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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Feb 17. 2023

늙어감에 대하여

'이게 나이어야 해?' 늙어가면서 늙음을 통해 아픈 사람은 거울을 보거나 걷거나 달리거나 산을 오르며 이렇게 묻는다.
-늙어감에 대하여-


 어릴 때나 지금이나 실패하고 싶지 않아 고민이 긴 편이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오늘은 초코가 있는 과자를 먹을지 없는 과자를 먹을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할 때가 가장 신중하다. 우선 내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초코가 먹고 싶은 거야?'

 먼저 이렇게 질문한다. 대답이 긍정이라면 초코가 있는 과자를 산다. 사실 무엇보다 선행돼야 하는 질문은 '배가 고파?' 혹은 '목이 말라?'다. 특히 카페에서 음료를 정할 때, 목이 말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었던 적이 많았으나 내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니까 실은 블루베리 요거트가 먹고 싶었지만 갈증이 심해 아메리카노를 시킨 뒤 시원하게 한 모금하고 나면 블루베리 요거트가 땡기는 그런 식이다.


 내 느낌에 이 책이 나의 고민을 닮았다. 늙어감을 신체적, 사회적, 문화적인 부분으로 나눠 설명하고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데 철학책이다 보니 그 내용이 너무 장황하고 어려웠다. 철학적 지식 없이는 도통 무슨 말인지 세세한 부분까진 알기 어려웠으나 대략적인 느낌이 그랬다.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나에게 그랬듯 끊임없이 질문하고 묻는 방법이 닮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쓸데없지만 또 해봄직한 철학이라는 점이 흡사했다. 물론 서적의 경우 훨씬 고차원적인 문제와 사고 과정임이 틀림없지만.

 저자는 서서히 진행되는 노화만이 늙어감이란다. 급성으로 빼앗기는 건강 상태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느새 되돌아보니  관절이 뻣뻣해져 걷기에 힘들다는  인지하게 되는  노화를 느낄  사람은 심리적으로 늙는 것이라 하는 듯했다. 사회나 문화는 얘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사회가 원하는 노인의 모습, 달라지는 문화에 맞춰 변화하려고 해선  되지만 그렇다고 크게 뒤처지지도 말아야 하는  늙어감이란다. 죽음도 이런 맥락이었다.  부분에서 나는 ',  고민 정말 맥없이  빠진다' 느꼈다.


 이립. 이제 막 살아가는 방식이나 도덕을 세운 나이에 접어든 입장으로서 노화나 죽음에 대해 입을 뻥긋할 수계제는 아니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게 있다면, 그것을 노화에 포함시켜 주시겠다면, 나는 설렘이 줄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생이 참 쳇바퀴 돌듯 뻔하고 똑같아 헛헛하다. 간간이 발생하는 사고들로 에너지를 빼앗기는 바람에 설렘을 느끼는 기관의 기능이 빠르게 소실되는 느낌이다. 왜, 우리 모두에겐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배꼽을 잡고 웃어젖히던 날들이 있었지 않은가.

 지금도 그렇게 웃으라면 웃을 수 있다. 다만, 주변에 그런 천진하고 낙관적인 친구도 줄었을뿐더러 그랬던 우리가 하는 얘기는 보통 부동산, 교육, 주식, 미래에 대한 부연 얘기들이다. 종종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지만 의사소통 과정에 맥락이 있다. 누군가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다른 누가 속 시원하게 복수하는 얘기를 한다든지, 내 일인 양 공감할 때 간헐적으로 웃음이 터진다.

 본 도서에서 말하길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 취미 등은 죽음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결국 내 이름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 내 육체나 정신은 사라져도 이름 석 자는 남기길 바라는 욕심이나 어리석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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