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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03. 2022

덕다이브

Don't waste a wave, bitch!
-덕다이브-


 처음 서핑을 시작한 의도가 불순했다. SNS가 뭐라고 스토리에 사진 좀 올려 보겠다는 심산으로 거금을 들였다. 3회냐 5회냐 둘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가격이 더 저렴한 3회로 결제했다.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머릿속에서는 이미 보드 위에 서기도 하고 잔뜩 멋을 내며 묘기를 부려댔다. 숨은 원석이 발견됐다며 난리법석인 코치진들 사이로 쑥스러운 듯 서 있는 꼴사나운 상상을 하며 송정으로 찾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이왕이면 대단한 초보이고자 했던 우스운 상상이 성공적인 라이딩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그다음 날인 2회 차 때 보드에서 일어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파도를 탄다는 건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다. 무동력으로 가는 탈 것의 경험이 전무해 비교 대상이 없으나 서핑 보드 위만큼 자유로운 이동 수단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발목에 감겨 있는 리쉬 외에는 라이더를 옥죄는 게 없다. 또 어떤 동작을 취하지 않고 보드 위에 중심을 잡고 서 있기만 하면 파도가 뒤에서 부드럽게 밀어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서핑에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방실대는 입꼬리와 외마디 환호가 길을 가르는 순간, 나와 발의 리쉬와 보드와 파도 외엔 일절 신경 쓸 게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겨울 강습을 10회 받는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 코치님. '일어나!'라든가 '시선!' 같은 대사를 볼 때마다 귀 뒤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꽉 찬 음성과 나보다 아쉬워하는 손동작과 응원이 생생했다. 서핑 경험이 있다는 게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내막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책을 덮으면서 적이 서핑하고 싶다는 생각 외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여즉 잘 타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시일에 바다에 가야겠다. 사람이 없어 좀 한산한 겨울 방학을 노려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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