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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07. 2022

튜브

아니, 아름다움은 남아
-튜브-


 사실은 내 만족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소리 지르는 아빠, 바쁜 엄마는 여유를 끌어모아 나와 시간을 보냈고 바닥난 사랑으로라도 따스하게 감싸 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희생에 만족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를 원망하진 않는다. 나는 어렸고 눈앞에 닥친 것만 알 수 있었으며 타인과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지금이라고 나은 건 없다). 사랑의 속삭임도 제스처도 없는 그런 사랑을 눈치챘어야지 하는 책망을 어린이에게 지울 순 없는 일이다.

 만족이 더딘 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 때문이다.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수고로움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줄곧 그 상처에 메여 새로운 생채기를 만들고 좌절하고 폭력적인 유년시절 탓을 해댔다. 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게 쉽고 만만하니 나의 까다로움은 외면한 채 치유를 향한 제대로 된 한걸음 내딛기를 꺼리고 있었다.

 꾸준함이 능력이란다. 취향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고 상황은 매달 매해 바뀌나 항상성을 유지하는 건 그 자체가 에너지를 쏟는 일이라 그렇다. 주짓수 체육관에 오는 중년 남성들을 보며 존경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띠 색을 바꾸는 데에만 최대 2년 정도 소요되니 뒤늦게 시작해 8-10년째 하고 계신 거다. 꼭 나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하나를 8-10년 한 건 박수받을 일이다.


 나는 주인공이 해낸 일이 바로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만족과 꾸준함. 그가 성취한 건 실패한 여러 사업 안에서 배운 교훈이나 재귀를 성공케 한 기막힌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쓰기도 말하기도 쉽지만 하기는 어려운 일을 해낸 거다. 예컨대 사랑하기, 행복하기도 만족하기나 꾸준히 하기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다만 그 대단한 일을 해냈음에도 다시 실패한 데에 이유가 있다면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국물이 넘치고 난 뒤에야 후회하고 짜증을 내는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한날은 겨울이었는데 티셔츠, 카디건, 외투 모두 무늬가 들어간 걸 입은 적이 있었다. 누나가 나를 보더니 패턴이 너무 많다고 핀잔을 줬더랬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다 예쁜 옷이고 멋진 무늰데 그런 걸 한데 모아둔다고 완벽한 작품이 되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바라는 일들만 일어나는 인생은 얼마나 지루할까 묵상해 보면, 넘어지는 게 아름다움에 일조하긴 하지 싶다. 그게 꼭 형상이나 흔적을 남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어지기도 하고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숨어 있기도 하고. 그 만족감을 꾸준히 느끼는 게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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