되어보자고 보챈다. 그러다 자기편을 안 들어주면 무턱대고 남 탓을 하고 폭력적으로 협력을 강요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하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존재였나. 내 편을 만들어 함께 일하고 싶다면 바람이 아니라 태양이 되어야 하거늘. 애당초 우리는 꼭 하나가 될 필요가 있는지부터 점검해보고 싶다. 각자가 스스로 존재하며 조화로울 수 있는 건데 '하나'가 되자고 하는 거도 폭력적이다. 난 모두와 하나가 될 생각이 없다.


 당연히, 이건 작은 자의 작은 생각일 뿐이니 무시하는 게 좋겠다. 키가 작은 동물의 경고일지, 키가 큰 동물의 기우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발 후자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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